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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Aug 13. 2024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이유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것으로 부유해진다.     

-칸트    


한동일의 『로마법 수업』에서는 인간이 타자와의 구분을 통해 우월함을 드러내려는 것이 본능에 가깝다면, 인간다운 품위를 갖춘 진정한 우월함이야말로 각자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걸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상경해서 대학원 준비를 했다. 몇 달 동안 공부에만 매달린 결과 합격했지만, 입학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기존의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을 고수하려던 나의 고집은 혹독한 타지살이를 통해 다듬어졌다. 덕분에 가끔 서울에 올라가도 타지인이라는 사실을 적당히 감출 수 있고, 세계 어딜 가든 금방 현지화되는 방법을 터득했다.     


로마 구시가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현세와는 동떨어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구도시와 문명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신도시. 그 사이에서 관광객은 어떤 게 진짜 로마의 모습인지 헷갈린다. 그래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빨리 적응하거나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문명의 혜택을 어느 때보다 많이 누리고 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원하는 것이 곧바로 충족되지 않으면 우울증이나 분노로 이어지는 현상도 코로나를 계기로 극심해졌고,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까지 탄생했다. 마스크를 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착용하기 싫은 마음과 충돌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마스크 안 끼면 외출 못 해. 그리고 외출한 뒤에는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이모랑 같이 놀 수 있어.”  


한창 자유롭게 뛰어놀 나이에 코로나를 맞이한 조카들은 한동안 진통을 앓았다. 유치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으면 가방을 메고 집 앞에서 놀았을까. 현실의 문 앞에서 우린 때로 좌절하면서 바이러스와 법의 무서움을 체득해야만 했다.     


최근 들어 연예인뿐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인성’이 화제가 되고 있다. 힘들게 공부시켜서 대학이나 유학을 보냈더니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도박이나 마약에 손을 대거나 가까운 이들을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일이 잊을 만하면 뉴스에 등장한다. 나의 조카들도 혹시나 주위 환경으로 인해 안 좋은 모습을 보고 배우진 않을지 걱정될 때가 많다. 그래서 옮고 그름을 분명히 하고, 예의를 지키는 법도 틈틈이 알려주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절망적인 조건을 견뎌내기 위해 유머를 발명할 필요를 느낀 유일한 동물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간>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라는 키케로의 주장처럼, 우리가 짐승이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남의 인격을 함부로 짓밟거나 쓸데없는 구별을 통해 타인을 소외시키는 일은 자연스레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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