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손짓 이별의 손길로 돌변하는 그 짧은 순간
어쩌다 보니 연휴 때 조금 길게 쉬게 되었다. 연휴니까 당연히 쉬지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집 밖을 나가서 50미터만 걸어도 연휴에 쉬지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귀경길이 아닌 다른 이유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하루를 조금 더 길게 보내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기 위해 정해진 길을 따라 트랙으로 간다. 평소와는 다른 하늘, 평소와는 같은 건물들이 위와 옆에 늘어서 있었는데, 아래에는 어제까지 보지 못했던 쓰레기가 보인다. 불과 하루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고 아마 하루 전까지는 누군가의 희망이자 인생 역전을 선사할 수 있는 보물이었을 복권이었다. 다만 모두 긁혀서 '꽝'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전까지만.
그냥 퇴근길에 한두 장 복권을 구입하는 일이야 누구나 하는 일이겠지만 누가 봐도 무더기로 쌓여있는 어제의 보물, 오늘의 쓰레기인 복권을 만져보니 많은 복권을 일일이 긁으며 '인생역전'이라는 희망이 줄어들어가는 심정을 실시간으로 겪어야 했던 누군가의 절박함, 간절함, 좌절감, 분노, 체념을 한 번에 느껴졌다. 물론 저 많은 복권 중에 일등이 나왔을 수 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 복권 더미는 체념의 끝에 그냥 길에 내동댕이쳐진 모습으로 보였다.
누구인들 꿈꾸지 않겠는가. 직장에서 싫어하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고 돈을 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세상에서 '경제적 자유'라는 물신(物神)의 강림을. 하지만 그런 간절한 기도는 대부분 이뤄지지 않는 것을 넘어 '투자(라기보다는 투기) 손실'이라는 저주로 돌아오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세상에는 신도 부처도 없다고 생각해도 할 말은 없다. 다행히 저 복권을 샀던 사람은 몇천 원 또는 몇만 원의 손실만 입었다는데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세상 모든 일에 그런 면이 있다고 느껴진다. 경제적으로 자유롭기 위해 집착하면서 투자를 하다가 그 투자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다가 그런 노력이 부담스러워서 상대방이 떠나는 일,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유망해 보이는 라인에 줄 섰다가 그 라인 맨 위에 있던 사람이 날아가면서 같이 쓸려가는 일. 우리의 삶은 그런 일들로 점철되어 있지 않던가.
그럴 땐 다시 시작해 보자, 하다 보면 잘 안될 수도 있고, 내 생각보다 오랜 시간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래도 다시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헌신해 보자. 단 이런 경우에도 단 두 가지만큼은 지켜줬으면 좋겠다. 첫째, 전에 했던 방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 볼 것. 둘째, 복권이 '꽝'으로 확인되면 그것은 길거리가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