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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joge Nov 27. 2019

기회는 오직 사랑뿐! 사랑의 재발명을 위한 고민

책 <에로스의 종말> 그리고 다큐 <달팽이의 별>을 보고

달팽이의 별에 사는 우주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


  두 사람이 서로에게 사로잡힌 순간은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짐작건대 남자의 순수함이, 여자의 따뜻함이 서로를 사로잡았으리라. 하지만 이후 10년은 사정이 좀 다르다. 시청각 중복 장애를 가진 남편, 척추 장애를 가진 아내의 10년차 결혼 생활이 이렇게 아름다운 로맨틱코미디로 그려질 수 있을지 몰랐다. 두 사람은 수많은 시끄러운 편견(영화를 보기전 우리가 가졌던 각자 마음 속의 편견을 떠올려 보라)을 무너뜨리고 조용히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보인다. 사랑은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안아주는 따뜻함이라고. 사랑은 둘이 함께 ‘영원의 순간’을 만끽하는 달콤함이라고. 그리고 사랑은 ‘영원의 순간’으로만 채워질 수 없는 수많은 날들을 묵묵히 지탱해주는 묵직함이라고.


<달팽이의 별> 결정적 장면들
#1. 정성스런 식탁, 순호씨가 점화로 영찬씨에게 찬의 종류와 위치를 설명해준다. 영찬씨가 콩나물 무침을 잘 먹자 순호씨가 콩나물 무침 그릇을 영찬씨에게 가까운 쪽으로 옮겨준다.


순호씨는 영찬씨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생명줄같은 존재다. 무려 세 명의 여자가 달라붙어 도와준 히브리어 시험 시간, 시각장애인을 주제로 한 연극에 도움을 주러 간 영찬씨 옆에는 항상 순호씨가 있다.


#2. 수기 공모전 결과 발표날, 떨어져서 실망하는 영찬씨에게 수상자 명단에서 이름을 찾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호씨.

최선을 다했으니 내가 박수보낸다는 순호씨의 위로에 영찬씨는 “아 됐어” 하고 민망한듯 손사래를 친다. 그러자 순호씨는 “미안해. 이름 못 찾아서" 라고 하며 영찬씨를 바라본다. 진짜 미안한 눈빛이다. 그러자 이번엔 영찬씨가 “다음 번엔 문학작품 공모전에 투고해보겠다"고 말한다. 작은 용기로, 미안해하는 순호씨를 되레 위로를 줘야겠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3. 영찬, 순호 커플을 부러워하는 후배에게 결혼의(혹은 사랑의) 준비 조건은 ‘외로움’이라 말하는 영찬씨


#4. 영찬씨에게 ‘터널’을 알게 해준 기차 안 데이트, 바람부는 냉장고 같았던 바닷가 데이트, 나무를 끌어안고 셋이서 한 공원 데이트. 그리고 어둠에 갇힌 우주인 영찬씨가 순호씨에게서 외로움을 구원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호씨도 외로움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영찬씨가 있어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비오는날의 베란다 데이트.


#5. 가장 값지고 참된 것을 보고 듣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는 것이라는 영찬씨의 시.


“사람의 눈 귀 가슴들은 대부분 지독한 최면에 걸려있거나 강박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아의 깊은 늪에 빠져 세계를 전혀 모른 채로 늙어간다. 그런 눈과 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나처럼 우주인이 되면 된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영찬씨와 순호씨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둘만의 세계를 만든 것 같았다. 서로의 외로움을 안고 느리고 조용하게 때론 달콤한 영원의 순간을 누리며 시간을, 삶을 굴리는 달팽이의 별.


그리고 떠오르는 물음들.
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은 어떤가?
내가 외롭다고 말할 용기가 있는가? 상대방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안아줄 용기가 있는가?
사랑을 통해 ‘영원’이 ‘시간'속에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가?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강박, 지독한 최면에 사로잡힌 우리의 눈과 귀는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사랑의 종말을 고하는 이 시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사랑을 재발명하기 위한 투쟁이다.


  ‘에로스의 종말'의 저자 한병철은 우리가 사랑이 ‘구조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사회 혹은 이미 종말했을지도 모르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사랑의 종말을 초래하는 궁극의 위기는 ‘타자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나'안에 침몰해버리는 나르시즘적 경향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타자가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는 곳곳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평탄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져 비교 가능한 소비의 대상이 되고 시장 가치로 환산된다. 이때 타자의 이질성은 제거되어야 하는 속성일 뿐이다.

  또한 성공하라는 명령, 할 수 있다는 조동사가 지배하는 성과사회는 나르시즘적 경향을 강화하고 상처와 고뇌로서의 사랑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나르시즘적 자아에게 타자는 자기 확인을 시켜주는 거울일 뿐이다.

  게다가 디지털 미디어 도구는 타자와의 거리, 타자의 얼굴을 철폐할 뿐 아니라 시간의 서사도 없앤다. 모든 것이 불러내질 수 있는 최적화된 현재속에 에로틱한 갈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시가치, 상품가치가 절대적인 투명사회에서 환상은 사라지고 포르노적 욕구만 남는다.


  저자의 이토록 확고한 선언은 그동안 내 사랑을 야금야금 갉아 먹으면서도 정체를 숨긴채 흐릿하고 답답한 감정으로만 존재하던 '적'에게 또렷한 이름을, 얼굴을 부여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 사람보다 괜찮은,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 속에서 상대방의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웃고 있는, 행복해하는 나의 얼굴 뿐이다. 이때 웃음의 기준, 행복의 기준은 오로지 나다. 상대방이 어떤 우주를 품고 있는지, 어떤 외로움을 머금고 있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내 행복의 기준이 오롯이 나로부터 생겨났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또한 자신이 없다. 나를 사로잡은 지독한 최면과 강박은 ‘더 예쁘고 좋은 곳을 여행하라’, ‘더 빛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하라’, ‘더 맛있고 비싼 것을 먹어라’ 그리고 ‘전시하라 얼마나 행복한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사실 진짜 사랑은 내가 아니라 너를 향해 있는 것이고, 서로가 나만의 세계를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항복할 때 혁명적으로 새로운 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말이다. 영찬씨와 순호씨의 달팽이의 별처럼.


  저자는 모든 부정성이 철폐되고 동일자의 지옥이 된 사회에서 타자의 이질성, 실존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사랑뿐'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때문에 진정한 사랑의 최소 조건은 타자의 발견을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라고 말한다. 타자의 아토피아, 전인미답의 지대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 용기, 에로스에 대한 욕망은 완전히 다른 삶, 다른 사회로의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르시즘에 빠져있는듯한, 안락함만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짜증을 낼 뿐 분노하지 못하는 이 '세상'에 에로스를 부활시키는, 사랑을 재발명하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랑을 재발명하는 개인들이, 달팽이들이 조금씩 늘어나면 혁명적으로 다른 세상이 찾아올 수 있을까?

                                                                                                                                                          

덧글.


독서모임 <트레바리>http://trevari.co.kr 에서 책 한권 다큐멘터리 한 편을 패키지로 읽고 보는 <북큐멘터리> 클럽 파트너로  활동중입니다. <북큐멘터리> 1월 모임에서 읽은 책과 다큐멘터리를 소개합니다.


책, <에로스의 종말>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640006

다큐, <달팽이의 별>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7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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