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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Aug 20. 2024

생에 관한 질문


현재의 한 순간은 어쩔 수 없이 결정된 한때이다. 우리의 오늘이 일 년 중에서 가장 좋은 날이며, 지금 이 시간이 제일 좋은 시간이며,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은 순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만이 당신의 소유이므로.


-에머슨


삶의 이유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태어난 것도 우연, 내가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도 우연의 결합이 아닐까. 리처드 도킨스가 언급한 것처럼, 우린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으려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을 지도.


언젠가 로또에 당첨되면, 언젠가 결혼하면, 언젠가 원하는 집을 사게 되면... 우리는 종종 기약 없는 미래에 현재라는 소중한 순간을 미끼로 건네준다. 그걸 덥석 무는 순간 당신의 삶은 점점 더 불안과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삶의 이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나의 존재는 점점 더 작아졌고,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렸으며, 어딘가로 휩쓸려갔다.


인간에게는 인생의 목적을 알 수 있는 이성이라는 기능이 있다. 만일 이성이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사회적 제도 탓도 아니고, 이성이 모자란 탓도 아니다. 단지 당신이 타고난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마음에 힘을 주는 사람을 가졌는가>


상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이성이 재빠르게 작동한다. 덕분에 복잡한 사건에 휘말리거나 책임을 떠안는 일도 적지만, 점점 더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되어 갔다. 그렇게 꾹꾹 눌러둔 감정은 예기치 못한 순간 비집고 나오곤 했다.





어느 날, 혼자 쇼핑몰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큰소리가 들렸다. 손님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창고 쪽에서 직원 두 명이 언성을 높여 싸우고 있었다. 각자 감정에만 충실하느라 자신들의 목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일터에서 동료와 그렇게 얼굴 붉혀가며 싸워야 했을까.


우리 삶에는 두 종류의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벗어날 수 있는 문제로,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두 번째는 벗어날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 문제와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을 개선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아니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가?'


벗어날 수 있는 문제라면 빨리 답을 내리고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쉽게 벗어나기 힘든 문제라면 객관적으로 바라보거나 거리를 두면 좀 더 견디기 수월해진다.


이십 대 후반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고, 자궁암 오진을 받았으며,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고향에 내려와 날개가 부러진 적이 있다. 그때는 살아갈 날들이 막막했고, 언제까지 부모한테 기대야 할지 모를 신세가 처량했으며,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추락하면서 '차라리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독서와 글쓰기, 산책은 게을리하지 않았고, 덕분에 내면은 더욱 단단해졌다.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결국 각자가 꼭꼭 씹어서 소화해야 한다. 아무리 남들이 내 마음을 알아준다 한들, 나 자신만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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