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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

by lala

요즘 제일 짜증나는 건 단연코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짜는 일이었다. 국, 영, 수 과목을 어떻게 돌려야 가장 효율적으로 후회 없이 잘 편성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수학이 좀 약한 것 같아 학원을 옮기려다 보니 다른 과목과 시간을 조율하는 게 어려웠다. 마음에 드는 수학 학원을 고르는 것도 애를 먹어서 두 번이나 환불 처리를 하고 레벨 테스트를 치러서 겨우 상급반에 배정시킬 수 있었다. 여간 스트레스 받는 일이 아닐 수 없지만 학원 설명회에서 자신감에 찬 선생의 일장 연설을 들으니 지금까지 누적된 고통이 어느 정도 사르르 녹는 것도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다. 학업 성적 체크부터 학교생활, 학원 스케줄까지 맞추다 보면 어떨 때는 내가 17살 서연이가 된 기분마저 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서연이는 사춘기도 없이 무난하게 이 시기를 잘 지내왔다는 점이다. 주변에서 보면 사춘기랍시고 부모한테 대들고, 학교에서 엇나가는 애들도 많은데 우리 서연이는 그런 부류와는 질이 달랐다. 무던하고 착해서 내 말이라면 그저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말 그대로 키우기 쉬운 아이랄까.

누군가는 이런 서연이를 보고 서연 엄마는 복 받았다며 너스레를 떨고는 했지만 사실 서연이가 처음부터 이렇게 고분고분한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함과는 조금, 아주 조금 거리가 먼 아이였다. 서연을 학교라는 공간에 안치시키기까지는 눈물겨운 나의 노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은 유치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등원 준비를 마치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유치원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면 어이없게도 서연이가 천연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선생 몰래 유치원에서 빠져나온 서연이가 내 뒤를 밟아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등원시켜 놓은 지 16분 만에 서연이 스스로 하원한 것이다.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을 매일 겪어야 했고, 유치원 원장은 입이 마르도록 내게 전화를 해서 상담을 요청해 왔다. 마치 잔소리만 하면 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나는 결국 서연이를 다른 유치원으로 전원 시켰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 서연이가 없어졌는데 혹시 집에 갔나요?”

집으로 쫄래쫄래 뒤쫓아 오는 서연이를 윽박질러서 못 들어오게 했더니 이제는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실종된 줄 알고 경찰과 함께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앞이 아찔하다. 아이를 발견한 건 집 근처 카페였다. 몇 시간이 흘러도 부모가 보이지 않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페 사장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헐레벌떡 달려간 그곳에서 서연은 말갛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한 손에는 하루 종일 열심히 그린 듯 한 그림이 쥐어져 있었다.


아이는 그 이후로도 유치원 포비아를 가진 사람처럼 굴었다. 참 창의적이고 영악하게 다양한 변명으로 등원을 거부했고 유치원 옮기기를 네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지난한 여정은 마지막 유치원에서 종지부가 찍혔다.

“퇴원시킬게요. 저희는 더 이상 감당 못 하겠습니다.”

잔머리 한 올 흘러나오지 않게 헤어스프레이로 머리카락을 고정한 그녀는 안경 너머로 나를 건너다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그 심드렁함이란! 나는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더 이상 옮길 유치원도 없었고 왠지 여기서 포기하면 정말 내 아이가 지진아가 된 듯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기로 똘똘 뭉친 눈으로 퇴원은 절대 안 된다며 매달렸고 원장은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게 다 애를 잘못 키운 제 불찰이에요. 사죄의 의미로 밖에서 손을 들고 있겠습니다.”

나는 그때 왜 그렇게까지 했던 걸까. 원장실을 나온 나는 무릎을 꿇고 손을 들었다. 이렇게 벌을 서 본 게 언제였더라. 어렸을 적 동생이랑 싸워서 손들고 벌섰던 기억이 잠시 눈에 스쳐 지나갔다. 마흔 살이나 돼서 이러고 있을 줄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잘못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때는 동생과 다퉜던 게 잘못이었다면 지금은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어떤 방법을 막론하고서라도 서연이를 사회 속에 욱여넣어야겠다는 집념이 배속에서 바그르르 끓어올랐다. 유치원이라는 첫 단추조차 제대로 끼워주지 못한다면 모든 게 어긋나리라는 조바심도 한몫했다. 시간이 지나자, 수업이 끝난 유치원 선생님들이 자기들끼리 쑤군거렸고 아이들은 킥킥거리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엄마, 왜 벌서고 있어요?”

어느새 다가온 서연은 내 팔을 끌어내리며 물었다.

“너 때문이잖아. 서연아, 네가 유치원에서 공부도 안 하고 말썽 피우니까 네 엄마가 수치를 당하잖니.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주변 친구들이 쑥덕거리는 거 보이지? 엄마를 봐서라도 이제 말 잘 듣고 유치원 다녀야 하지 않겠어?”


기다렸다는 듯이 문밖으로 나온 원장이 보란 듯 서연을 보며 질책했다. 서연은 눈을 껌뻑거리더니 곧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서연을 안고 달래 줘야 했던 건지 원장에게 따졌어야 했던 건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손을 꼿꼿이 하늘 높이 쳐 올리고 애들이 하원할 때까지 그대로 벌을 서고 돌아갔다. 그게 나의 최선이라고 믿으면서. 원래 엄마들은 어느 정도 자식을 망가뜨리는 법이다. 방법이 다 다를 뿐. 그리고 나는 내가 딸을 망가뜨린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아이가 내 앞에서 죄책감을 갖고 눈물을 흘렸던 그날, 바로 그날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임서연도 없었을 것이다. 확실히 서연이는 그 날 이후로 변했으니 말이다. 서연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과 해야 할 일들을 정확하게 인지한 듯 했다. 내 몸을 뚫고 나온 또 다른 나답게 확실히 축조된 것이다.


“쉬익... 쉭....”

그랬던 아이가 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원에 누워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이 기가 막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손등을 따라 눈물이 뚝뚝 떨어질수록 눈앞의 서연이 뭉개져 보였다. 말 잘 듣고 착한 아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걸까. 가만히 누워있는 서연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고, 한참이나 팔을 쓸어내리던 나는 탁자 위에 놓인 시계를 흘깃 쳐다보았다. 서연이가 아파트에서 떨어진 지 22시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 머릿속은 끊임없이 사건 당일로 무한 되감기를 하고 있다.


서연이가 아파트 난간에서 추락했던 시간에 나는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한 손에는 무거운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뜨거워진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 있었다. 보름 뒤에 치러질 기말고사가 화두였다. 생각보다 형편없었던 중간고사 성적 때문에 학원이며 선생을 물갈이한 지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소수정예로 구성된 수업에서 아이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 건지 이십 분 넘게 통화하던 나는 전화로는 부족하겠다 싶어 상담 예약까지 걸고서야 뜨끈해진 휴대폰을 귀에서 치울 수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는 그때 나는 누군가의 손아귀 힘에 이끌려 몸이 홱 돌아갔다.


“서연 엄마, 놀라지 말고 들어. 놀라면 안 돼!”

깜짝 놀란 나는 큰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익숙한 얼굴에 서둘러 미소를 머금었다. 마주한 얼굴은 저번 입학식 때 알게 된 서연이네 반 학생 엄마였다. 서연이가 신입생 대표로 강단에 선 걸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하도 내 팔을 툭툭 쳐가면서 야단을 떨었던 터라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만 알았다. 그랬던 그녀가 그날만은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고 서 있었다.


“놀라지 마, 다행히 자동차에 떨어지긴 했다는데...”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그녀의 뒤로 요란스러운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무슨 사고 났나 봐요.”

그게 내 딸 추락 사고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게 느린 동작처럼 흘러갔다. 구급차에서 내리는 구조대원들, 뒤따라 들어오는 경찰차, 웅성거리고 에워싼 아파트 주민들, 내 눈치를 보면서 입을 가리고 웅성대는 소리들. 공감각으로 펼쳐져야 할 현실은 깨져버린 유리 조각들이 하나하나 몸에 박히듯 분절되어 느껴졌다. 시끄럽게 앵앵거리던 구급차 소리가 갑자기 음소거가 되고 이어서 사진처럼 찍히던 장면들은 느리게 영상처럼 눈에 담겼다. 갑자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누군가의 팔에 감겨 있었고 내 몸은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만, 잠깐...”

나는 들것에 실려 올라가는 무언가를 보고 발걸음을 옮겼고 피로 범벅이 된 천을 끌어 내렸다.

“어흑...”

끝내 얼굴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서연이를 위해 기도합시다.”

서연이가 의식불명이 되고 다음날 아침, 어떻게 소식을 듣고 온 건지 교회 집사님 한 분이 병문안을 왔다. 정신이 없는 통에 한사코 거절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서연 엄마, 이럴 때일수록 합심해서 기도해야지 무슨 소리야. 내가 몇 십 년 더 살아봐서 잘 아는데 이런 일 있다고 믿음 흔들리고 그러면 못써요. 오히려 더 열심히 예배에 나오고 중보기도 부탁하고 그래야지. 믿음으로 승리합시다. 네?”


나에게 신념을 강조하는 그녀는 같은 루디아 사랑방에 배정된 집사님이었다. 그녀는 크루아상처럼 흘러내는 머리칼을 번갈아 귀 뒤로 넘기며 한 시간가량 굴곡진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처음에는 아, 네, 라고 말하며 맞장구치던 나는 점점 혼이 빠져나간 듯 쇠잔해졌다. 스무 살 때 멋모르고 시집와서 남편에게 애가 딸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사랑과 헌신을 다해 남의 씨를 키워냈다는 그녀의 기박한 인생이 지금 내 상황과 어떤 교차점이 있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웠다.


집사님은 마지막으로 내 손을 감싸 쥐고 중보 기도를 해주고 싶다며 눈을 감았다. 나는 잠시, 아주 잠시 두 눈을 따라 감았다가는 이 자리에서 실신할지도 모르겠다는 아찔함이 밀려왔다. 그만큼 체력은 바닥이었고 인내심은 이미 한계였다. 내 상태가 어떻든 상관없이 집사님은 마른 입술에 침까지 묻히는 준비 작업 끝에 장황한 기도를 시작했다.


꼬박 열댓 시간을 깨어 있었던 나는 몇 번이나 까무룩 잠이 들 뻔 했다. 당연히 집사님의 모든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몇몇 단어나 문장들은 아프게도 심장을 후벼 팠다. 마치 넝마처럼 헐어버린 내 몸을 두고 뾰족한 바늘이 엉성하게 기워대려고 난동을 부리는 듯이 느껴졌다.


“어리석은 영혼이 자살을 시도 하고, 제 자식을 간수하지 못한 어미를, 자살이라는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여기까지 들은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내 앞에는 열심히 주술을 외워대는 듯 설치는 한 인간이 보였다. 그녀는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으며,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기도를 하기에는 너무 시끄러웠다. 이걸 주님도 분명 아시길 바랐고 나는 이 여자를 제발 치워달라고 마음으로 빌었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은 하나님과의 소통도 단절시킨 듯했고, 반복되는 기도 내용은 20분을 넘기고 있었다. 질려버린 나는 그녀 뒤에 있는 벽에 초점을 응시했다. 흰 벽 위에 검은 점들이 묻어있었다. 누군가의 피자국일수도, 약품일 수도 있을 그 점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나는 불현듯 지금 당장이라도 이 모든 행위를 멈추고 집사님께 소리라도 질러서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배 속에서 용암처럼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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