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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Aug 06. 2024

불안은 불안을 낳는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알랭 드 보통, <불안>



몇 년 전, 나의 엄마는 종합검진에서 췌장에 이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조직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진료일까지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엄마는 혹시라도 췌장암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심지어 가족들이 본인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진짜 암이라면 당장 수술받으라고 했을 거예요. 걱정하다 오히려 병이 더 커지겠어요."

하지만 얼마 전에 췌장암 말기로 친구를 잃은 적이 있는 엄마의 불안은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몰랐다.


드디어 그날, 엄마와 함께 병원에 방문했다. 검사 결과를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의사의 입에서 뜻밖의 얘기가 흘러나왔다.


"췌장 쪽은 별 이상 없으니 지켜보면 될 것 같고요. 여기 수치들 보이시죠? 이게 다 과체중 때문에 생긴 거랍니다."


그 말을 듣고 난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말로만 다이어트하는 엄마의 속내를 들여다본 걸까. 그날 이후, 엄마는 목숨 걸고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몇 달 만에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우리는 종종 근거 없는 불안에 시달리느라 잠을 설치거나 자신을 괴롭힌다. 직장 동료가 나보다 빨리 승진할까 봐, 친구가 나보다 좋은 성적을 받을까 봐, 나보다 외모나 성격이 별로였던 친구가 잘난 애인을 사귈까 봐 등등.


나도 한 때는 가진 걸 잃을까 봐 두려움에 떨거나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조바심 낸 적이 있다. 하지만 근거 없는 불안이 백해무익하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그것을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다.


속물 집단은 분노를 일으키거나 좌절감을 안겨준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는, 즉 우리의 지위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세대를 따라 전해진다. 모든 학대 행위에 적용되는 패턴이지만, 속물도 속물을 낳는다.


-불안, 35쪽


쉽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유명인에 대한 집단적 분노가 큰 것처럼, 자신을 통제하기 힘들거나 변화의 여지가 없다고 일찌감치 결론 내려버린 속물 집단은 쉽게 분노하거나 좌절한다. 그러므로 불안은 불안을 낳는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불안, 38쪽)


물질만능주의 시대에는 '가난도 죄'라는 말이 있다. 물론 가난하게 태어난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다만, 평생 따라다니는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반면 타인으로부터의 무시와 외면은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수시로 목을 조르는 감정적 고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 많은 이들이 집단 따돌림이나 비극적인 현실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걸까. 그 밑바탕에는 혼자 힘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과 비참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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