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역 (2021년 8월)

서울, 대한민국

by 한서



그 주엔 결국 준을 보지 못했다.


그와 약속을 잡은 다음 날도 시간이 흐물흐물 지나갔다. 하루만 더 버티면 그를 볼 수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힘든 하루도 버티고 버텨 드디어 저녁이 되었을 무렵, 잔업이 있어 컴퓨터 속 엑셀 파일을 들여다보던 차에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선과 숫자가 가득한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고 메세지를 확인했다. 그 순간, 나는 의자에 몸을 깊이 묻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준 아마노 (19:14)
- 한서야, 내일 결혼식 끝나고 친척 집에서 자고 돌아올 것같아. 이번 주에 보는건 어렵겠다. 정말 미안해...


나는 한참동안 메세지를 들여다보았다. 답을 쓰려다 멈추고,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켜고를 반복했다. 괜찮아야 했다. 섭섭했지만 섭섭하다고 말 할수도 없었다.


한서 박 (19:22)
- 그래. 조심히 잘 다녀와.


결국 짧게 그에게 답을 보내고 휴대폰을 밀어두었다. 사무실 형광등 불빛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그 주 주말은 혼자 보냈다. 중랑천을 걸었고,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빨래를 돌리고, 방을 정리하고,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은 찬장 구석에 박혀있던 라면을 끓여먹으며 휴대폰을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주말이 조용히 지나갔다.

월요일이 시작되었을 때, 세상은 온통 회색 빛이었다. 출근길, 마스크를 낀 사람들 틈에서 나도 마스크를 쓰고 움직였다. 모두가 같은 표정으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나도 그 흐름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했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메일을 열어 회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회의에도 참석했다. 모든것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중에도 나는 휴대폰 메신저를 자꾸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의 대화창을 확인할 때마다, 내가 보낸 메세지 왼쪽에 '읽음' 이라는 것만 남아있을 뿐 그로부터 온 새 메세지는 없었다. 화요일, 수요일, 날짜는 하나씩 넘어갔지만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기계처럼 살아가는 삶 속, 그 모든 날이 똑같이 흐릿하고 반복적이었다. 매일 그가 궁금했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멀리 있는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면서, 이렇게나 의지하는게 맞는 것이냐고. 그의 연락 한 통으로 하루가 달라지고, 그의 부재로 나의 한 주 기분이 달라지고, 무너지는게 맞는 것이냐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스크 속에서 숨이 더 얕아지는 것 같았다. 회사 사람들 앞에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 그저 피곤해서 예민한 직장인인 척 굴고 있었지만,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고. 혼자 살기 외로워서도, 세상이 뒤집힌 시기라서 더 기대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읽음 표시’에 하루를 걸어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건 아주 오래전, 라파스의 밤공기와 함께 내 안에 심어졌던 감정의 연속선 위에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속이 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그에게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다. 스스로 삶을 잘 유지하는 사람, 연락이 없다고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 모습을 그도 알고 있었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조금은 나를 더 신경써줬으면, 연락해줬으면 하는 그런 모순된 바람이 뿌리처럼 엉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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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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