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사자도 아닌데 그 모습을 보자 조마조마했다. 차라리 내가 겪었더라면 이렇게 신경 쓰이진 않았을 텐데. 나에게는 저런 일이 일상이니까. 하지만 임서연이 그런 일을 겪는 걸 보자 이상하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저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몹쓸 일을 당한 것만 같았다.
불려 나간 임서연은 한참 지나서 들어왔는데 얼굴이 우유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수학 선생이 얼마나 잡도리를 했던 건지 안 봐도 눈에 그려지는 듯 했다. 주변 애들 의견은 엇갈렸다. 선생이 너무 예민하게 굴었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동안 도도하게 굴더니만 쌤통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는 자리에 앉은 서연의 귀에 가닿았다.
나는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흘깃 임서연을 쳐다보았다. 서연은 아랫입술은 잘근잘근 깨물 뿐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등은 곧게 펴져 있었고 선생의 모든 말을 받아 적겠다는 듯 더 열심히 연필을 끼적였다. 눈은 칠판과 책을 향해 위 아래로 향할 뿐 주변을 둘러보는 일도 없었다. 저렇게 독하니까 수석을 하는 거구나 싶었다.
서연이가 울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점심시간 이후였다. 서연은 보통 쉬는 시간에도 앉아서 공부했는데 대부분 영어 단어를 외우고는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점심 내내 보이지 않더니 5교시가 시작되는 종소리와 함께 자리로 돌아왔다. 두 눈덩이가 자줏빛 색깔로 변했고 퉁퉁 부은 걸로 봐서는 분명 울고 들어온 듯했다. 속이 단단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물러 터진 모양이었다. 하긴, 만날 선생들한테 예쁨만 받았을 테니 이런 대우가 당황스러울 만도 했을 것이다.
“괜찮냐.”
처음이었다. 내가 임서연에게 말을 붙인 건. 그냥 속엣 말이 불쑥 터져 나와 버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나는 턱을 긁적이며 서둘러 눈을 돌렸다.
“책 펴, 다들. 오늘 몇 쪽이야?”
“꺄악!”
카랑카랑한 영어 선생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거기 뭐야! 어머, 어머! 저게...”
영어 선생은 뒷말을 잇지도 못한 채 입을 떡 벌리고 서서 푸드덕거리는 물체를 가리켰다. 구구구 울어대는 음산한 소리와 퍼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애들의 책상 아래를 돌아다녔다. 순간 교실은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비둘기 두 마리가 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배회했다. 누군가가 노트를 집어던지자 놀란 비둘기 한 마리는 세차게 칠판으로 날아갔다.
“억, 뭐야!”
놀란 영어 선생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비둘기는 꼬불거리는 영어 선생의 머리가 둥지라도 되는 것처럼 살포시 앉았다가 또다시 날갯짓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기겁을 하면서 피신했다. 단 두 사람만 빼고. 나는 꼿꼿하게 앉아 있는 임서연을 바라보았다. 임서연은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빤히 비둘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홀로 점잖게 앉아 있는 게 웃기면서도 비둘기와 눈싸움이라도 하듯 시선을 떼지 않는 게 괴이하다고 느껴질 무렵, 설상가상 책상 위에 놓인 비닐봉지에 다리가 걸려버린 비둘기 한 마리가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막대기로 쳐버려.”
“날려 보내야지.”
“봉지에 걸렸는데 어떡해.”
주변에서는 하릴없이 빈 말들이 부유했다. 이쯤 되자 나는 도대체 이 교실에 실체가 있긴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떼 지어서 모여 있는 군중 속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는 말투성이다.
드르륵. 의자를 뒤로 빼고 일어선 나는 힐끗 선생을 쳐다보았다. 영어 선생은 여전히 몸을 공처럼 둥그렇게 말고는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비둘기가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다가갔다. 보아하니 비둘기의 왼쪽 다리가 봉지 손잡이에 엉켜 있었다. 그냥 가위나 칼로 봉지를 자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럼 봉지는 비둘기의 족쇄가 되어 남은 생을 함께 해야 할 듯했다. 엉킨 봉지를 풀어보려 해도 짧디 짧은 비둘기의 다리에 어찌나 단단히 꼬였던지 푸는데 애를 먹었다. 비둘기는 위협을 느끼고 몇 번이나 부리로 쪼아댔으나 이내 체념한 듯 힘없이 푸드덕거렸다. 드디어 겨우 봉지에서 해방된 비둘기는 운 좋게 다시 열린 창문으로 날아갔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뒷문에 옹송그리고 있던 애들은 그제야 난장판이 된 자리로 돌아갔다. 몇 명의 여자애들은 나를 보며 손뼉 쳤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동경하는 눈빛까지 보내왔다. 나는 서둘러 긴 앞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임서연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쟤는 원래 뭔가를 저렇게 빤히 보는 게 취미인가 싶을 정도였다. 따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한 내가 뭘 보냐고 물으려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나는 멈칫하며 임서연을 쳐다보았다. 주변의 시야가 차단된 듯 맞물린 검은 동공이 점점 커지는 게 눈에 보였다.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듯 한 검은 동공이었다.
“괜찮아?”
임서연은 턱짓으로 부리에 쪼인 내 손등을 가리켰다. 찢긴 피부 위에 물감 퍼지듯 선혈이 번져있었다. 순간 나는 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과 함께 다리부터 머리까지 전율이 흘렀다. 붉은 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임서연의 말이 너무 이질적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봐 준 게 언제였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시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간지러우면서도 낯선 느낌이 피부를 데워주는 것 같았다. 말 한마디에 이렇게 동요하는 내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밀려왔다. ‘다치는 것도 나름 괜찮네.’ 부리에 찍힌 상처 따위에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거라면 더 크게 다치면 어떤 말을 듣게 될까 순전히 궁금해졌다. 서연의 시선이 한동안 내 손등 위에 얹어졌다. 처음 받아보는 따뜻한 눈길에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해졌다. 누군가가 두 손으로 내 심장을 움켜잡은 것처럼 묵직한 고통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다쳐서라도 진짜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을 알게 된 게 다행처럼 느껴졌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때 서연이는 비둘기를 구해준 나를 보고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깟 비둘기 다리에서 봉지 빼낸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어서 감명을 받았냐고 놀리듯 말했지만 서연이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왠지 비둘기가 나 같더라고. 자연에 있어야 할 새가 도시에서 외롭게 구구구 거리면서 울어대고, 차에 치이거나 사람한테 괴롭힘 당하면서도 꾸역꾸역 살아보려 애쓰잖아. 그 비둘기는 하필 운도 없이 교실까지 들어와서 험한 꼴 당한 거고. 그런 비둘기를 정성스럽게 하늘로 날려 보내 준 사람이 너였어. 다른 사람들은 말 뿐이지 아무도 도와주지도 않는데.”
나는 그 말을 하는 서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연의 옆얼굴이 왠지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서연을 이해하고 싶고, 어쩌면 오직 나만이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건 말이다.
“그 말 도중에 미안한데, 정리하자면 서연이가 주변 친구들한테도 따돌림을 당하고 선생님들하고도 관계가 소원했다는 거지?”
불쑥 끼어든 형사는 부산스럽게 노트에 무언가를 끼적이며 일축했다. 나는 아연한 얼굴로 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뇨, 저는 서연과 제가 얼마나 특별한 사이였는지 말했던 건데요.”
형사는 내리깔고 있던 두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어? 아. 그래, 그래. 둘이 친했다고. 그래도 학교 다니는 동안 큰 사건은 없어서 다행이네.”
“큰 사건이라면...”
“휴, 요즘 애들 학폭 수준이 조폭 저리가라야. 그런 일에 말리지 않은 게...”
형사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마치 내가 모르는 세상이 따로 있는 것처럼 그는 더 이상 알 것도 없다는 듯 굴었다.
“아, 폭행. 뭐, 이런 거요?”
나는 보란 듯 앞머리에 손가락을 넣어 위로 올렸다. 꿰맨 자국이 옅은 흉터로 남아 있었다. 형사의 두 눈이 그제야 크게 떠졌다. 그걸 보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인생만 무거운 줄 안다. 내 나이에 비해 내가 얼마나 험악한 인생을 살았을 줄 알고.
“화이트데이였어요. 서연이 하고 제가 2학년들한테 다구리 당한 게.”
그때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르르 떨렸다. 천지가 개벽하는 듯 한 저 벨소리는 어른들 전용인 것만 같다.
“도윤아, 잠깐만.”
형사는 눈을 찡그리며 기다려 달라는 듯이 한 손을 추어올렸다.
“네, 서연이 어머님.”
형사는 흘낏 나를 쳐다보더니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일어섰다. 터벅터벅 몇 발짝 떨어져서 통화하던 그는 중간 중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몇 번 끄덕거렸다. 잠시 뒤 자리로 돌아온 형사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사과를 한 뒤 수첩에 날리듯 글자를 써 내려갔다.
“서연이 어머니하고 급하게 통화할 일이 있어서.”
“김윤희 씨요.”
덤덤하게 말하는 나와 달리 형사는 흠칫 놀라는 얼굴이었다.
“어, 맞아. 어떻게 이름까지 알고 있지?”
“서연이 통해서 많이 들었어요. 아마 아줌마도 저를 잘 아실 걸요.”
나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서연이는 늘 엄마를 윤희 씨 또는 그녀라고 부르고는 했다. 왜 그렇게 거리감 느껴지는 호칭을 쓰냐는 물음에 서연이는 엄마를 이해해 보고 싶어서, 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정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바라봐야 한다나. 하여튼 그때도 나는 그 말뜻이 뭔지 알아듣지 못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알기 위해 왜 선을 지켜야 하는 건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정선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서연이가 늘 김윤희 씨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거다. 나는 지금이라도 서연에게 묻고 싶었다. 네가 그렇게 이해하고 싶었던 김윤희 씨에 대해서 너는 지금 얼마큼 알고 있느냐고. 지금 네가 이렇게 사경을 헤매는 순간에도 김윤희 씨는 네가 왜 그렇게 된 건지 알지 못하지 않느냐고. 너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늘 나였다. 물론 김윤희 씨는 너와 내가 급이 맞지 않는다고 싫어했지만.
순간 섬광처럼 눈앞에 윤희 아줌마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을 닮은 창백하고 파리한 얼굴이 얼마나 더 사색이 되어있을지 잠시 상상해 보았다.
“어 그래? 이상하다.”
“왜요?”
“서연이 어머니는 너를 모른다고 하던데?”
형사의 동그래진 눈이 내 눈동자를 아프게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