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받은 나는 바로 알겠다고 답장을 해주었다. 서연과 윤희 사이에 냉기류가 흐른 건 전부 다 망할 호르몬 때문이었다. 갱년기가 온 윤희는 모든 게 예측 불가능이었다. 감정의 변화가 제로백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계란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분명 좀 전까지는 입 끝에 웃음이 걸려서는 깔깔거리고 웃다가도 일순간 급랭해졌다.
언젠가 한 번은 이 일 때문에 크게 싸운 적도 있었다. 사건은 내가 그나마 편하게 쉴 수 있는 주말 소파에서 벌어졌다. 한창 좋아하는 오지 탐험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아내가 옆에 앉더니 채널을 돌렸다.
“뭐야, 보고 있는 걸 돌려?”
“당신은 무슨 허구한 날 자연만 보고 앉아 있어? 아, 됐어. 지금 드라마 할 시간이야.”
이런 순간 남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다. 필사적으로 싸워서 건질 것 없는 감정싸움을 한 뒤 쭈그러져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양보하고 감정을 다치지 않을 것인가. 물론 두 선택 모두 결론은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순전히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알고리즘이고 결국 나는 체념하고 후자의 선택을 내렸다.
길게 한숨을 내쉬려는 그때 갑자기 아내가 훌쩍였다. 갑작스러운 행태에 놀란 내가 눈동자만 굴려서 아내를 곁눈질한다. 탁자 위에 있는 크리넥스까지 톡톡 뽑아 든 아내는 눈물까지 훔치며 콧물을 들이켰다.
“... 왜 그래?”
당황스러움이 한껏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드라마 때문인 건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응시해 보았다. 장을 보고 들어온 중년 여자가 요리하는 장면이었다. 무슨 요리를 하는 건지 고개를 빼고 쳐다보는데 아내가 도리질하며 말을 꺼냈다.
“너무 적막하잖아, 끄윽. 혼자 집에서 저렇게...”
나는 아내가 장난하는 건가 싶어 몸을 구부려 아내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윤희는 얼굴까지 빨개져서는 고개를 숙이고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다시 티브이로 눈을 돌렸다. 이게 이렇게 심오한 장면이었던 건지 확인하고자 함이었으나 곧이어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윤희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뭐야, 도대체. 이랬다가 저랬다가 감정이 널을 뛰어.”
내가 어이없는 투로 말하자 갑자기 아내가 윽박질렀다.
“뭐가 어쨌다고 난리야? 말도 참 예쁘게 한다, 아주. 감정이 널을 뛴다고?”
“아니, 내 말은...”
“하아, 진짜. 갑자기 열이 확 나네. 에어컨 좀 틀어봐.”
윤희는 연신 손부채질하며 에어컨을 가리켰다. 나는 아내를 흘깃 쳐다보았다. 아니, 더운 사람이 키면 되지. 이런 일은 꼭 나를 시키려 든다. 끙, 하며 무겁게 몸을 일으킨 내가 에어컨을 켠 지 정확히 5분이 지나자 또 새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어휴, 추워 죽겠네.”
“참나, 뭐야 도대체. 더웠다가 추웠다가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장난치는 걸로 보여? 이거 봐봐, 소름 돋은 거.”
소매까지 걷어 올린 윤희가 팔뚝을 내 눈앞에 갖다 대며 말했다. 윤희 말대로 팔위로 오톨도톨한 좁쌀들이 올라와 있었다.
“어휴, 알았으니까 좀 치워.”
나는 눈앞에 알짱거리는 윤희 팔을 툭 치우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에어컨 전원을 끄고 뒤돌던 나는 하마터면 놀라 자빠질 뻔했다. 어느새 내 등 뒤에 서 있던 윤희가 팔짱을 낀 채 매섭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깜짝이야!”
“말을 꼭 그따위로 해야 해? 치우다니, 내가 물건이야?”
“왜 또 꼬투리 잡고 시비야? 당신 이상해. 내가 요즘 누구랑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사람이 이상해져가지고.”
“하! 무서워서 못 살겠네. 감정이 널을 뛰고 이상한 여자랑 어떻게 한집에서 살아?”
아내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 이후부터 거의 삼십 분 내내 윤희는 울분을 토해냈고 보름 동안 식탁 위에 아침밥은 차려지지 않았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하하거리며 드라마를 보던 윤희는 방문을 열고 나와 화장실로 향하는 서연을 보더니 갑자기 널던 빨래를 집어 던졌다. 서연의 얼굴 정면으로 빨래가 휙 감기더니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뭐야!”
갑자기 기습을 당한 서연이 윽박지르며 윤희를 노려봤다.
“이 집에서는 나만 일하지? 엄마가 빨래를 너는데 너는 쌩하고 지나가는 게 말이 돼?”
윤희가 딸아이보다 더 높은 고성으로 맞받아쳤다. 소파에 앉아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고 얼굴에 빨래를 집어 던지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엄마 진짜 미쳤어?”
“말본새 하고는! 당신도 입이 있으면 말 좀 해 봐! 이 집에 나만 살아? 어떻게 임 씨들은 다들 하나같이 이기적이야?”
갑자기 불똥이 내게 튀었다. 나는 목을 긁적이며 서연과 윤희의 눈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머릿속이 하얘져 버렸다. 일단 몸을 일으킨 나는 서연에게 다가가서 눈짓했다.
“서연아, 방으로 들어가.”
서연의 어깨를 감싸고 방으로 밀어내려는데 아이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들어가긴 뭘 들어가? 이거 혼자 다 널고 들어가. 임 씨들끼리 같이 널던지.”
한 움큼 쥔 빨래를 집어 던지며 윤희가 재차 소리쳤다.
“쓰읍, 들어가래도!”
나는 다소 험악한 얼굴로 입술을 말며 서연에게 다시 채근했다.
“아빠도 다 봤잖아요. 엄마가 잘못한 건데 왜 나한테 화내요?”
“이래서 가장이 바로 서야 돼. 가장이 무르니까 애가 부모한테 소리나 지르지. 아휴, 내 팔자야.”
등 뒤에서 곡소리가 내 신경을 긁어댔다.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빠는 만날 엄마 편이에요, 왜!”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발악하는 서연을 보자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장 엄마한테 사과하고 방으로 들어가!”
단언컨대 지금까지 입씨름했던 윤희와 서연보다 더 큰 고성이 내 입 밖으로 토해져 나왔다. 열이 오른 얼굴은 화끈하다 못해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앙다문 서연의 입 끝이 씰룩였다. 서연은 그림자처럼 어두워진 얼굴을 하고서는 끝내 돌아섰다.
윤희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장작 1시간 동안 욕하면서 광폭하게 집 안을 돌아다녔다. 나는 윤희를 달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달랬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귀가 아프도록 욕을 듣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윤희는 얼굴로 온몸의 피가 다 몰린 것처럼 새빨개지더니 더워 죽겠다는 듯 옷을 홀랑홀랑 벗어 던졌다. 빨래는 인격이 달린 양탄자처럼 거실이며 식탁 바닥에 내던져졌고 윤희는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해댔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이게 다 갱년기 증상이란 걸 알게 되었다.
문제는 안다는 것과 내가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카테고리라는 점이다. 윤희는 나보고 스위치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켜지거나 꺼지거나, 0이거나 1이거나, 맞거나 틀리거나. 늘 둘 중 하나인 아주 명확하고 단순한 사람.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내가 개발자라서 감성이 무디다거나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 편견 섞인 말이라면 발끈해서 화를 낼 의지도 있었으나 문제는 그 사람이 내 아내라는 것이다. 한 침대에서 같이 자야 하는 사람과 증오의 이불을 덮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나는 이런 시시콜콜한 일 외에도 이미 회사 일로 너무나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의 내 삶에 피로한 일을 한 개 더 추가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씻고 침대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가끔은 종종 내 코골이 소리에 놀라 잠이 깨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몸을 뒤척이고 있거나 꿈틀거리거나 멍하니 앉아 있고는 했다.
“당신은 좋겠다. 눈만 감으면 자서.”
새벽에 윤희는 나를 보며 말했다. 서로 눈이 마주친 게 화근이었다. 코골이에 잠이 깨더라도 눈은 뜨지 말았어야 했는데. 눈을 떴더라도 윤희를 보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내 부주의함을 질책했다.
“병원 가서 불면증 약 좀 처방받아 봐.”
나는 최대한 피곤한 목소리를 담아 대꾸했다. 서둘러 등을 돌리려 뒤척이는데 불쑥 아내의 푸념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나 우울증인 것 같아. 요즘 좀 우울해.”
불쌍해 보이려는 건지 아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둠 속에서도 무기력하게 두 팔을 축 늘이고 앉아 있는 윤희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갑자기 명치끝이 조여 왔다. 나는 아내가 저런 식으로 대화를 꺼낼 때마다 도대체 어떤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모든 에러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아내한테는 그 오류를 발견해 내는 게 어려웠다. 심지어 어떨 때는 윤희가 문제 해결을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숙고한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말이 안 통해, 라는 말이 바로 따라붙었다.
“나는 내가 삼분의 일짜리 인생을 사는 것 같아. 당신하고 나하고 서연이 뒷바라지하다 보면. 계속 갇혀있는 느낌이야. 답답해.”
그 말을 듣던 나는 하마터면 조소가 새어 나올 뻔했다. 나도 회사가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 좋으니 좀 혼자서 가만히 갇혀 지내고 싶은 심정이다. 풍경 좋은 자연 속에서 혼자 집 짓고 사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 그렇게 심신이 안정될 수가 없었다. 누구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없이 자유롭게 제발 좀 혼자 있고 싶었다.
“다들 그러고 살아. 당신 갱년기 때문에 더 힘든 거고. 병원 가봐.”
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제안한 뒤 반대편으로 등을 돌렸다. 뒤에서는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짐짓 모르는 척 두어 번 헛기침을 한 뒤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이런 상황에 서연이가 내게 먼저 문자 보낸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서연의 말대로 친구들이랑 싸운 사건은 시시콜콜한 해프닝 정도로 여겨졌다. 진짜 문제는 그걸 윤희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휴대폰을 가까이 둔 채 언제 걸려 와도 이상하지 않을 윤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윤희 성격을 닮은 듯 유독 까칠하게 들리는 벨소리가 걸려 왔을 때 나는 올 것이 왔다는 듯 짐짓 아무렇지 않게 사무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별일 아니야, 당신이 예민한 거야, 충분히 애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잖아. 한창 옥신각신하던 말이 침묵으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침을 삼켰다. 본능적으로 뭔가가 잘못됐다는 내 느낌은 적중했고 그로부터 거의 한 달 동안 또다시 아내는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