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솔 Nov 30. 2024

11월 미오 나무

별이 된 미오의 1주기

나는 너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아니, 너뿐만 아니라 고양이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엄마가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당연하게 가족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었지만.

싫든 좋든 가족은 가족이니까.

우리 집에서 너의 엉덩이를 가장 많이 때린 사람은 나였다. 물론 이쁜 짓을 할 땐 웃어주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했지만 귀찮게 굴 땐 가차 없이 밀어내곤 했다. 그걸 보면 난 고양이를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 많은 고양이들 중에서 넌 가장 오래 우리 집에서 살았던 귀족 고양이였다. 엄마와 내 아내는 네게 필요한 걸 아낌없이 사주었다. 솔직히 가끔은 질투가 났다. 네 엉덩이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눈을 부릅뜨는 그들을 보며, 이 집에서 고양이보다 못한 존재는 내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네가 진정한 가족이라고 느낀 건, 내 아들이 태어났을 때였다. 넌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아이를 받아들였다. 질투하거나 시샘하는 대신, 아이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으니까. 그때 난 네가 참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고맙다, 미오!.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그날 아침에 미오는 엄마 방에서 나와 내 아들 방으로 들어갔다. 기온이 뚝 떨어져 유난히 추운 11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아침이라 생각했는데, 아기방에서 나온 미오는 다리를 절며 거실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야단을 쳤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왜 우는 거야?"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그러자 미오는 절뚝거리며 엄마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엄마! 미오가 이상해요. 다리를 다쳤나 봐!” 엄마는 놀라서 화장실에서 나오셨다.

“좀 전에 침대에서 내려올 때도 멀쩡했는데 무슨 소리야?”


이상하게 생각한 우리는 다 엄마 방으로 모였다. 그때 미오는 엄마의 책상 아래 구석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어? 미오야 왜 그래? 어디 아프니?” 엄마는 미오를 끌어내어 안았다.

그러자 미오는 엄마와 눈을 맞추고는 엄마 무릎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나는 울지 말라고 엉덩이를 한 대 때렸을 뿐인데... 미오는 일어서지를 못했다.


나와 아내는 미오를 데리고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 피검사를 하고  X-레이를 찍고, 검사를 하는 과정이 사람과 똑같았다. 미오는 뇌수막염이었다. 배가 조금 늘어져 있었는데 물도 차 있다고 했다. 의사의 차가운 진단이 내려졌을 때 아내는 울먹이며 말했다.

"원인이 뭘까요? 아픈 기색이 없었고 어제까지도 잘 놀고 잘 먹었는데요.“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울지 말라고 미오를 때렸던 생각만 났다. 아파서 우는 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엉덩이를 때린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다.

          

큰 병원으로 옮겨도 소용없다는 의사의 말에 가슴이 미어질 것처럼 답답해졌다. 그래도 아내는 큰 병원으로 가보겠다고 병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수원에 동물 종합병원이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엄마에게 알렸다.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기 걱정은 하지 말고 미오나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하고 와, 잘... “

병원에 도착해서 다시 검사를 했다. 진단은 같았다. 2~3일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다. 고양이들은 갑자기 이런 병이 오기도 하는데 증상이 나오면 바로 나빠져서 빠르게 마비가 된다고 했다. 입원을 시켜도 가망 없고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미오가 그걸 제일 먼저 알았던 거였다. 아침에, 아침에 아기에게 먼저 가서 인사를 하고 나왔던 거다. 그리고 식구들을 다 모이게 하려고 크게 울었던 거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시끄럽다고 쥐어박았다. 아, 나는...

아내는 울고 있었다. 미오를 안고... 힘없이 축 쳐져있는 미오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동자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노란 눈, 호박단추 같은 노란 그 눈동자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이미 가슴이 매운 연기로 가득 찬 것처럼 먹먹해졌고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안락사를 권유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난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내가... 때려서 아픈 건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게 더 슬펐다. 이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알아차리질 못했다니...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전화기 너머로 엄마와 아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미오 아파? 미오~ 미오! “ 16개월짜리 나의 아들은 계속 미오를 불렀다.

엄마도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미오야, 미안해... 아프다고 말해주지 그랬어... “

우리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병원에서 흐느끼며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상의 끝에 결국 안락사를 택했다. 미오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갔다가 더 안 좋아진 후에 다시 병원으로 오느니 편하게 보내주기로 서럽게 결정했다. 나 편하자고 내린 결정 같아 맘이 더 아팠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시간이 갈수록 몸이 마비가 되어 갈거라 했다. 우리 아기가 미오를 가만 두지도 않을 거고 여러모로 미오에게도 불편할 뿐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주사를 맞기 전 나와 아내는 미오와 이야기를 했다. 미오는 기운 없이 소리도 내지 않고 그윽한 눈빛으로 나와 아내를 바라볼 뿐이었다. ”미오야 주사 맞고 편하게 자, 그러면 별나라로 갈 거야 “ 아내가 떨리는 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과 콧물을 닦으며 미오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울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우린 미오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미오는 눈을 감지 못했다. 병원에서 보라색 박스에 미오를 넣어 주었다. 따뜻했다. 미오의 몸이 차가워지기 전에 나는 아내가 알려주는 대로 동물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아내는 미오를 무릎에 올려놓고 따뜻한 미오의 체온을 느끼며 훌쩍였다.

깊은 산골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운전대 잡은 나의 눈에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는 엄마와 나의 아기가 묵주기도를 하고 있다.

미오가 하늘나라 가는 길이 무섭지 않게... 한 살배기 아기도 눈물을 글썽이며 기도를 따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늦은 밤, 미오의 유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후회가 남지 않는 이별을 위해 나름 노력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내 맘은 한동안 편치 못했다. 미오 생각만 하면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우리 가족은 거실 창 아래 소나무 숲에 미오를 뿌려주었다. 늘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도록... 우리 아기가 놀이터에 가면서 인사할 수 있도록.


그날 이후로도 오랫동안 미오의 노란 눈동자가 꿈에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그 눈빛이 "괜찮아요, 고마웠어요"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제 아기는 매일 아침 창가에 서서 "미오, 안녕? 나 도서관 갈 때 이따 만나!"라며 인사를 한다.

바람 불어 소나무가 흔들릴 때면 미오가 손을 흔들어주는 것만 같다. 우리 곁을 떠나 그 겨울이 지나고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이다. 미오가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때론 후회와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미지만 알 것 같다. 미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슬픔이 아닌 사랑이었다는 걸.



 


고마운 친구 미오야, 네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되었구나.


그날 아침, 네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불러 모았던 그 울음소리.

이제야 알겠어. 작별 인사였다는 걸.     

아기방에 들어가 침대 위를 바라보던 네 모습이 특별해 보이지 않았어. 늘 그랬으니까. 엄마방에서 자다가도 가끔은 아기 침대 아래를 네 잠자리로 삼곤 했잖아. 그날은 엄마와 함께 자고 일어나 천천히 아기방으로 가서, 잠든 아기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던 거였지? 우리 모두에게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였지?

우린 왜 몰랐을까. 너의 면역체계가 너를 공격하고 종양이 생길 정도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왜 우린 눈치도 못 챘을까. 생각할수록 너무 미안하구나. 미오, 네가 스스로 돌아 갈 날을 잡아 우리에게 상처를 덜 주려고 했던 거였지? 우리 인간들은 때 되면 건강검진을 받느라 바쁜데, 왜 너에게도 병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너는 진짜 나의 아기에게 멋진 친구였어. 든든한 형이었어. 내가 아기를 낳아서 집에 왔을 때 솔직히 많이 걱정했었어. 혹시라도 질투할까 봐. 하지만 그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어. 너만큼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친구가 어디 있을까.     

8년 전, 내가 결혼하기 전이었지. 친정에 고양이가 너무 많아져서 젖도 떼기 전에 너와 둥이를 당시 남자친구였던 신랑 집으로 보냈잖아. 하지만 어머니께서 손바닥 위에 너를 안고 정성스레 우유를 먹여가며 키우셨지. 둥이는 어느 날 집을 떠나버렸지만, 미오 너는 끝까지 어머니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어. 정말 사람의 아기처럼.     

그랬던 네가 마지막 날, '이제 갈게요, 모두 잘 있어요' 조용히 인사한 것처럼 하고 떠나다니... 전날까지도 아기와 잘 놀고 엄마 침대에서 편히 잤는데... 한동안 믿기지가 않았어. 고맙고 미안해.

이젠 편히 쉬어, 좋은 곳에서 평화!     





소나무 아래에 있는 미오, 이따 만나!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태어난 지 2주 만에 내게 왔지. 작은 젖병으로 우유를 먹이던 순간부터, 넌 내 아기였다. 내 침대에서 함께 잠이 들고일어나면, 넌 내가 진짜 엄마인 줄 알았나 봐.

난 고양이가 아니잖아 미오, 그래서 너에게 모래를 헤집고 그 안에 배변을 보도록 가르칠 수가 없었단다. 네 어미에게서 배우고 왔어야 하는 걸 너무 일찍 나에게 오느라 아주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걸 넌 배우지 못하고 왔지. 가끔 너 자신이 인간인 줄 착각하는 것도 같아 건방져 보일 때도 있었단다. 때론 귀찮게 굴 때가 많아 혼도 냈지만, 그때에도 네 눈빛은 그저 사랑스러웠어. 강아지와는 다른 면이 분명한 고양이. 넌 항상 네가 서열 1위로 착각하고 살았지 그 모습도 얄밉지만 귀여웠단다.

우리 손자가 태어났을 때, 넌 우리 집 아기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어주었어. 아기 머리맡에 앉아 잠들고 조용히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여느 고양이들처럼 아기에게 발톱은 안 내밀 거라는 확신은 들었단다. 영특하고 착한 나의 검은 고양이. 아기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는 가만히 앉아 있는 네꼬리를 잡아당기고 귀찮게 하는데도 싫어하지 않았지 조금 더 커서는 등에 올라탔어도, 꼬리를 물어도 다 받아주던 네 모습이 아직도 선명해. 넌 우리 집의 아기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어. 네 생각에도 항상 아기가 우선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단다.

고마워 미오야. 아기가 태어난 후론 너와 잘 놀아주지도 못했어. 그래서 더 미안했어

아픈 적 한 번도 없었고 병원 갈 일도 없어서 착하다 했는데, 무지하게 방치한 격이 되고 보니 할 말이 없더구나.

그렇게 보내서 정말 미안했어. 그 아침에 병원 간다고 나가서 돌아오지 못한 너를 우리 아기는 계속 이야기했단다. '미오 어디 갔어요 할머니?' 하고.

저기 반짝반짝  빛나는 저 별이 미오야. 저기 저 달님의 친구가 미오란다, 하고 창밖을 보며 이해시켰어.

지금은 소나무 밑에 네가 있는 줄 안단다. 사진첩을 보며 미오와 찍은 사진들을 좋아하기도 해.

산책 갈 때면 정원의 소나무숲을 쳐다보며

"미오야 안녕? 산책 갔다 올게, 이따 만나!" 하고 인사를 하는데 혹시 들었니?

우리 가족은 늘 가까이에 네가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 그러니까 미오 너도 항상 우리를 지켜보렴!

사랑한다, 나의 아기, 편히 자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