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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구름이 따라오고 있어요!

앤서니 브라운 전시회

by 혜솔

일요일, 햇살이 주춤하며 구름 속에 숨었지만 날씨는 무척 후덥지근했다.
나는 로리의 작은 손을 꼭 잡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로리엄마가 로리를 위해 선택한 곳이다. 엄마는 개학날이 다가오고 출근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빴나 보다. 방학 동안 로리와 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 텐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쉬운 눈치다.

로리는 할머니랑 엄마랑 함께 외출하는 것이 신나기만 하다. 더구나 동네에서 처음 버스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하는 것이다.

"할머니, 윌리랑 고릴라가족도 와 있을까요?”

버스 창밖을 바라보던 로리의 두 눈은 이미 상상 속 그림 나라로 건너가 있었다.


도착한 곳은 서초동 예술의 전당 안에 있는 한가람 미술관. 로리가 좋아하는 그림책의 작가 앤서니 브라운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에서 여러 번 마주했던 낯익은 그림들이 로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반가운 친구들—고릴라, 아버지, 윌리—가 그림책 밖으로 걸어 나와 로리를 반겨주었다.

로리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고, 커다란 벽면에 펼쳐진 미디어 아트 속으로 몸을 맡긴 채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은 마치 윌리의 친구 같았고 작은 요정 같았다.

우리는 그림 속 세상을 탐험하듯 걸었다. 숨바꼭질하듯 숨은 그림을 찾아내고는 흐뭇해하는 로리.

“할머니, 바나나가 여기 숨었어!”

로리의 손끝에서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조용히 속삭이는 색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세이프게임’ 체험 공간에 의젓하게 자리 잡은 로리의 손끝에서 상상력이 자라는 듯했다.
파란색 고릴라가 그네를 타고,
윌리가 구름을 가로질러 달리고,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아빠와
손을 잡고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크레용 하나로 여기저기 선을 그어댔다.
어린이의 마음이 만들어낸 예술이란 다 비슷한 것 같지만 또 다 달랐다.


전시장 구석, 눈에 띄는 문구 하나가 적혀 있었다.

'모든 어린이는 창의적인 예술가입니다.'
오늘 하루, 로리는 그 말의 증명이 되었고 나는 한 권의 살아 있는 그림책을 읽은 듯한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로리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할머니, 저기 고릴라 구름이 따라오고 있어요.”
그래, 오늘 우리 뒤를 따라오는 것은 고릴라가 아니라 마법, 상상력, 그리고 소소한 행복이다.


언젠가 로리가 이 하루를 떠올릴 때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 속 캐릭터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나가길 바란다.

그림자와 빛 사이에 숨은 진실을 사랑으로 밝혀가며 자라나길, 이 하루를 오래오래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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