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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

by lala

물론, 그런 속 시원한 상상은 내 머릿속에서만 아주 역동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이건 내가 인내심이 강해서도 아니고 지지리 등신이어서도 아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가는 소문 무성한 교회에서 어떤 와글와글한 소리가 퍼져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도전을 건네고 또 그 도전이 건네 줄 파란에 대응할 만한 여력이 내게는 없었다. 현실은 늘 교회의 기대와 달랐고 내 모든 진실을 교회에 말할 수는 없었다. 교회 생활은 맨얼굴을 보여 줄 수 없어 화장과 치장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기 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난 이것이 비단 나와 내 가족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다.


나는 서연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생리를 아주 잘 깨우치게 도와주었다. 딱 달라붙는 상의를 입고 그렇게 크게 기지개를 켜면 어떡하니, 넌 가슴이 큰 편이라 남들이 흉본다. 도대체 여자애가 걸음걸이가 그게 뭐니, 일자로 걷는 연습 좀 해라. 왜 웅앵웅앵 거리면서 말을 하니, 격 떨어지게 굴지 마라. 늘 배고플 정도로 적게 먹어라, 살찌면 보기 흉하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은 주일이었고 나는 서연이와 함께 교회를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서연이가 눈에 거슬렸다. 결국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제대로 서연이를 훑어보았다. 머리는 부스스하지 않은지, 어디 뭐 얼룩 묻은 건 없는지, 운동화는 깨끗한지. 그러다가 나는 서연이의 블라우스에 시선을 멈췄다. 다림질을 좀 할 것이지 구깃구깃 구겨진 꼴이 꼭 엄마의 쭈글쭈글한 입술 모양을 닮은 듯했다. 그 입술로 나에게도 끊임없이 잔소리하고는 했었지. 불쑥 떠오른 엄마 생각에 나는 머리를 내젓고는 급히 쏘아 붙였다.


“너, 블라우스가 그게 뭐야. 교회 가는데 단정하게 다려 입으면 좀 좋으니.”

“예배드리러 가는 건데요, 뭘.”

서연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블라우스를 쥐었다 펴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앞서 걸어가는 서연이 팔뚝을 잡아채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답답한 소리 하네, 교회니까 잘 차려입고 가야 하는 거야. 거지 같이 다니면 너만 욕먹는 줄 알아? 나까지 싸잡아서 흉봐.”

나는 다그치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잘 입을게요.”

풀이 죽은 아이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난 여기서 더 따끔하게 훈계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됐어, 그냥 돌아가.”

자식 키워본 부모들은 알 것이다. 훈계할 때는 단호하고 냉정해져야 하는 법이다. 서연이의 눈이 커졌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예배드리지 말고 집에 가라고요?”

“이딴 식으로 입고 창피해서 예배드리겠니? 그냥 가.”

“하지만...”

아이는 교회 첨탑을 흘깃 보고는 말대답하려는 듯 입술을 뗐다.

“네 나이에는 네게 필요한 게 뭔지 모르는 법이야, 엄마 말 들어.”

나는 좀 더 너그러워진 말투로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한창 회상에 젖어있는 그때 마주한 집사님의 입에서 끝을 알리는 아멘 소리가 나오자 나는 서둘러 두 눈을 감고 아멘을 따라 외쳤다. 슬며시 눈을 뜨니 집사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내 두 손을 쓰다듬어주었다.

“서연 엄마, 그동안 애한테 뭘 잘못했던 건지 회개기도 해봐요. 나도 중보기도 해줄 테니까, 응?”

나는 그 말에 희끄무레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헤어질 시간이었다.


한 차례 신명 나게 굿을 치른 기분이다. 전력을 다한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허공을 응시했다. 쉭쉭 거리는 아이의 숨소리만이 고요한 병실을 채우고 있었다. 서연은 산소 호흡기 때문에 죽지 못하고 숨을 쉬는 걸까 아니면 살아보겠다고 숨을 쉬는 걸까. 난 그것조차도 알지 못하는 엄마다.


그때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당신도 서연이가 저렇게 된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

나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숨이 들린다. 그 소리가 거슬린 나는 휙 얼굴을 돌려 남편을 쏘아봤다. 그래, 죽어가는 서연이는 말을 못 하지만 당신은 아니지. 적어도 당신은 지금 살아있으니까. 화살이 남편에게로 향한다.

“왜 한숨이야, 하! 그러니까 당신도 이게 다 내 책임이다 이거지?”

“당신 지금 너무 예민해. 진정 좀 해.”

남편은 저벅저벅 걸어오며 느릿하게 대답했다. 걸음마저 남편의 성격을 닮은 듯했다.

“그렇게 속 편해서 참 좋겠어, 딸이 죽어 가는데도...”

“당신 집에 가서 눈 좀 붙여.”

남편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쉬어빠진 낮은 목소리가 내 심장을 움켜쥐는 듯하다. 잠시 말이 없어진 우리 둘 사이에 또다시 쉬익 거리는 아이의 숨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남편을 쳐다보았다. 18년을 함께 산 사람에게서 예의 안정감이 느껴졌다. 하긴, 그런 권태로움 말고 남편한테 얻을 수 있는 게 딱히 뭐가 있을까 싶다. 지금은 오랜 세월 동안 자리 잡은 염증이나 싫증 따위라도 지푸라기 잡듯 잡아서 평상시로 되돌려 놓고 싶은 심정이다. 여태까지 우리 세 식구는 별일 없이 무탈하게 잘 지내왔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것.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우린 지극히 평범한 가족이었다.

“서연이 깨어날 거야.”

“응, 그럼.”

나의 의지가 담긴 말을 들은 남편은 습관적으로 내 등을 토닥이며 말한다.

집에 들어온 나는 욕실에 물부터 받았다. 꼬박 하루 남짓 씻지 못했더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클렌징 워터를 솜에 묻힌 나는 쓱쓱 뺨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눈에 보이지 않았던 먼지들이 솜에 쓸려 들러붙어 있었다. 지금의 상황도 이렇게 깨끗하게 씻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러운 솜을 쳐다보며 생각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딸아이 마음에 이런 먼지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던 걸까. 부모로서 적절하게 아이의 때를 씻겨 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일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나는 머리를 풀고 세면대에 손바닥을 얹은 뒤 거울을 쳐다보았다. 습기 찬 거울은 조금씩 내 얼굴을 지워가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된 듯했다. 내가 죄인이었을 때의 모습을 눈 뜨고 보는 것은 고역이니까. 나는 욕조에 받아진 물에 발을 담그고 미끄러지듯 허물어졌다. 따뜻한 물은 나를 지탱해 주던 단단한 뼈들을 하나하나 해체한 뒤 나를 품에 안는다. 무릎을 세우고 가슴 쪽으로 얼굴을 묻은 나는 점점 더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그동안 애한테 뭘 잘못했던 건지 회개기도 해봐요’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눅눅한 공기를 찢고 내 피부를 파고들었다. 놀란 나는 퍼뜩 고개를 위로 쳐든다. 그러자 뚝뚝, 하고 천장에 달린 물방울들이 얼굴 위로 떨어졌다. 나는 눈을 지릅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떨어져 있는 물방울들이 난데없이 하나로 합쳐지더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하고 낙하했다.


내 이마로, 내 눈으로, 내 볼로. 우리 서연이도 저렇게 떨어졌더랬지. 그 착하고 말 잘 들었던 아이가 투신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분명 누군가가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을 거야. 우리 순진한 애는 거기에 휘말린 거고 어찌할 새도 없이 저렇게, 저렇게... 내 마음에 핏빛 멍울이 진다. 나는 체기가 있는 사람처럼 주먹 쥔 손으로 가슴 주위를 퍽퍽 치고 또 둥글게 매만지기를 반복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서연이가 싸움에 휘말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아이가 야간 자율 학습을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일찍 집에 들어 온 날이었다.

“서연아,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내 말은 쾅 닫힌 문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나는 급하게 서연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닫힌 방문 앞에 서서 주구장창 문을 두드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쿵쿵 치는 주먹 소리 보다 더 크게 내 심장이 고동치는 듯했다.

이윽고 문이 벌컥 열리자 내 주먹은 갈 길을 잃고 허공에 정지했다. 그대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나는 허리를 굽혀 아이의 터진 입술과 붉은 뺨을 번갈아 가며 보다가 아이의 옷으로 시선을 향했다. 교복은 누군가한테 밟힌 건지 시커먼 발자국으로 도배가 됐고, 팔뚝은 시멘트에 쓸린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서연은 고개를 땅 밑으로 숙인 채 별일 아니라고 웅얼거렸다.


나는 아이의 팔뚝을 붙잡고 나와 소파 위에 앉히고서는 자초지종 따져 물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리 구체적으로 캐물어도 서연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두루뭉술했다.

불현듯 얘가 내 말을 이해하고 대답하는 건지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듣기 능력이 떨어지는 애가 언어 시험은 어떻게 치르고 있는 건지 걱정이 밀려왔다. ‘혹시 이래서 비문학을 그렇게 틀려서 오는 건가.’ 찰나지만 국어 학원을 아예 다시 바꿔야 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이닥쳤다.


얼마나 의미 없는 대화가 흘러갔는지는 모르겠다. 바닥에 앉아 있던 내 엉덩이는 마비가 될 지경이었고, 머리는 피가 쏠린 것처럼 어지러웠다. 결국 서연이가 못 참겠다는 듯 화장실로 향했고 아직 대화를 끝내지 못한 나는 서연이가 떠난 자리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일로 속을 끓인 적이 없었던 터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할지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때 소파 위에 놓인 딸아이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들리자 나는 본능적으로 팔을 뻗었다.

[오늘 나 때문에 싸움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

상처 잘 치료하고 내일 보자.

최도윤]

“하...”

문자를 보는 내내 손이 덜덜 떨렸다. 나는 일단 침착하게 최도윤이라는 아이의 휴대폰 번호를 저장했다. 이어 서연이 휴대폰에 뜬 최도윤의 프로필 사진을 눌렀을 때였다. 덜컥하고 열리는 문소리와 함께 걸어오는 서연이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얼른 자세를 고쳐 앉고는 휴대폰을 소파 위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순간 내가 이렇게까지 민첩했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연이는 휴대폰을 홱 낚아채고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내 머릿속에는 프로필 속의 짧은 숏 컷에 앞머리를 길게 내린 남자 얼굴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이름조차도 생소했다. 분명한 건 내가 알고 있는 성적 우수자 명단에는 없는 이름이란 점이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녀석은 서연과 어울릴 수 없는 부류라는 것을.


휴대폰을 꺼내든 나는 바로 남편에게 전화했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고 나서 지금은 전화 받을 수 없다는 친절한 안내 음성이 나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길게 이어지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바닥에 앉아 팔꿈치를 소파에 얹은 나는 밀려오는 두통에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이마에서 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속 한번 썩힌 적 없던 애가 불량한 녀석이랑 엮여서 얻어터지고 왔다는 사실이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담임선생님도 알고 있는 걸까. 생기부에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자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드디어 기다리던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나는 참았던 말들을 쏟아냈다.


“서연이가 야자도 빼먹고 피 떡칠이 돼서 집에 왔어. 물어봐도 그냥 친구들끼리 조금 다퉜다고 하는데 이거 학폭위에 신고해야 할 것 같아. 할 수 있음 형사 고소에 민사 소송까지 하고. 내일 담임선생님을 좀 만나봐야...”

“잠깐만, 잠깐.”

남편은 휘몰아치는 내 말 중 어느 것 하나도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마치 조금만 더 기다리면 문제가 해결이라도 될 것처럼.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중지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서연이가 친구랑 조금 다퉜다고 그랬다고?”

잠시 뒤 남편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는 무슨 친구야! 그딴 애랑 서연이가 친구라는 게 말이 돼? 뭐, 어쨌든 서연이는 별일 아니라는데 내가 보기엔 최도윤이라는 질 나쁜 애랑 엮인 것 같아.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야겠어. 처음부터 싹을 잘라버려야...”

“서연이가 별일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애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그러면서 크는 거니까.”

나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반대편 귀에다 휴대폰을 갖다 대었다. 애가 맞고 들어왔다는데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건가. 마치 예수님처럼 한 뺨을 맞을 때 다른 쪽 한 뺨을 갖다 대지 않은 것이 불만이라는 듯 말하는 남편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항상 이런 게 문제였다. 남편은 내가 말하는 모든 걸 그저 시큰둥하게 받아들이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늘 꼬투리를 잡고 법석을 떠는 여자가 되었고, 남편은 늘 무마하고 뭉그적거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편은 나를 자부락자부락 거리는 사람 정도로 의미를 두고 있는 듯 했고 그마저도 자신이 생각한 선을 넘으면 일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편은 늘 나의 예민하고 과민한 성격이 모든 문제의 원흉인 것처럼 치부하고는 했다.

“당신은 늘 이런 식이지. 나쁜 역할은 늘 내 몫인 것 같네.”

서늘해진 마음을 투영해주듯 목소리가 볼품없이 갈라져 나왔다.

“그게 아니라, 요즘 당신 너무 예민하잖아. 갱년기 때문에 힘든 건 이해하는데...”

나는 기어이 귀에서 휴대폰을 떼고 소파에 집어 던져버린다. 아직 통화 중인 휴대폰에서는 남편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거렸다. 마치 녹슨 그네가 끽끽거리는 소리와도 같았다.


“엿이나 먹어.”

나는 목까지 차오른 말을 뱉어냈다.

그때 지잉 소리와 함께 유리 선반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 깜짝 놀란 나는 그제야 늪지처럼 눅눅하고 축축했던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뒤 몸을 일으켜 선반 위에 올려 진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임우진.

“하아...”

남편 이름을 보는 순간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그대로 철퍼덕 욕조에 앉았다. 휴대폰은 계속 울리고 나는 미끄러지듯 머리를 깊이 물속에 집어넣었다. 갱년기 때문에 힘든 여자가 유일하게 피할 곳이 여기 욕조 물속밖에 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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