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자아는 일차적으로 침묵 속에서 마련된다.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눌 때 스스로에 의한 자아 정립이 시작된다.
-박홍순, 일 인분 인문학
누군가와 대화할 때 어색함을 없애려고 억지로 화제를 끄집어낸 적 있는가. 타인과의 관계에 지쳐 어디로든 숨고 싶었던 적은. 박홍순은 <일 인분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타인과 연결된 상태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유대 관계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언급하면서 침묵의 필요성과 역할을 강조한다.
"언제 가장 외롭다고 느끼나요?"
"혼자 있을 때요."
"사람들이랑 헤어지고 나서 귀가하는 길이요."
"군중 속에서 이해받지 못하거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할 때요."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외로움은 채우려 할수록 실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모르는 여자와 자기 계발에 몰두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남자가 만났다. 처음에는 사랑의 힘으로 모든 걸 극복하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의 불만은 늘어갔고, 그걸 달래주는 남자의 마음도 지쳤다. 몇 번의 다툼 끝에 그들은 이별하기로 했다.
"제가 잘못했죠. 그렇게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타고난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들이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일 인분 인문학, 63쪽)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렬해진 건 초등학교 때부터다. 부모나 교사한테 인정받으려면 공부를 잘하는 수밖에 없었고, 상위권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성적이 오를수록 그것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이 생겼고, 점점 더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갔다. 하지만 한편으론 있는 그대로 이해받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다.
돈을 벌수록 더 많이 벌고 싶고, 사랑받을수록 더 많은 관심을 얻으려 한다. 지금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발바닥에 피가 흐르는지도 모른 채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쉼 없이 달려간다. 멈추는 방법도,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도 알지 못한 채. 그만하면 됐다고, 아무리 다독여도 들리지 않는다. '신분 상승'이라는 먹잇감을 얻기 위해 우린 '무한경쟁'이라는 밀림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다.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이 개인적 관계에서 보여주는 것에 비해 훨씬 심한 이기주의가 모든 집단에서 나타난다. 집단의 도덕이 개인의 도덕보다 열등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자연적 충동들에 버금갈 만한 합리적인 사회세력을 형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위의 책, 81쪽)
개인적으로 봤을 땐 문제없어 보이던 사람이 특정 집단에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간은 원래 비합리적인 존재이지만, 무리가 되었을 때 훨씬 더 비합리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요소가 강해지는 것 같다. 본인이 아무리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생존이 걸린 집단에서 양심을 지키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집단의 우두머리가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느림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다. 어느 한 기간을 정해 놓고 그 안에 모든 것을 처리하려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같은 책, 257쪽)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미덕으로 칭송되던 시대는 지났다. 아무리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한다고 해도 개인의 삶에는 저마다 다른 속도가 필요하다. 자신한테 맞지도 않은 속도를 내다보면 오작동을 하기 마련이다.
음식점에서 일인 분을 주문할 수 없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자. 일인 분도 기꺼이 주는 곳을 찾으면 된다. 친구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다고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혼자면 혼자답게, 혼자여도 행복한 삶을 꾸려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