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드인 (2021년 3월 28일 ~ 3월 30일)

서울, 대한민국

by 한서



날이 조금 풀리고 난 후 부터

나는 회사 근처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만 걸으면 아주 오래된 벚나무가 길게 늘어선 공원이 나오는데, 요즘 나무 끝에 희미하게 물들던 붉은 기운이 점점 연분홍으로 번지고 있었다. 간단히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고 난 뒤,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을 느끼며 눈을 감곤 했다.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따뜻한 햇살은 봄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그와 주고받는 메시지는 대부분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이었다. 회사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을 즈음, 그는 퇴근길을 지나 집에 도착해 씻고 쉬는 시간이었고, 나 역시 하루를 정리하며 조용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루 중 가장 조용하고, 어쩌면 가장 말하고 싶은 것들이 고이는 시간인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퇴근 후 간단히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식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베란다 너머로는 이미 어두워진 하늘 아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나는 식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몇 번 들었다 놓았다. 어느 날들은 나와 그는 볼리비아에서 여행했던 곳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고, 어느 날들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어느 날엔 최근 좋지 않은 일로 퇴사를 한 나의 친한 동료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나의 고민들에 어른스럽게 답변을 해줬다. 그리고 최근 며칠은 그와 영화 '대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두 손으로 따뜻한 물이 든 머그컵을 들고 밖을 참시 바라보고 있던 그 때, 그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준 아마노 (20:11, 3월 28일)
- 이것 봐, 어제 벚꽃을 엄청 많이 봤어. 어제는 햇빛도 좋고, 꽃도 만발했던, 너무 아름다운 날이었어.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이제 곧 꽃이 떨어질 것 같아.
한서 박 (20:47, 3월 28일)
- 와! 너무 예쁘다. 너 정말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구나. 진짜 봄이 왔네. 서울은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았지만 며칠 내로 피지 않을까 싶어. 그래도 너 덕분에 올해 벚꽃을 빨리 볼 수있게 되었네. 사진 보내줘서 고마워.
준 아마노 (22:26, 3월 28일)
- 최근에 기온이 조금 상승해서 곳곳에 꽃이 피기 시작했어. 휴가는 어떻게 보냈니?
한서 박 (23:09, 3월 28일)
- 에너지 풀 충전 할 수 있었어. 너도 마지막 1시간 남은 일요일 잘 보내길 바라!

거실에 불을 줄이고 소파에 앉았다. 여전히 밝은 도시의 불빛에도 고요한 밤 하늘에 희미하게 빛나는 별이 보였다.


이틀 후 점심 시간, 이 날도 어김없이 따뜻한 햇살에 이끌리듯 나는 도시락을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잠시 숨을 고르며 공원으로 들어서는 그때, 고개를 들자 내 눈앞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환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며칠 전까지 가지 끝에 맺혀 있던 붉은 기운이 마침내 터져, 연분홍빛 팝콘이 벚나무 가지를 뒤덮고 있었다. 나는 황홀한 기분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햇살이 스며드는 가지 사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그 아래 조용히 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모습까지.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골라,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서 박 (12:31, 3월 30일)
– 드디어 서울에도 봄이 왔어. 공원에 갔는데, 벚꽃이 팝콘처럼 터졌어. 너무 예쁘다. 너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어.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벤치에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벚꽃은 당장 어디로든 떠나고 싶게 만들 만큼 황홀했다. 그와 함께 이 장면을 보고 있다면 어땠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의 답장은 다음 날 저녁에 도착했다.

준 아마노 (21:10, 3월 31일)
– 우와, 공원 너무 예쁘다. 서울도 완전히 봄이네. 오늘도 날씨가 진짜 좋았어. 그리고... 그 팝콘, 먹는 거 아니야~

나는 그 메시지를 읽고 웃음이 났다. 그의 익숙한 농담투는 하루의 끝에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보내준 벚꽃 사진과 나의 벚꽃 사진은 화면 속 두 계절처럼 나란히 남아 있었다. 올해 벚꽃은, 우리 각자의 거리에서 조금 다른 시간에 피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함께 피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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