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의 소음을 짓누르는 카랑카랑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창문 쪽에 있는 1열 책상으로 향했다. 영어 선생은 고개를 좌우로 재빨리 돌리며 교과서의 유무와 수행평가 작성을 확인해 나갔다.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는 그 행위는 흡사 오류를 잡아내려는 기계 같기도 했고, 습관적으로 매일 모이를 쪼아 먹는 닭을 보는 듯도 했다.
“어, 뭐야.”
그때 옆에 앉은 서연이 부산스럽게 몸을 움직이더니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 얼굴을 집어넣고 서랍에 눈을 가져다대던 서연은 이내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탄식했다. 영어 선생이 종종걸음으로 뒤에서부터 점점 다가왔지만 좀처럼 서연이의 책상 위에는 교과서도, 수행평가도 올라가 있지 않은 채 비어 있었다.
서연은 눈에 띄게 초조한 얼굴로 톡톡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사람이 저렇게 초조해 할 수도 있는 건가. 마치 바로 뒤에 있는 낭떠러지가 있는 걸 알면서도 최대한 천천히 뒷걸음질 치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야.”
나는 내 책과 수행평가를 서연이 책상 위에 턱하고 올려 두었다. 그때 서연의 놀란 얼굴은 지금까지도 선연하게 떠오른다. 마치 전쟁에서 목숨 구해준 사람한테나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서연이는 아니, 라고 말하며 다시 내게 건네려 했지만 이미 내 옆까지 다가온 영어 선생은 나를 향해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최도윤 감점.”
서연이의 손에 들려 올린 교과서는 하릴없이 다시 서연이의 책상 위에 놓였다.
“아까 왜 그랬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연이는 화가 난 듯 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될 일을 왜 저렇게 날을 세우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보다 너한테 더 중요해 보여서.”
나는 서연의 책상 위에 놓인 교과서와 수행평가를 도로 가져가며 별거 아니란 듯 뒷목을 긁적였다.
“뭔 소리야, 성적 안 중요한 사람도 있어?”
나는 대답 없이 서연을 마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 채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잔뜩 경직된 채 꼿꼿하게 허리를 곧추세우고 앙칼지게 말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비어져 나온 웃음이었다.
“뭐야, 왜 웃어.”
서연이는 작은 두 주먹을 힘주어 꾹 쥔 채 내게 말했다.
“나도 선도부 지원하려고. 너 할 거지?”
깍지 낀 손을 책상 위에 올린 나는 서연이에게 상체를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저기, 도윤아?”
그때 형사가 테이블 위를 손톱으로 톡톡 두드리며 나를 불렀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켜며 형사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네 말에 따르면, 서연이가 교내 활동이나 성적 관련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들한테서 심한 심리적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는 거지? 그 강도를 1부터 10까지 점수로 본다면 몇 점 정도라고 생각하니?”
나는 속이 보이는 형사의 질문에 조소가 흘러나왔다. 내가 10점이라고 말하면 서연은 자살 시도가 되는 걸까. 순전히 궁금해졌다.
“서연이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등교했고 공부하고 돌아오면 새벽 2시였어요. 서연이 아줌마는 틈만 나면 불시에 서연이 휴대폰을 검사했고, 학교 선생님들은 돌아가면서 내신이나 생기부 상담을 했고요. 교우 관계랄 건 딱히 없었어요. 학생회랑 선도부를 병행하면서 활동해야 해서 반 애들하고는 일절 어울릴 시간조차 나지 않았거든요. 그랬던 서연이 곁에 유일하게 있어 준 사람이 저구요. 저한테 서연이가 전부였듯 서연이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었어요. 스트레스 지수를 말하자면 10이었겠죠. 문제집에 박제된 듯 살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형사가 알아듣기 편하게 숫자와 상황들을 즐비하게 나열하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형사에게 눈 한 번 떼지 않고 숨조차 쉬지 않은 채였다. 형사는 수첩 위에 뭔가를 끼적였다.
“그런데 그렇게 절친했던 둘이었는데 언제부터 관계가 틀어졌던 건지 말해줄래? 서연의 마지막 문자 기록을 살펴봤는데 둘 사이가 완전히 어긋난 것 같더라고.”
형사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내게 물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구역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갑자기 뱃속 안에 있던 무언가가 위로 솟구쳐 오르며 역류했고, 나는 급하게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침을 삼켰다.
“죄송한데, 잠시만 쉬었다 해도 될까요?”
형사의 대답도 미처 듣지 못한 채 나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상담실을 빠져나온 나는 복도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동안 어떻게 숨을 쉬고 살았던 건지 호흡하는 게 어색하고 힘들었다. 이미 폐 안에 공기는 가득한 것 같은데 내뱉어야 숨은 없는 것 같고, 들이켜 보자니 함빡 가득 찬 산소가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쳤다.
나는 창밖으로 좀 더 허리를 굽히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어둠인지 밝음인지 모를 색들이 눈앞에 채색되고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풍선처럼 올라가던 내 몸은 옥상에 다다르고 거기 그곳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늘 그렇듯 눈 감으면 보이는 사람. 나에게 이 모습은 익숙하다. 날마다 마중 나와 있는 꿈속의 너처럼 너는 옥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난간 위로 폴짝 올라선 너는 두 팔을 새처럼 펼친 채 아슬아슬 걸음을 내디딘다. 바람이 오려낸 종이처럼 나풀나풀하는 너는 금방이라도 옥상 밖으로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고, 놀란 나는 허겁지겁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손을 뻗어 잡아 보려 하지만 이상하게 잡히지 않는다. 내 손을 잡고 싶은 건지, 잡기 싫은 건지 네 마음이 읽히지 않는다. 이건 너무 현실의 너와 닮아서 순간 내가 환상 속에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답답한 나는 원망 섞인 눈으로 너를 쳐다보지만 옆얼굴로 본 너는 웃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임서연.’ 괴로운 내 목소리와 함께 너는 발을 삐끗하고 몸을 휘청거린다.
나는 서둘러 너의 팔목을 잡아보지만 너는 그대로 옥상 외벽을 타고 매달려 추처럼 흔들린다. 안 돼, 안 돼. 나는 난간에 허리를 붙이고 안간힘을 다해 너를 끌어 올리려 하지만 너는 떨어지고 싶은 사람처럼, 떨쳐 내려는 사람처럼 그대로 추락해버린다.
“도윤아.”
그때 묵직한 손이 내 한쪽 어깨에 툭하고 떨어졌다. 움찔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형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칠게 숨을 내쉬는 나를 보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형사의 말에 나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쩌면 덜덜 떨리는 턱을 숨기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들어온 상담실은 목 졸린 취조실처럼 답답했다.
“힘들면 다음에 해도 괜찮은데.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형사는 생수병 뚜껑을 따서는 내 앞에 놓아두며 말했다.
“마지막 질문에만 대답하면 이제 끝나는 거죠? 대면 진술은 오늘로 끝내고 싶어서요.”
“아, 그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지.”
미안하다는 어투와는 다르게 형사는 질문이 담긴 듯 한 수첩을 빠르게 훑어 내려가고 있었다.
“제가 용의자 같아요?”
“어?”
그제야 형사는 수첩에서 눈을 떼며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서연이하고 왜 관계가 틀어졌냐고 물어보셨잖아요. 저 때문에 서연이가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 꼭 너를 유력 용의자로 추정해서라기보다는 서연이가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사람이 도윤이 너였고, 그 내용이 꽤 심각해 보여서 확인차 물어보는 거야.”
형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두툼한 손을 뻗어 연신 가로저었다.
“사실... 저도 우리가 왜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분명 처음엔 너무 좋았거든요.”
아침잠 많았던 내가 새벽 일찍 일어나서 부리나케 향한 곳은 학교도 아닌 서연이 아파트 정문이었다. 기둥 뒤에 등을 기대고 목을 빼고 기다리다 보면 곧이어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서연이 비칠비칠 걸어 나왔다. 분명 어제도 새벽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기껏해야 4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을 것이다. 잠만 조금 더 잤더라도 생기가 돌았을 텐데. 두 손에 꼭 쥐여있는 가방끈은 생명선처럼 좌, 우로 치우치는 서연이를 용케도 다시 중앙으로 끌어 당겨주었다.
“야, 임서연!”
일부러 정신 차리라는 듯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서연이는 만날 저렇게 크게 움찔하며 멋쩍은 듯 웃었다. 그러면 나는 뭐가 좋다고 풉, 하고 따라 웃었다. 이렇게 서연이랑 같이 등교하게 된 건 선도부 활동을 같이 하면서였다.
“저기... 염색 안 되는데.”
서연이가 딱 봐도 불량해 보이는 여학생 한 명을 붙들며 작게 말했다. 선도부에 합격한 애들이 처음 교문 지도에 나선 날이었다.
“뭐래."
애쉬 브라운으로 염색한 여학생은 서연이를 위아래로 매섭게 째려보더니 기분 나쁘다는 듯 어깨까지 치고 지나쳤다. 저 멀리 서 있던 지도교사는 오히려 서연이를 향해 안 잡고 뭐하냐는 듯 엄한 눈초리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서연이는 난감한 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멋쩍은 종이만 꼼지락거렸다.
“죄송한데요, 이어폰 좀.”
그때 애쉬 브라운 앞으로 달려간 나는 이어폰 빼는 동작을 선보이며 또박또박 말했다.
“아침부터 뭐야?”
“규정상 염색은 안 돼서요. 학년, 번호, 이름 알려주시겠어요?”
애쉬 브라운은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며 욕지거리와 함께 흘리듯 대답하고는 도망치듯 뛰어갔다.
“2학년 선반이고 이름은 이유랑인지 이유라인지 이유나인지 모르겠어.”
다시 선도부로 돌아간 나는 받아 적으라며 정성껏 들은 대로 말해주는데 서연은 잠시 눈을 껌뻑이더니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나는 서연이가 왜 웃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그저 배시시 따라 웃었다. 서연이가 웃으면 그저 다 좋았다.
늘 복사하고 붙여 넣기의 반복이었던 내 삶은 어느 샌가 바뀌어있었다. 그 변화는 미세하지도, 작지도, 느리지도 않았고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급작스럽고 빠르게 나를 바꾸어 놓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걸 깨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모든 게 순간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내가 가진 가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여도 괜찮은 척, 곁에 아무도 필요 없는 척 굴었던 나는 너무나도 처절하게 나를 알아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급류에 휩쓸려버린 사람처럼 속수무책으로 급격하게 무장해제 되었고 그건 그동안 내가 가진 마음 구멍의 크기를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한 팔을 뻗고 얼굴을 묻은 채 잠자기 바빴던 수업 시간은 정말 내가 ‘수업’이란 걸 듣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서연의 시선이 향한 곳에 내 시선도 따라갔다. 칠판, 선생, 프린트물, 교과서. 돌보듯 봤던 물건들이 새롭게 보였다. 쉬는 시간에는 숙제하거나 영어 단어를 한 자라도 외워보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행동이 위선도 아니었고 노력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정말 내게도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을 때가 가까워져서라고는 하던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사람을 바꾸는 건 죽음이 아니라 사랑이다. 죽을 때가 다가와 보니 깨달은 거 아닐까. 내가 한평생 받고 싶었던 건 사랑이었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여생은 사랑해 보려 했던 거고 그게 다른 사람 눈에는 갑작스러워 보였던 거겠지. 내게는 임서연이 그런 존재였다.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서연을 바라보는 게 전부인 사람처럼 항상 내 몸은 3시 방향으로 틀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서연은 꼿꼿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반듯한 글씨로 적어 가며 공부하고는 했는데 가끔, 아주 가끔 무척추동물처럼 허물어져서는 뭔가를 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눈은 텅 빈 동굴처럼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고, 손안에 쥔 연필은 뭔가에 홀린 듯 글자를 써 내려가고는 했다.
“뭐 쓴 거야?”
그 모습이 어쩐지 기괴해 보였던 나는 장난스럽게 서연에게 상체를 기울여서 물어보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서연은 깜짝 놀라며 턱, 다이어리를 덮었다. 잠시 어딘가로 혼이 나갔다가 내 목소리에 돌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이상하게 그 다이어리에 시선이 갔다. 넌 왜 그렇게 놀랐던 건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전부 다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서연이가 화장실을 간 사이, 학생회 회의를 간 사이, 카페에서 전화를 받으러 나간 사이에 나는 서연이의 다이어리를 읽었다.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글씨가 오밀조밀 종이를 채워나갈 동안 나는 서연이를 채워나갔다.
내모든시간을밟고나가도당신들에겐부족했나봐 며칠째잠을못자고넘겨대도 아직멀었어더해야돼하니까 어떤숫자를붙들어야할지도모르겠어내가파는검은심들이비문이될것만같은데어떻게뿌리치고도망쳐야하는건지도...
중얼거리며 읽어가던 내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던 건 낙서처럼 흘기듯 쓴 이 글자들이 왠지 서연이의 유서처럼 읽혀서였다. 어쩌면 서연이는 이곳에서 어떻게 뿌리치고 도망쳐야 하는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서연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찾은 그 확실한 길은 너에게도, 그런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에게도 가장 이기적이고 잔인한 방법이었다고 말이다.
나는 서연이가 쓰는 암울하고 우울한 낙서를 지워주고 싶었다. 상황과 환경은 바꿀 수 없더라도 조금씩 하나라도 찾아가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으니까. 그래서 다른 애들은 뭘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는지 둘러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