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아로chaaro Oct 27. 2022

교복을 줄일걸

치마는 하의 실종 수준으로 마이는 저고리 수준으로.

1.

학창 시절에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것이며, 좋은 대학교에 갈 것이고, 결국 좋은 회사에 취직할 것이라고들 한다. 



2.

나는 이런 대답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들 어쩜 저렇게도 자신 있게 말하지? 나는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공부를 열심히 할 자신이 없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 친구가 놀자고 꾀어도, 잠이 쏟아져도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할 수 있는 강인한 의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의지'라는 것도 상당 부분 '타고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갑자기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마치 운동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서 갑자기 운동신경이 발달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열심히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열심히 하는 것 자체도 능력이다. 내 이야기에 동의하기 어렵다면 당신이 이러한 결심을 해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내일 아침부터 출근 전 새벽 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하고, 퇴근 후에는 매일매일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이러한 결심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당신이 정말로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샤워까지 한 후에 회사에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만약 당신이 퇴근 후 많은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맥주나 와인 한 잔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를 하다가 잠들었다면 당신은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이다. 당신은 학창 시절로 돌아가면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은 진짜 지독한 사람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만약 당신이 이런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미 학창 시절 때 충분히 열심히 공부를 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3.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못 된다. 나의 의지는 박약하다. 작심삼일의 화신이라고나 할까. 아니,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나에게는 사치다. 출근하기 전 새벽 운동이라니, 나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할 일이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매일 아침 알람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어느 현자의 가르침만 뼈저리게 느끼니까. 그동안 한 달보다는 6개월을 등록하는 것이 훨씬 더 싸다는 꼬임에 넘어가 헬스장에 기부한 돈이 얼마인가. 


이런 사람인 내가 학창 시절로 돌아가 보았자 공부를 더 열심히 할 리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는 후회는 전혀 없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공부를 열심히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4. 

오히려 내가 후회하는 것은 교복을 줄이지 않는 것이다.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나는 교복을 줄였어야 했다. 교칙을 위반하고 교복을 타이트하게 줄여서 입었어야 했다.



5.

중학교 때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교복을 줄였어야 했다. 나는 중학생이 처음이라 몰랐고, 부모님도 중학생 학부형이 처음이라서 몰랐던 사실은 대부분의 여학생은 중학교 3년 동안 키가 별로 자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모님께서는 내 키가 3년 동안 쑥쑥 클 줄 아셨는지 넉넉하다 못해 얻어 입은 것 같은 크기로 교복을 맞춰 주셨다.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만큼이나 컸던 내 교복 마이(교복 재킷이 맞는 말이다)는 3년 내내 나를 패션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다. 게다가 그 당시 교복은 왜 어깨에 뽕(패드가 맞는 말이다.)이 그토록 과하게 들어가 있는지. 내 자신감과는 별 상관없이 한껏 치솟은 어깨의 뽕은 3년 내내 숨 죽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굳건하게 내 어깨를 지켰다. 


게다가 그 당시 나의 모교는 두발 규정마저 엄격했다. 귀 아래로 3cm 단발을 하고, 어딘가에서 얻어 입은 것 같지만 어깨 뽕 덕분에 라인만은 살아있는 커다란 마이를 입고 있는 나를 보면 그 당시 찍은 사진을 모두 불살라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촌스러웠더라' 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도 내 교복은 심각했다. 오죽했으면 졸업사진을 찍을 때에는 친구의 마이를 빌려 입고 찍었을까. 



6.

중학교 때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고등학교 때에는 내 체형에 딱 맞게 교복을 맞췄다. 내 몸에 보기 좋게 잘 맞으니 딱히 줄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줄였어야 했다. 내 몸보다 훨씬 더 작게 줄여야 했다. 치마는 더 짧게 미니스커트처럼 줄였어야 했고, 바지통은 입고 꿰맨 것처럼 줄였어야 했다. 교복 마이는 숨쉬기 힘들 정도로 타이트하게 줄였어야 했고, 마이 길이는 이게 마이인지 한복 저고리인지 모를 정도로 줄였어야 했다. 



7. 

사실 지금의 기준으로 고등학교 때 사진을 보면 줄이지 않은 내 교복이 제일 예쁘다. 과하게 줄인 친구들의 교복보다 맵시 있게 잘 맞는 내 교복이 훨씬 더 예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이런 미련이 남을까? 



8. 

어쩌면 교복 한 번 줄여보지 못하고 학창 시절을 졸업한 것이 못내 아쉬워서인지도 모른다. 교칙 한 번 위반해보지도 못하고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졸업한 것이 억울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처럼 서툰 손바느질 솜씨로 치마를 타이트하게 줄였던 추억, 세탁소에서 교복 줄일 돈을 마련하느라 급식비를 삥땅 쳤던 추억, 선도부가 뜨는 날에는 커터칼로 실밥을 뜯어 어떻게든 안 줄인 교복처럼 보이려고 용을 쓰던 추억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옷매무새에 제대로 된 관심 한 번 주지 못한 아쉬움 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여드름은 좀 많았을지언정 춘향이가 이몽룡을 만나고 줄리엣이 로미오를 만났던 좋은 시절이다. 그런 호시절에 본격적으로 멋을 부리기는커녕 옷매무새조차 등한시하고 보낸 6년이 아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확실히 ‘인싸’, 소위 잘 나가는 학생이 아니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범생 그 자체인 내 교복핏은 내가 ‘아싸’에 가까웠다는 정황 증거일 수도 있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과하게 줄인 교복이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그 줄인 교복이 제일 멋졌다. 그리고 과하게 줄인 교복은 내가 또래 집단에서는 잘 나가는 사람이라는 징표이기도 했다. 



9.

교복 한 번 줄여보지 못하고 마감한 나의 불쌍한 학창 시절은 나에게 생각보다 더 큰 후회를 안겨 주었다. 나는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반드시 교복을 줄일 것이다. 반 인권적인 교칙은 간단히 무시할 것이다. 어른들이 내 교복을 보고 혀를 끌끌 차도 상관하지 않고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교복을 즐길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입고 싶어도 입을 수 없는, 평생 아쉬울 옷인데 그땐 왜 그 가치를 몰랐을까.  




+ 후회 그 후...

그나마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이러한 후회로 말미암아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는 점이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학생들의 과한 화장과 짧은 치마와, 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지하철을 타는 그들의 패션을 존중한다. 그들의 외양이 우스꽝스럽다며 비웃는다거나, 너희 나이 때에는 화장 안 한 얼굴이 더 예쁘다는 꼰대스러운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싸구려 아이라이너로 관자놀이까지 서툰 아이라인을 그렸어도, 가부키처럼 어색한 메이크업을 했어도 그들은 나보다 훨씬 낫다. 그들은 나 같은 후회는 하지 않을 테니까. 

이전 01화 웰시코기 다리처럼 하찮은 후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