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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솔안나 Jul 03. 2024

산타 할아버지께

편지 받아주세요

내리던 비가 잠시 그쳤다.

로리가 낮잠을 자고 막 일어나던 참이었다.

"비가 그쳤네" 하는 나의 혼잣말을 들었나 보다.

"할머니! 비가 그쳤어요? 장화 신고 첨벙첨벙하러 나가고 싶어요."  

종일 비가 내린 탓에 바깥바람을 쐬지 못했으니 그러자고 했다. 시간이 늦어서 도서관에 가기엔 애매하고

정원에서 달팽이나 보자 했더니

"양동이(채집통) 주세요! 달팡이(달팽이) 잡을 거예요~" 하며 신이 났다.

바로 그때 엄마가 퇴근해 들어온다. 신이 난 로리는 함께 나가자 한다.


풀밭에서 아이는 강아지풀을 뽑아 간질간질놀이를 하고 기어가는 개미를 쪼그리고 앉아서 관찰하고

달팽이를 잡겠다고 이리저리 분주하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지만 그 정도야 맞아도 되지 싶었다.

물웅덩이를 찾아 첨벙거리는 아이를 말리며 나온 길에 마트에 잠시 들러오기로 했다.


몇 가지 필요한 식품을 담아 돌아서는데 "엄마! 저쪽으로 가요~" 한다.

저쪽, 그곳엔 수많은 장난감들이 쌓여있고 특히나 부릉부릉 자동차가 로리의 혼을 빼앗는 곳이 아닌가.

비켜갈 도리가 없는 길목이다.

"우리 아가는 뭐를 보고 싶은 건데?"

"부릉부릉 자동차, 아빠차, 엄마차 그리고 경찰차..."

만지지 않고 보기만 하는 곳이라고 엄마는 강조한다.

여기 있는 것들은 우리 아가 것이 아니고 마트 거니까 보기만 하고 가는 거라고...

과연 아이가 그 말을 믿을까?

과자를 들고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하면 자기 것이 된다는 걸 아는데...

경찰차, 소방차, 모두 안고 구경만 하고 있더니 소방차를 콕 집으며 하는 말

"이거 로리 거야요"

"아니야 로리 거는 집에 많잖아, 이건 마트 거야, 남의거 가져가면 안 돼"

아이는 으앙~ 울음을 터뜨리며 보채기 시작한다.


집에 수많은 자동차 장난감들이 있다. 사촌형이 준거, 선물 받은 거 등등 많아도 너무 많은데

아이는 마트에 있는 새로운 것이 맘에 드는 거다. 그렇다고 말만 하면 사주는 것도 좋지않은 버릇이 될테고

가급적이면 자동차 장난감은 사주지 않으려 한다. 아이는 이제 막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 시작하고

소유하려는 욕구가 움트는 시기인 것 같은데 잘 넘기기가 참으로 어렵다. 우는 아이를 덥석 안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이 끝날 때까지 울음은 그치지 않고 마트가 떠내려갈 듯 통곡이다.

마중 나온 아빠 차에 올라타서 다독이며 달래기 시작했다.

"로리야, 어떤 자동차가 갖고 싶었어? "

" 소방차요"

"그럼 집에 가서 할머니랑 산타할아버지한테 편지 쓰자. 성탄절날에 선물로 소방차 갖다 달라고..."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은 상태에서 "네" 하고 대답을 한다.

동화책 추피를 읽은 기억이 난 것이다. 추피도 장난감을 산타할아버지한테 받았으니까.

"로리가 말해봐. 산타할아버지한테 뭐라고 편지하고 싶은지... 할머니가 그대로 받아 적어서 보낼께."


"산타 할아버지가 부릉부릉 소방차 계산해 주세요~"


빵! 터졌다.

엄마 아빠 할머니는 계란이나 두부 콩나물은 계산하면서 장난감은 마트 거니까 보기만 해야 된다고?

24개월 아가를 바보로 알았나요? 한방 기분 좋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우리 아가의 말솜씨는 아무도 못 따라가겠다.

결국, 아기의 생일날(두 돌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산타할아버지께 계산해 달라는 편지를 쓰기로 하고

웃으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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