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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

[수필과비평] 원고

by 남쪽맑은물

머드 축제 개막식을 앞둔 대천 해변 풍경은 이색적이다. 여름을 즐기려는 사람들 소리. 집요한 욕망과 비슷한 여름을 삼킬 듯한 소리. 한 사람 목소리쯤은 소거해 버려도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이는 번잡한 소리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 바닷가를 찾은 다국적 사람들. 시원함을 맘껏 뽐낸 의상은 바다처럼 푸르고, 거침없는 몸짓은 역동적이다. 모두 축제를 알리는 광고 모델 같다. 점점 기울어지는 해가 뿜어내는 붉은색과 푸른 바다가 만나는 시간. 바다 너머에서 풍겨오는 묘하고 불가사의한 색채가 사라지면서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어두워질수록 피서객들 몸짓이 더욱 흔들린다. 손에 들고 있는 음료와 술병도 흔들린다. 밤에만 통하는 무언의 교신으로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을 흔들고 휘감는다.

사람들 환호에 파도 소리가 묻힌다. 불꽃놀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불꽃 한방씩 터질 때마다 탄성이 탁구공처럼 튕긴다. 어두운 하늘에서 빛나던 별이 삭아내린다. 화려한 불꽃이 별을 삼켜버린다. 매캐한 냄새가 싱그러운 바다 내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마지막 불꽃 하이라이트는 화려하다. 혼몽한 내음을 토해내며 불꽃이 사라진다. 사라졌던 별이 나타난다. 별이 빛난다. 별이 웃는 것 같다.

쓸쓸하고 고요한 바닷가. 주먹만 한 감장돌 하나, 그 옆에 조그맣고 뾰족한 풀. 그 풀이 꽃을 피우니 이름은 바위나리. 바위나리는 해를 기다리는 일이 유일했기에 외로워 울었지요. 어느 날, 하늘에 있는 아기별이 바위나리 울음소리를 듣고 바위나리를 찾았지요. 아기별과 바위나리는 만나서 즐거웠어요.

매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닷가에서 놀던 바위나리와 아기별. 어느 날, 아기별이 바닷가로 내려오지 않았어요. 별나라 임금님이 밤마다 사라지는 아기별에게 외출을 금지했기 때문이지요. 아기별은 바위나리가 그리워 밤마다 울었고 바위나리도 아기별이 보고 싶어 시들해졌어요. 결국 바위나리는 파도에 휩쓸려버렸고 하늘에서 쫓겨난 아기별은 풍덩실, 바다로 빠져버렸지요.

참 이상한 일이지요? 아기별이 빠져들어 간 곳은 오색 꽃 바위나리가 바람에 날려 들어간 바로 그곳이었어요. 해마다 바위나리는 그곳에서 피어난답니다. 바다 물이 깊으면 깊을수록 환하고 밝게 보이는 이유를 알겠지요? 한때 빛을 잃었던 아기별이 다시 빛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바위나리와 아기별』 마해송, 길벗어린이)

검은 눈동자가 별처럼 빛났다. 빛나는 눈동자는 마치 눈물을 가득 담고 자전하는 것처럼, 눈물 방울이 되기 전 그렁한 습기로 축축했다. 그는 20대 초반에 가정을 꾸리고 자녀 네 명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함께 살았다. 대가족 삶의 무게가 무거웠지만,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강대국 욕심으로 자주성을 잃었던 역사와 포악한 독재자의 끔찍한 ‘킬링필드’ 비극에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젊은 가장은 그리 힘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지쳐 보였다고 할까.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 여행객에게 의사소통하려눈이 별처럼 빛나서 슬펐다. 여행객이 원하는 상황을 살피는 눈동자가 반짝거려서 슬펐다. 밥벌이를 위해 실수하지 않으려는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슬플 수 있다는 것을 그의 눈동자를 보고 알았다.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은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저녁이면 이내 어두워지는 캄보디아. 사람들 눈동자가 별처럼 빛나서 마치 밤별들이 그들 눈동자로 타들어 간 것은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다. 참으로 멋진 광경이었다. 소음도 없이 찾아오는 초저녁별은 소박한 축제를 즐기는 그들에게 불꽃놀이가 되었다. 하늘과 맞닿은 어둠 속에서 그들은 매일 축제를 열었다. 사원 옆에 해자 언저리에 돗자리를 깔고 가족과 함께 즐기는 모습이 순박했다. 과잉된 습기를 뿜어내는 풀들이 웃음소리에 흔들렸다. 젊은 연인들도 자전거를 타고 별빛 속을 달렸다. 별빛이 촉촉했다.

이 낯선 땅이 낯설지 않다. 우리의 지난 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다. 한국 전쟁 후, 많은 사람이 가난하게 보냈던 시절, 입성이 좋지 않았으며 먹을거리가 부족해 가는 팔과 다리로 긴 시간을 걸어서 간 학교에서 옥수수빵을 배급받던 시절을. 육성회비를 제때 낼 수 없어 가슴앓이 했던 경험은 살과 뼈와 근육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삶의 단면이다. 그럼에도 하늘에 별이 빛났고 그 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단발머리 여학생과 빡빡머리 남학생의 소원이 시가 되곤 했다. 간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별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어 편지를 주고받았다. 앞마당에 모여 앉아 모깃불을 태우며 사방으로 날아가는 연기 따라 올려다본 밤하늘은 별 잔치였다. 하늘 끝 찬란함은 끝날 줄 몰랐다.

머드 축제 개막 행사가 끝난다. 불꽃놀이도 끝난다. 취기가 오른 관광객들이 휘청거린다. 흐려진 눈동자도 가물거린다.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도 개의치 않는다. 더 크게 괴성을 지르며 고함에 화답한다. 파도 소리에 묻혀 밀물 되어 사라졌던 욕설이 썰물 되어 되돌아온다. ‘보령 머드축제’를 광고하던 현수막이 찢겨 있다. 모델 얼굴도 찌그러진다. 웃는 얼굴이 우는 것처럼 보인다. 버려진 술병과 먹다 버린 핫도그, 주인 잃은 슬리퍼가 밟힌다. 개막 행사에 이어 축하 무대가 시작된다. 별이 또 숨어버린다. 찬란한 무대 조명이 눈부신가 보다.

숨어 버린 별을 찾는 시간은 어쩌면, 우리가 별을 닮아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루 지나면 하루가 오듯이 마디 없이 흐르는 시간이지만, 마디 없는 삶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불그스럼하게 아름다운 삶도 지나치게 혼란하면 진실로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바다가 깊으면 깊을수록 밝은 것이 아기별 때문이라면, 바위나리와 함께 있는 아기별의 생명력 때문이라면, 깊고 깊은 삶 속에 숨어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찬란하게 별처럼 빛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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