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모든 건 내 탓일지도 모른다. 창백한 얼굴로 쌕쌕거리며 숨을 내쉬는 딸아이의 얼굴에서 얼핏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지쳐서 나가떨어져 버린, 생명의 실오라기 끝을 붙잡고 그저 견디듯 버티는 얼굴이다. 착잡해진 나는 눈을 감고 눈썹과 관자놀이 사이를 꾹 눌렀다. 두통이 밀려왔다.
서연이가 아파트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은 건 저녁 6시 40분쯤이었다. 그 시각 나는 고객사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서버 이슈 때문에 야근 각을 재면서 일하던 중이었다. 요즘 들어 장애가 터지는 날들이 부지기수로 많아지자 몸도 남아나질 않았다. 엔지니어라면 다들 갖고 있는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아직은 수술보다는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사의 권유에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곧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할 판이었다. 이렇게 몸이 힘들 때는 사무실에서 원격으로 고객사의 장애 처리를 봐주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갑이라는 위치가 몸에 배어 있는 다심한 고객사는 열이면 열 모두 다 한사코 자사 센터 방문을 요구했다. 그렇게 고객사에 방문하게 되면 장애가 해결될 때까지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두고 갑갑하게 회사 안에서 상사 눈치보다는 것보다야 외부 거래처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푸념하기도 하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철저하게 단절된 전산 센터 안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다 보면 철저히 외부인이 된 기분이다. 동떨어진 섬에 혼자 갇혀서 풀리지도 않는 에러들을 잡아내려고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일이 바로 내 일이었다. 그렇게 몇 달간 고객사에 진을 치고 있다가 다시 회사로 복귀하면 그동안 밀렸던 일이며 회사 사정들을 따라가느라 또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런 눈칫밥을 먹고 사는 날들이 십 년을 넘어가자 이제는 과식을 넘어서서 소화 불량까지 걸릴 지경이었다.
이런 비슷한 느낌은 집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하루 종일 밖에 있다가 들어오면 늘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아내와 딸 사이에 벌어져 있었다. 내가 느끼기에 지극히 사소한 부분까지 윤희는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고는 했는데 사실 내게는 이것이 물건을 샀을 때 딸려 오는 사용 설명서를 읽는 것처럼 지루한 일이었다.
물론, 사용 설명서는 분명 필요하다. 단,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 말이다. 그전에는 그저 따닥따닥 붙은 글자들의 나열에 불과하다. 눈으로 대충 쓱 훑고 찬장 어딘가에 처박아 두는 사용 설명서처럼 주절주절 떠드는 아내의 말은 귀로 흘러 들어와 내 의식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터였다.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아내에게 맡기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아내가 이런 말들을 꺼내려는 시동이 보일 때면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회사 일 때문에 피곤하고 힘들다는 말들로 방어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힘든지 시나리오도 다 머릿속에 생각해 두었다. a안, b안, c안으로 구성해 놓은 방어책들은 대부분 윤희가 알지 못하는 기술 용어로 촘촘하게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는 너무 집안일에 무성의하다고 나무랄지 모르겠지만 회사 일 때문에 힘들다는 건 어느 정도 진실이 녹여져 들어간 사실들이었고 이 모든 건 살고자 하는 나의 자구책이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회사가 아닌 고객사로 직출한지 두 달이나 지났을 무렵이었고 근무시간은 진즉에 초과해서 강제로 연차까지 내면서 출근한 날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애 문제도 잘 잡히지 않자 시스템 담당자가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채근하던 중이었다. 사람과 장비 사이에 껴서 애를 먹던 중 아내한테서 연락이 왔다.
“늦어.”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전산 장비 소리만큼이나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던 나는 패닉에 가까운 아내 목소리에 휴대폰을 바로 들었다. 띄엄띄엄 연결되지 않은 단어들이 즐비하게 이어졌고 그 사이사이는 울음으로 메워졌다.
결국 구급대원한테 자초지종 상황 설명을 들은 나는 그대로 병원으로 향했다. 굵직하고 빨간 글씨로 쓰인 응급의료센터로 들어가자 술에 취한 채 빨리 치료해 달라고 고성을 지르는 중년 남자가 보였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라고 말리는 간호사가 나를 흘끗 보더니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했다.
겨우 안내받은 곳으로 허겁지겁 달려가니 저 멀리 의자에 웅크리고 앉은 윤희가 보였다. 아내를 지나친 나는 수술중이라고 적힌 빨간 글자 앞까지 다가가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우뚝 섰다. 그제야 내 딸이 수술실 안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고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나는 허, 하는 바람 빠진 소리와 함께 마른세수를 했다. 뒤돌아보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괴로워하고 있는 윤희가 보였다.
“여보.”
움츠러든 아내의 한 쪽 어깨에 손을 올린 나는 쉬어빠진 소리로 윤희를 불렀다. 이윽고 핼쑥해진 얼굴로 산발 머리가 된 윤희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애 상태는? 병원 이송은 빨리 된 거야? 수술 들어가기 전에 의사는 뭐래?”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질문을 퍼부었다.
“흑... 여기저기 타박상에... 흐윽... 의식이 없어서... 일단 빨리 수술실로 옮겨야 된다고...”
윤희는 엄지와 검지로 콧방울을 움켜잡고는 연신 흘러내리는 콧물을 들이켰다. 윤희의 목소리보다 들이키는 콧물 소리가 더 커서 좀처럼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나는 자꾸만 몸을 옹송그리는 윤희의 두 팔을 붙잡고 흔들며 물었다.
“좀 똑바로 얘기해 봐, 생명이 위급한 상태인거야? 아니, 그러니까 애가 확실히 자동차 위로 떨어진 건 맞는 거지?”
“으응, 자동차에...”
나는 그 말에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 6층이나 되는 고층에서 추락했는데도 현장에서 즉사하지 않은 건 자동차 지붕이 충격을 분산해 준 덕이었다. 이걸 불행 중 행운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가슴이 저릿했다.
“아니, 근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애가 어쩌다가 떨어진 거야? 집에 친구랑 있었다고?”
상황 파악이 완료되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내가 언성을 높여가며 물었다. 다 큰 애가 아파트 난간에서 추락할 이유가 뭐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르겠어. 지금으로써는...”
윤희는 눈물로 범벅된 볼을 씰룩거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둘이 싸운 거 아냐? 그 친구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최...”
내 머릿속에서 열댓 명의 목소리가 쑥덕거리고 있었다. 서연이가 홧김에 떨어진 걸까? 딸아이가 그렇게 충동적이었던가? 아니지, 서연이가 그랬을 리가 없다. 그러면 친구가 밀쳐서 사고로 추락한 것일 수도 있다.
“최도윤.”
“누구?”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되물었다.
“화장실 갔다 와보니까 서연이가 떨어져 있더래.”
윤희가 질끈 감은 눈을 한 손바닥으로 가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말 같잖은... 말이 돼? 서연이가 왜? 아니, 당신은 애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생겨?”
나도 안다.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문제는 그 말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무참하게 뱉어졌다는 거다.
“하아, 이게 또 내 탓이야?”
눈두덩이가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한 윤희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소리 질렀다. 나는 말라비틀어진 입안에 침을 꿀꺽 삼켰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윤희는 한숨을 내쉬고 벌떡 일어나서는 톡톡 손톱을 물어뜯으며 의자 주위를 맴맴 돌았다. 윤희의 턱은 쉴틈없이 질끈 거렸다. 분노와 좌절감을 삼키려고 안간힘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내 눈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했다. 이 모든 게 꿈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아주 지독한 악몽이라고 제발 꿈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고 수십 번이나 되뇄을 때였다.
“당신 최도윤이라고, 기억 안 나?”
잠시 뒤 호흡을 고른 윤희가 예의 모습처럼 카랑카랑 날 선 목소리로 토해내듯 말을 꺼냈다.
“뭐?”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그 이름에 대한 정보를 끄집어내려 애썼다.
“최도윤이라고, 최도윤! 서연이 피투성이 되게 만들었던 애. 이래도 내가 갱년기라서 예민하게 굴었다고 생각해?”
윤희는 원망하듯 나를 째려보았다. 그때 일을 제대로 처리했더라면 이런 사단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무언의 질타였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그대로 철푸덕 의자에 앉았다. 나는 몇 개월 전 있었던 그날을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먼저 연락이 온 건 윤희가 아닌 서연이었다.
[아빠, 나 오늘 친구랑 싸워서 좀 다쳤는데 별 일 아니에요. 친구랑 화해 했구요.
혹시 엄마한테 전화 오더라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