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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와의 재회 :
"오랜만이네, 기린."
제이가 먼저 말을 건넸다.
몇 년이 흘렀고 취업을 했었고 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헤어진 후로 처음이었다.
나는 서점의 문을 밀고 들어서던 참이었다. 문이 열리며 작은 종이 울렸다. 제이가 계산대 근처에 서 있었다.그녀는 얇은 시집을 한 권 들고 있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빗물에 젖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
내가 대답했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렸다.
"잘 지내?"
제이가 물었다.
"뭐 살아있다는 점에서는."
내가 대답했다.
"여전하네. 그 말투."
제이가 웃으며 입을 가렸다.
"너도 여전하네. 그 시집."
"아, 이거? 아직도 기억해?"
제이가 놀라며 물었다.
제이의 손에는 우리가 함께 서점에서 골랐던 오래된 시집이 들려 있었다.
"물론이지. 네 생일날 샀었잖아. 커버가 예쁘다고."
"아 그랬나? 나는 기린이 선물해 줬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랬나? 그 시집 읽고 같이 영화 봤었잖아. 이영애 나오는."
내가 대답했다.
"아니야, 그날 우리가 봤던 건 '호우시절'이었어. 이영애가 나오는 건 '봄날은 간다'고. ‘호우시절’ 보고 좋아서 '봄날은 간다'까지 찾아본 거였잖아."
제이가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우리가 조금씩 어긋나 있다고 느꼈다. 내 기억엔 '봄날은 간다'가 이전이었다. ‘호우시절’은 훨씬 나중에 다른 이유로 찾아본 영화였다.
내가 말했다.
"글쎄. 기억이라는 게 좀 제멋대로인가 봐. 어쩜 내 머릿속엔 커다란 두더지가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여전하네."
제이가 웃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자 나는 잠시 말이 막혔다. 전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제이가 말했다.
"나 배고파."
"서점에선 밥을 팔지 않는데."
내가 대답했다.
제이가 대꾸 대신 웃더니 내 팔을 잡고 끌었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그녀에게 끌려갔다.
우리는 나란히 우산을 쓰고 걸었다. 예전과 같은 좁은 골목이었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혹은 우리가 여전히 연인 사이인 듯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어색했지만, 나는 그 어색함에 설레였다. 우리는 길을 걸었다.
예전에 이 길을 제이와 함께 걸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랬던 적이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역시.
내 머릿속에는 커다란 두더지가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영화 파일만으로 짤을 만드는 건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덕분에 이영애님과 심은하님, 유지태님, 한석규님 실컷 봤네요. 고원원님은 짤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여성 독자분들을 위해 살짝 정우성님도 넣었습니다. ㅎㄷㄷ 진짜 잘 생겼다... ㄷㄷ
짤을 편집하면서 영화 장면이 다시 떠오르고 그랬네요. 정말 허진호 감독님...
대단하세요 ㅠ
너무 멋지세요. 미술관 옆 동물원 보면서부터 허진호 감독님 좋아했었는데.
(미술관 옆 동물원은 이정향 감독님입니다
제 머리속의 두더지가 또 한 건 했습니다
죄송합니당 ㅋ)
그때 심은하님 정말 넘사였죠.
아,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네요.
이영애님 봄날은 간다에서 너무 했어요 증말 ㅠ 너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