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한민국
지난 토요일, 그는 영상통화를 걸어와 자신의 집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의 손에 들린채로 그의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작은 방까지 돌아다녔다. 그는 다시 거실로 돌아와 소파 앞에 놓여있는 붉은색깔의 자전거를 비추었다. 출퇴근용으로 최근에 하나 구입했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고, 그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해 보여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새벽까지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며 잠에 들었던 밤이었다.
회사 생활은 여전히 버거웠다. 입사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일에 서툴어 익숙해질 기미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그럴 때 마다 중랑천을 걷고 뛰곤 했다. 해 질 무렵의 강변은 늘 붉은 빛이 남아있었고,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물소리와 섞여 들려오기도 했다. 나는 마스크를 끼고 뛰는 것이 힘들어 숨이 찰 때마다 주변 눈치를 보다가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호흡을 하다가 사람이 다가오면 얼른 올리는 것을 반복했다.
그 주 목요일에도 중랑천을 갔다. 강을 따라 걷던 중, 반대편으로 사람들이 돌다리를 건너는 것이 보였다. 그 때, 강가 초입에 붉은색의 자전거 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자전거를 찍어 준에게 보냈다.
한서 박 (20:20, 8월 5일)
- 준! 너 어디있어?
문자를 보내고 5분 쯤 지나자 그가 답을 보내왔다.
준 아마노 (20:25, 8월 5일)
- 안녕, 한서. 나? 집에 있지! 밥 먹고 있어. 오늘도 중랑천? 너 언제나 사진을 예쁘게 찍는구나!
한서 박 (20:31, 8월 5일)
- 아, 정말? 에이, 나는 너가 빨간색 자전거 가지고 한국에 와 있는 줄 알았는데.
준 아마노 (20:32, 8월 5일)
- 아? 하하하, 나도 내 자전거인 줄 알았네!
한서 박 (20:34, 8월 5일)
- 저녁은 뭘 먹었어? 오늘도 카레?
준 아마노 (20:35, 8월 5일)
- 계란 후라이랑 볶음밥. 카레는 어제 다 먹어서 내일 새로 만들거야. 하하하. 아참, 한서야, 이것 봐. 내 동료가 이걸 줬어.
그는 동료에게 받았다는 한국 치약 사진을 보내왔다. 화면 속 초록색 포장이 낯익었다. 마트 진열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물건이었지만, 그가 ‘한국’ 치약을 받았다며 굳이 내게 보냈다는 사실이 묘하게 고마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인터넷 화면 속 얼굴들이 점점 익숙해지는 시기. 이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그에게 점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옛 기억이 떠오르고 그 시절의 공기와 빛이 다시 나를 감싸는 듯했다. 그는 여전히 어른스럽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며 조용히 이해해줬다. 그가 나의 하루를 듣고, 가볍게 웃으며 “그랬구나”라고 말하는 그 짧은 순간마다 나는 이상할 만큼 안도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의 목소리 너머로 들리는 생활음조차도 내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이렇게 마음이 커져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보고싶고, 그가 좋았다.
한서 박 (21:02, 8월 5일
- 이번 주 토요일엔 뭐해? 날도 좋은데 저녁 먹으러 가자!
마치 그가 한국에, 내가 일본에라도 살고 있는 것처럼,
준 아마노 (21:03, 8월 5일)
- 좋지! 그런데 그 날 사촌형 결혼식이 있어서 한 7시 즈음 도착할 것같아.
우리가 서로의 주변에 살고 있기라도 하는 것 처럼,
한서 박 (21:04, 8월 5일)
- 알겠어. 언제 집에 도착하는지 꼭 알려줘, 알았지?
다가오는 주말에도 또 그와 약속을 잡는다.
준 아마노 (21:07, 8월 5일)
- 응, 알겠어!
한서 박 (21:08, 8월 5일)
- 푹 쉬어!
강가의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가로등 불빛이 물 위에 길게 흔들렸다. 그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날 따라 강물이 유난히 느리게 흐르는 듯 보였다. 가끔씩 반짝이는 빛이 수면 위에서 흔들리다 사라졌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물 위를 바라보다가 그가 사는 도시의 밤, 강가에도 이런 바람이 불고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그 곳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