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도윤아. 여기 앞에 앉으면 돼.”
상담실로 들어가자 반타원형의 소파에 앉아 있던 형사가 희끄무레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서율고는 처음 와보는데 교정이 깨끗하고 좋네. 책도 많고.”
형사는 긴장을 풀어 보려는 듯 옆에 놓인 책장을 둘러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새로 리모델링한 상담실 안에는 급하게 사다가 끼워 놓은 것 같은 청소년 상담 책들이 어정쩡하게 놓여 있었고, 그보다 더 어색하게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형사가 내 눈앞에 앉아 있었다.
“저번에 이어서 몇 가지 좀 확인할 게 있어서 불렀어. 장소는 학교 상담실이 편할 것 같아서 담임선생님한테 부탁드렸던 건데, 괜찮지?”
저번에 보았던 수첩을 주섬주섬 꺼내며 형사가 물었다.
“네, 괜찮아요.”
“그래, 그럼 저번에 폭행당했다던 얘기부터 들어 볼 수 있을까?”
형사는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수첩 위에 펜을 갖다 댔다. 온화한 미소와 결이 다른 형형한 눈빛이 하나의 얼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순간 거북스러운 이 상황에 시선을 내리깔고 손톱 끝을 짓눌렀다.
“뭐, 긴장할 것 없어. 그저 저번처럼 편하게 서연이와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주면 돼. 그게 서연이와 너를 위하는 길이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형사의 입에서 나온 서연이라는 이름이 묵직하게 심장을 짓눌렀다. 그래, 서연이를 위한 거라면 난 뭐든 할 수 있다. 이렇게 낯선 형사와 어색하고 이상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폭행당했던 날은 화이트데이였어요.”
내 책상 위에 놓인 사탕, 초콜릿, 편지 무더기를 봤을 때 나는 오늘이 화이트데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소음과 함께 앞문이 탁 열리더니 서너 명 되는 여학생들이 무리 지어 내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야, 최도윤. 선물!”
명찰을 보니 2학년 선배였다. 일자로 뱅 머리를 내린 선배는 매직기로 쫙쫙 편 머리를 쉴 새 없이 뒤로 넘기며 내 앞에 꽃과 사탕을 들이밀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팔을 쳐가면서 킥킥거렸다. 나는 멍한 얼굴로 선배를 쳐다보다가 머쓱해져서는 시선을 돌렸다. 시선 끝에 서연이가 있었다.
“필요 없는데요.”
나는 서연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왜 그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선배는 내 시선이 붙박인 서연을 힐끗 보더니 손가락 관절을 뚝뚝 꺾으며 다가갔다.
“야, 너. 뭘 꼬라봐.”
“다른 반 학생 출입 금지예요.”
서연은 앉은 자리에서 빤히 선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말에 순간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미친. 뭐라는 거야?”
선배는 뺨이라도 칠 듯이 한 손을 추어올렸다. 그때 본능적으로 팔을 뻗은 내가 선배의 손목을 쥐어 잡았다.
"어머, 쟤 봐.”
뒤에 있던 2학년들은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고, 앉아 있는 애들은 쑤군거리기 시작했다.
“뭐해요, 지금.” 나는 잡고 있던 손목에 힘을 주며 선배를 노려보았다.
“유청하, 그만 해. 쪽 팔려.”
수업종이 울리자 뒤에 있던 친구 중 하나가 침을 찍 뱉으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선배는 어두워진 얼굴을 내 코앞까지 들이대며 조용히 말했다. 곧 보자. 나는 그 말이 정말 인사치레인 줄 알았다. 일단락된 줄 알았던 사건이 벽돌로 날라 올 줄이야.
“그래서 그 선배들한테 맞은 거니? 서연도 같이 불려가서?”
형사가 성마르게 물었다. 형사 뒤쪽의 벽을 쳐다보며 얘기하던 나는 그제야 형사에게로 눈을 돌렸다. 꽤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저만 끌려갔어요. 선배 남친이라는 사람이 커터 칼 들고 직접 찾아왔거든요.”
“그러면 서연이는 어쩌다가...”
“그러게요, 서연이는 왜 거기까지 찾아왔을까요. 그러지만 않았더라도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방과 후 나를 찾아온 건 유청하가 아닌 유청하 남친이었다. 탈색한 노란 머리, 비뚤어진 입매, 턱 밑에 난 여드름이 차례대로 눈에 들어왔다. 내 뒷덜미를 잡은 그는 엄지손으로 커터 칼을 밀고 당기며 조용히 따라오라고 협박했다. 다시 생각해도 떠올리기 싫은 역겨운 기억이다.
학교 뒷문에 있는 주차장까지 뒤따라갔을 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유청하가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짧은 목덜미에 비계 덩어리로 뒤덮인 남자와 기다리고 있는 여자 친구. 그리고 그 옆을 둘러싼 패거리들은 나에게 하나의 클리셰와 같다. 다른 애들은 겪지도 못했을 테고, 겪을 필요조차 없는 일들이 왜 나에게는 이토록 신물 나게 꾸역꾸역 찾아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날도 제발 빨리 시간이 흘러가길 기도했다. 욕지거리 좀 듣고, 뺨이나 몇 대 맞고 깔끔하게 끝났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정신 차려 보니, 나는 유청하 앞에 무릎 꿇린 채 앉아 있었다.
패거리 중 하나가 복부를 강타했고 이어서 수차례의 발길질이 이어졌던 것 같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이 너무 순식간이어서 나는 이게 정말 몇 분 동안 이어진 건지 체감조차 못 하겠다. 어쨌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유청하와 비계가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어울리는 한 쌍을 보며 따라 웃었다. 그러자 띵 하는 느낌과 함께 이마 밑으로 뚝뚝 무언가가 흘러 떨어졌는데, 흰 교복을 물들이는 검붉은 것을 보고서야 그게 피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 작게 신음이 뱉어졌다. 안개가 씐 것처럼 눈앞이 흐려지고 정신이 없는데 저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패거리의 시선이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고 나도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믿기지 않게도 임서연이 거기 떡하니 서 있었다.
서연은 교문 뒤쪽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두 손으로 호루라기를 붙들고 있는 힘껏 불러댔다. 그 이후에는 구멍 뚫린 듯한 기억이 남아 있다. 서연이가 붙들려 와서 같이 발길질을 당했던 것 같고, 저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치며 달려오는 게 보였고, 하늘을 보며 누워 있던 나와 서연이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어이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언젠가 이 일을 두고 서연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왜 나를 도와주었냐고. 그냥 구경만 하느라 바쁜 다른 애들처럼 무시했어도 될 일이었고, 특히 너 같은 모범생이 굳이 나서고 싶지 않았을 일이었을 텐데. 서연은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내 생각 따위는 필요 없고, 생각하면 안 되는 정해진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배알이 꼴리고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정의감 같은 건가, 라는 내 물음에 서연은 고개를 내저었다. 입술을 꾹 다물고 눈꺼풀을 떨어뜨린 채 도리질을 하는 서연이의 옆모습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서연은 자신이 늘 자맥질하는 사람 같다고 고백했다. 학교, 집, 학원 속에 미끄러지듯 잠식되어 있다가 가끔 살려고 발버둥 치며 나오고 또 무언가에 머리가 짓눌려 잠겨있어야 하는 사람 말이다. 그날은 그저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물 밖으로 나온 날이었노라고 말했다. 한참 동안 싸잡혀서 발길질을 당하고 뒤이어 선생이 뛰어왔을 때 이상하게 알 수 없는 해방을 느꼈다나. 그 말을 듣고 보니 피투성이가 된 채 서로를 보며 풉, 하고 바람 빠지듯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쩌면 한 때 뿐일 빛바랜 사진 같은 어떤 기억은 평생을 걸쳐 가슴에 품고 사는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그 힘은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조금씩 나를 해동시킨다. 솜털, 표피, 지방, 섬유 조직으로 침투한 너는 결국 나를 와해시켰다. 그리고 해방된 나는 선 너머의 너를 알고 싶어 성화였다. 내게 문제가 있었다면 나는 너무나도 빨리 네게 빠져들어 그 속도와 선을 계산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을 거다.
“흐흠, 도윤아. 그러니까 폭행 사건 이후에 서연이랑 친해졌다는 거지? 들어보니까 서연이가 좀 불안함을 느꼈던 것 같은데 혹시 뭣 때문인지 알고 있니? 교우관계라던가 학업 스트레스 같은...”
“서연이가 자살 시도를 했을 만한 이유요?”
내 말에 형사가 움찔하더니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고에 의한 것인지 서연이 스스로 자살을 시도한 것인지는 가능성을 열고 조사 중인데, 당시 서연이의 심리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 아, 물론 너와 서연이의 관계도 포함해서.”
나는 형사의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테이블 위에 놓인 수첩 위로 시선을 두었다. 내가 말한 내용이 저기에 어떤 식으로 적혀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나는 사건의 증언자와 목격자 혹은 용의자 중에서 어디에 더 근접해 있는 걸까.
불쑥 그날 서연이가 나를 쳐다보았던 눈동자가 떠올랐다. 산발이 된 머리칼, 파르르 떨리는 입술, 자줏빛을 띠고 퉁퉁 부은 눈. 평소와 다르게 서연이는 너무 격앙돼 있었고 힘들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서연의 두 팔을 붙들고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을 토해내듯 말했다. 나도 힘들었다고, 너 때문에. 처음으로 갖게 된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까봐 얼마나 두려운 나날을 보냈는지 내가 가진 모든 언어들을 총동원해서 애절하게 매달렸다. 서연은 모든 게 지친다며 죽고 싶다고 발악했고, 필사적으로 내게서 빠져나가려 몸부림쳤다.
“도윤아?”
형사는 조금 더 내게 가깝게 다가오며 눈썹을 추켜세웠다.
“서연이는... 모든 걸 부대껴 했어요. 부모님도, 성적도, 담임선생하고도.”
담임선생과 서연이의 대화를 듣게 된 건 우연이었다. 국어 선생을 따라 반 애들 노트를 모아들고 교무실로 들어간 나는 담임 앞에 꼼짝 없이 서 있는 서연이를 발견했다.
“최도윤! 노트 좀 제대로 놔. 너 그리고 선생이 뭐냐? 선생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서연이의 뒷모습만 쳐다보고 있던 나는 국어 선생의 호통에 움찔 놀라 쳐다보았다.
“네?”
“저번에 숙제로 내준 수행평가 서술형 말이야. 전교생 중에서 딱 두 명! 최도윤하고 임서연, 너희 둘 만 ‘선생님’이 아니라 ‘선생’이라고 지칭했더라?”
“아, 네.”
말을 늘이며 대답하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교 수석과 꼴등은 끝과 끝인데도 어쩌면 이 양 극단이 서로 닮아있고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 무엇이 닮았느냐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는 어려웠지만 흠모와 호기심 사이를 오가는 감정 같다고나 할까.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무언가가 서연과 나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강력한 끈이 되어 서로를 팽팽하게 이어주고 있었다.
“반항하는 거야, 뭐야. 아니, 너야 그렇다 쳐도 전교 1등인 서연이는 또 왜 그런대? 하여간 웃겨. 호칭 좀 똑바로 써.”
국어 선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그만 나가보라고 손짓했다. 나는 고개를 짧게 숙인 뒤 일부러 서연이가 있는 쪽을 향해 뒷문으로 걸어갔다.
“저는 선도부 안 하고 싶어요.”
그때 서연이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이는 잘못을 지은 학생처럼 두 손을 포개어 잡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도부? 그러고 보니 선도부 모집 공고를 본 듯도 했다.
“서연아, 선도부 하면 봉사 시간도 주고 생기부에 한 줄이라도 기록될 수 있는 건데 왜 안 하겠다는 거야? 게다가 너는... 넌 성적이 우수해서 학생회 소속으로 겸직할 수도 있어.”
담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마지막 말은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여전히 서연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대답이 없었다. 하긴 내가 임서연 입장이었어도 공부하느라 힘든데 굳이 달보고 학교 나와서 덥고 추운 여름과 겨울을 견디며 복장 단속하고 싶지는 않을 듯했다. 그런 활동은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하면 될 텐데 굳이 담임선생은 싫다는 애를 불러 세워서 왜 저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임서연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서 있는 건지. 독기는 공부할 때 다 써버리는 건지 평상시에는 저렇게 물러서 어떻게 살아가나 싶을 정도였다.
“내정된 거나 다름없다고. 내가 너를 특별하게 생각해 줘서 지원자로 올려놨더니만 왜 그래? 혹시 공부할 시간 뺏길까 봐서 그래?”
“그게 아니라 저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맞고 안 맞는 게 어디 있어? 이참에 리더십도 키우면 좋지. 아, 됐고. 어머니하고도 얘기된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그만 가봐.”
창과 유리 방패의 싸움은 결국 권위와 권력을 가진 창의 싸움으로 종결됐다. 담임은 반 애들이 서연의 책상을 뒤집어엎은 걸 알고는 있는 걸까. 담임이 시킨 자리 배정 때문에 당사자는 아직도 욕 얻어먹는다는 걸 모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잠시 서연이가 선도부 부장이 되어 학생들 복장을 단속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거기 넥타이 왜 안 맸어, 미안한데 한 번만 봐 주라, 옥신각신 말들이 오가고 서연은 더 파리한 모습으로 교정을 떠돌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학생회까지 들어가게 되면 아침, 점심으로 열정 넘치는 학생회 회의에 소집되고 청소 시간에는 교무실이나 교장실로 불려 가서 다른 애들 청소 지도를 시키겠지. 이런 활동이 협동심과 리더 활동을 키운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교실로 돌아온 서연은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이 더 새하얘져서는 생각에 잠긴 듯 앉아 있었다. 다른 애들 제치고 더 높은 성적을 받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저런 문제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안쓰럽게 느껴졌다. 저렇게 어른들이며 친구들이며 사방에서 욱여쌈을 당하다 보면 몸이 남아날까 싶었다.
그때 수업 종이 울림과 동시에 영어 선생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들 빨리 제자리 앉아, 수업 종 쳤잖니! 다들 책상 위에 교과서랑 수행평가 올려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