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그에 걸맞게 극적이거나 아름답게 맞이한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황당하게, 준비가 덜 된 채 맞이하고, 그래서 그걸 더 특별한 추억으로 삼는다. 그 사람이 바로 나다.
나는 면허를 어렵게 땄다. 시험이 어려운 게 아니라 운전면허를 갖기로 마음먹고 시험을 보기가 오래 걸렸다. 나는 분명히 도로 위에서 해로운 존재가 될 거라는 부정적 믿음이 아주 두터웠다. 자격이나 면허를 얻기 위해 시험을 보는 행위도 싫고 두려웠다.
"우리가 부부싸움을 한 뒤에 주영이가 홧김에 집을 나가고 싶어지면, 면허가 쓸모 있을 거야."
라고 말하며 남편이 권했다. 그 말에 면허를 따겠다고 했다.
학원비며 응시료며 돈을 내고도 아침 일찍 시험장에 가는 게 어려웠다. 남편이 잠을 깨워주고 세수도 안 한 나를 데려다준 덕분에 주행시험을 쳤다. 도로시험은 두 번만에 합격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주행은 그럭저럭 했지만, 주차장에서 늘 실수를 했다. 주차가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속도, 각도 그리고 기어! 차라리 차를 손으로 들어 원하는 위치에 내려놓고 싶건만. 처음으로 사고를 낸 날, 나는 후진기어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오르막 액셀을 밟았다. 자동차는 힘차게 후진했고 뒤 범퍼, 펜더, 트렁크가 구겨져 버렸다. 역시 나란 인간은 글렀다고 손을 떨며 이불속으로 드러누웠다. 남편은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셨군요, 고객님. 예, 사모님이..."
전화너머로 보험사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더욱 창피해졌다.
그 후로 운전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중앙부처가 감사를 받은 뒤 지적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에다 아주 쓸데없는 일을 시켰다. 할 수 없이 바깥을 돌아다녀야 해서 출장용 중형차를 배차받았다. 청사 내에서 팀원의 배웅을 받으며 출차했는데, 주차장 기둥을 도는 순간 기둥에 붙여 댄 새로운 차를 발견했다. 좁은 코너에서 이리 꺾고 저리 꺾고를 시도하다 결국 일이 잘못되어 버렸다. 청사를 관리하는 여사님의 차였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 처음에는 그럴 수 있어. 사고내면 크든 작든 손 떨리지. 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어!"
정말 관대한 분이셨다.
"그럴 땐 뒤로 뺐다가 앞으로 최대한 가서 핸들을 이빠이 돌려서 빼야 해."
난 이 '이빠이 돌려'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후로 출장용 차는 오로지 경차만 신청했다.
공무원의 합법적 아르바이트인 시험 감독을 다녀온 날이었다. 감독수당을 소중히 받아 집에 돌아와 주차만 하면 되었다. 자리가 모자라 3중 주차를 하는 우리 단지는 길이 좁아서 반대 방향으로 주행하는 차를 만나면 아주 골치가 아파지는데, 그런데... 왜 하필 저한테 이런 시련이! 반대편 차주는 나더러 후진하라고 요구했고, 나는 그에 응해 후진하다 또 사고를 냈다.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올해 초에 도색을 싹 다 하고 새것처럼 만들어놨는데..!"
차주께서 하시는 아쉬운 소리에 울기도 민망해졌다.
"이럴 땐 못한다고 해, 하란다고 하다가 이렇게 되잖아. 초보라서 후진 못한다고, 저 차더러 빼라고 해."
그러게요, 그 거절의 말 한 마디면 이런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을.
나는 그 이후로 시험감독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주옥같은 세 가지 일화를 겪은 뒤 남편에게 새 차가 생겼다. 그리고 남편은 소중한 새 차의 운전대를 절대로 나에게 빌려주지 않는다. 참으로 옳은 판단이다. 몇 년 동안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가고 싶어지면, 운전 대신 B, M, W를 이용했다.
Bus, Metro, Walk.
그리고 지난 7월, 승진이란 좋은 소식과 함께 전출 대상이 되어 나의 근무지는 바뀌었다. 근무지를 배정받기 전에 가고 싶은 곳을 신청할 수 있었는데, 나는 이 즈음에 어디로 배정되든 운전으로 출퇴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중고차를 샀다.
마침 남편의 동료가 새 차를 사면서 옛 차를 처분한다고 해서, 바로 그 차를 내가 인수했다.
"있잖아요, 저 ㅇㅇ구에 가려고 차도 샀어요!"
"ㅇㅇ구에 진심이구나!"
"차에 별명도 지어줬어?"
"네, 영자예요. 영차영차 힘내야 하는 자동차."
영자는 11년식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였다. 차량등록부에 적힌 차종은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인데, 차체에는 '스파크'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자동차 회사가 인수된 후 마티즈 시리즈에서 스파크로 세대교체가 되던 즈음 생산된 녀석인가 보다. 사람도 항렬자를 따라 호적 이름을 따로 만들어 올리는 사람이 있듯이, 우리 영자도 그런 셈이다.
영자를 타고 운전하는 건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출발할 때 가속을 하면 계기판 rpm수치가 홱홱 올라가고 소리가 바앙 하고 울려 퍼진다. 그렇게 생색을 있는 대로 내면서 실제 올라간 속력은 20km/h에 그친다. 가속으로 인한 사고는 내지 않겠으니 안전한 차다. 경차여서 좁은 길에 들어갈 수도 있고, 적당한 간격만 나와도 주차를 할 수 있다. 게다가 후방주차 센서까지 갖췄다! 영자는 내 운전 수준에 딱 맞는 차였다.
영자를 갖게 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었다. 출퇴근은 물론이고, 아이가 등원차량을 놓친 날에 내가 직접 등원시켜 줄 수 있고, 어린이집에 가져다줄 물건이 있으면 바로 달려갈 수 있다. 남편이 야근으로 늦는 날 내가 아이들을 태워 집에 돌아오기도 하고, 일부러 내 차를 타고 주말에 외출하기도 했다.
"엄마 차 타고 싶어요!"
아빠 차가 더 좋은데?라고 대답하면서도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엔 '나도 차가 있구나' 실감했다.
오랜만에 연차를 내고 쉬는 날, 영자를 타고 찜질방에 다녀오면서는 '내 차가 있는 건 정말 편하구나' 느꼈다.
내 첫째와, 아이 친구, 그 친구의 엄마 넷이서 내 차로 놀러 간 적도 있다. 경차로 고속도로를 운전한다는 점은 조심스러웠지만,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간다는 점이 정말 걱정스러웠지만, 우리 넷은 정말 재미있게 잘 놀고 왔다.
내 차가 있다는 건 정말 좋다.
영자 덕분에 알게 된 것들도 있다.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는 기어봉을 P, N이 아닌 곳에 두었는지를 확인하라, 보험 불러놓고 창피해지기 싫다면. 노란 선에 주차를 했을 때 물피를 당하면 보험사는 그 점을 두고 보상범위를 조정한다. 나는 대차 없이 수리받기로 했다. 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는 기어봉을 확인하라, 그런데 기어 위치가 멀쩡하다면 이번엔 배터리 교체다.
영자는 다른 창문은 다 멀쩡한데 운전석 창문만 열리지 않았다. 고속도로나 주차장에서 운전석 창문을 열 일이 많아 불편했다. 창문을 수리하러 정비소에 간 날, 문 안의 배선이 탔고, 얼마나 길게 탔는지를 알아보면 수리비가 커진다고 들었다. 영자는 딱 연식만큼 낡은 차였다. 그즈음 운전의 피로와 멀미 때문에 영자를 타는 게 힘들어졌다. 난 슬슬 차를 바꾸고 싶어졌다.
"그러게, 돈 좀 보태서 다른 차를 사라고 내가 말했잖아."
동생은 내 영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 마디씩 던졌다.
무슨 생각에 사로잡혔던 건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나는 가진 돈은 쥐뿔도 없이,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중고차 매장을 찾아가 훨씬 비싼 중고차를 구매하고 영자를 팔았다. 중고차 매매업체가 영자를 인수한 금액은 60만 원이었다.
영자와 함께한 기간은 약 100일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첫 차의 기억이라 무척 소중하다. 사고다발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우며 운전을 쉬었던 나지만, 영자를 타는 동안은 한 번도 사고를 내지 않았다. 매일 영자를 운전하며 사고 없이 출근하고, 사고 없이 퇴근한다는 게 내게는 성취감을 주는 일이었다. 심지어 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에서 공주까지도 출장을 다녀왔다! 그런 성취감은 치료 중이던 우울증 극복에도 도움이 되었다.
왠지 영자는 이야기도 들어줄 것만 같았다. 영자! 하면 전조등이라도 켜줄 것만 같고. 그렇게 친근하고 편안한 차였다. 나를 새로운 주인으로 받아준 차. 내게는 첫 차. 중고차 업체에서 마지막으로 세차를 마친 영자 사진을 보내줬다. 보험 처리를 위해 보내준 것이었지만,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세차도 안 해 줬구나.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영자는 지금쯤 다른 주인을 만났을까. 내 고마운 첫 차가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차생을 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