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혼자 있고 싶어진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피곤해진다. 이 몸으로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가면 사랑하는 아이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넬 것이다. 행복한 저녁, 나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에게 불려 다니며 놀이를 하고 애걸복걸하며 아이들을 씻긴 뒤 잠에 들겠지. 나는 이런 하루를 좋아한다. 이렇게 지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좋아서 다른 놀이나 유흥거리는 관심도 안 가진다. SNS도 잘 하지 않는다. 그걸 하느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그래도 종종 혼자 있고 싶다.
나는 이따금 혼자 시간을 보낸다. 6시 50분,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8시쯤 집에 온다. 어떤 날은 땡땡이를 치고 싶다. 퇴근하다 딴길로 새어 초밥집에 들어간다. 다찌석에 앉아 연어초밥과 데운 사케를 주문한다. 이곳은 초밥이 맛있어 좋아한다. 비싸지 않은 사케를 팔아서 이곳을 더욱 좋아한다. 입안을 부드럽게 채우고 간 연어 기름을 데운 사케로 씻는다. 입안의 기름도 녹고 나의 피로도 살살 가신다. 8시가 되기 전까지만. 약간 빠듯한 시간을 요령껏 늘려 쉬는 시간. 30분이면 되는 퇴근길을 남몰래 1시간으로 늘려 즐기는 시간. 며칠을 떠나 자유부인이 되는 것만큼이나 일상을 버틸 힘이 되어 준다.
주기적으로 '애환을 녹이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
그 시간을 즐기려면 녹일 애환이 있어야 한다. 애환은 쉽게 생겨난다. 지위가 낮아서 생기고, 돈이 없어서 생기고, 체력이 부족해도 애환은 생긴다. 삶은 버티는 것이고, 버팀에는 언제나 애환이 따른다. 자존심을 지켜도, 버려도 다르지 않다. 애환은 피로와 짝지어 있다. 그 둘이 힘을 합치면 데운 사케는 더욱 맛있다.
나는 아주 혼자일 때도 있었다. 늘 홀로 지내다 때때로 혼자가 아니게 되는 삶이었다. 혼자라서 생긴 애환마저도 혼자 씻어냈다. 금요일 밤에는 마트에서 가격을 고민하지 않고 채소를 사다가 먹고 싶은 대로 음식을 만들고 맥주나 영상을 식사에 곁들였다. 그러면 음식을 준비하고 그걸 먹은 채 포만감에 깔려 드러눕는 과정이 애환을 녹여 주었다. 배불리 먹은 후에는 음악을 들으며 두 시간 정도를 걷곤 했다. 하염없이 걸어도 하염없이 생각할 것들이 생각났다. 그다지 생산적인 생각은 아니었지만 잠들기에 좋았다. 토요일에는 최대한 누워 뒹굴었다. 일요일에는 온 집안을 청소하고, 일주일 치 장을 보고, 잘 씻고 월요일을 준비하곤 했다. 그 때는 일주일 치 애환을 녹이는 데에 이틀씩 필요했다.
나는 아주 피로하게 산 적이 있다. 새벽 5시 50분 버스를 타야만 9시 전에 출근할 수 있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 역시 멀었다. 하루하루의 피로를 이기기 힘들었다. 그때는 매일 저녁이 애환을 녹이는 시간이었다.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콩나물국밥에 모주 한 잔을 반드시 시켜 먹는 시간. 버스를 타기 전에 입에 털어넣는 따끈한 국물과 모주가 집에 돌아갈 힘을 주고 하루의 고민과 설움도 다독여 주었다. 오래지 않아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이 국밥에 모주를 시키는 나를 기억하게 되었다.
"모주 맛있어요?"
맛있는 걸 돈 받고 파시면서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더 오래 전에는 대도시에서 대학을 다녔다. 일주일에 몇 번 교문 앞에 분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영업을 했다. 교내에서도 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지만 그 포장마차의 투박함이 더 편했다. 나는 종종 거기에 선 채 떡볶이를 먹거나, 포장해서 집에 가져갔다. 쌀떡과 밀떡을 구분해서 파는 곳이었다. 나는 자주 쌀떡볶이를 먹었다. 교복 입던 시절에 떡볶이는 별난 의미가 없고 먹고 싶으면 먹는, 그저 맛있는 음식에 불과했었다. 대도시의 대학에서는 크고 각진 건물 앞에 시간을 정해서 오는 천막 아래의 떡볶이가, 시골에서 상경한 나에게 그나마 가장 정서적으로 친숙한 것이었다. 아주 익숙한 것이 아주 낯선 곳에서 존재할 때의 반가움-예를 들면 해외에서 현지 식당과 카페보다 전세계적 체인점인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 반가움을 느낀다는 그런 정서처럼-이 천막과 떡볶이에 있었다. 정작 시골에서 나는 천막에서 파는 음식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그 때 떡볶이는 처음으로 내게 애환과 연결되었다. 그 때 삼킨 애환은 더부룩했다. 배고픈 것보다 그나마 나았다.
대학을 관두고 싶었지만 겨우 휴학을 하는 것으로 버티던 어느 날에, 친구가 대뜸 불러 신당동에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하릴없이 지내던 나는 기쁘게 외출해서 즐겁게 떡볶이를 먹고 돌아왔고 그 떡볶이에는 별 애환이랄 게 없었다. 친구는 그 때를 회상할 때마다 '네가 가장 잉여일 것 같았다'고 날 부른 이유를 이야기하곤 했고 나는 그걸 늘 맞다고 답하며 웃곤 했었다.
몇 년간, 우리가 가끔 다시 만날 때마다 신당동 떡볶이를 이야기할 때면, 친구는 나를 그 날 그렇게 부른 것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는 듯 보였다. 유감스러움이 느껴지는 표정에 조금 당황했다. 아무 유감 없던 기억에 유감을 둬야 하는지를 조금 생각했다. 그 떡볶이는 애환과 멀었기 때문에, 거기에 다른 말을 붙이지 않고 싶다.
나는 지금 바다에 와 있다. 바다에는 혼자 온 적이 없다. 나는 평소와 달리 눈을 뜨자마자 머리를 씻고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다. 양식장과 어선 너머 사량도와 하도, 두 섬을 잇는 다리, 가만히 산 사이에 드리운 구름, 너머의 흐릿한 섬과 산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삶을 돌이키게 하는 데엔 바다만한 곳이 없었다. 파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꾸 우렁차게 땅을 때리는 물소리가 바람에 맞춰 들려오고, 물결은 늘 같으면서 다른 모양으로 자꾸 생겨나고 없어지고 있었다. 바다는 어떻게 움직이든 쉬지 않는다. 그게 나에게 자연과 삶의 실제를 알려주는 가장 감각적인 자극이다. 애환이 느껴질 때면 바다를 보고 싶어했었다. 바다 대신 음식을 먹곤 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바다에 와 있다. 오늘은 바다에서 나의 애환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많이 느끼고 있다. 경치 좋은 자리에 펜션을 건설한 사장과, 떠가는 고깃배를 운전하고 있을 선장과, 빨갛고 하얀 부표로 표시한 양식장의 관리자들. 아름다운 해송과, 절벽을 바라보면서 감상적인 기분을 덜 느끼게 된 것은 방에서 자는 아이들 때문이랄까, 덕분이랄까.
여행은 짧다. 바다는 멀다. 더 자주 바다에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