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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집사 May 19. 2023

#2. 낮에는 광고 촬영, 밤에는 코딩

광고 기획자가 프로그래밍을 한다고?


회사를 다니면서 코딩을 배운 이유


나는 노랑이의 사고 전부터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었다. 시커먼 터미널 화면을 켜놓고 함수를 입력하면 멋진 결과 물이 뿅 하고 나오는 프로그래밍의 매력적인 세계~는 무슨. 퇴근 후 강의를 보면 졸기 일쑤였고 주말에 하는 코딩 연습은 느슨했고, 프로그래머가 되는 길은 요원했다.


사실 나는 컴퓨터와는 전혀 상관없는 농업경제학을 전공했고, 광고대행사에서 AE로 일하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프로그래밍을 배웠던 이유는 과거의 실패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후 개발했던 웹앱과 서적. 당시 이투스를 벤치마크 했었다.


대학 졸업 후, 나는 호기롭게 친구들과 함께 에듀 테크 창업을 했다. 책도 썼고 나름 웹앱도 만들어서 수익성도 검증했다. 엔젤 투자자와 VC들을 대상으로 IR을 하고 투자 협상도 진행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망했다, 아니 그만뒀다. VC와의 마지막 투자 협상에서 '대표가 테크 베이스가 아니면 투자를 할 수 없다'는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 말이 참 큰 상처였다. 그런데 오랜 시간 회사를 다녀보니, 그 말이 맞았다. 리더가 팀원의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면,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기도 하고 각종 비효율이 난무하게 된다. 특히나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스타트업에서 대표가 핵심 서비스를 빌드할 줄 모르면, 데쓰벨리(Valley of Death)를 넘기 전에 인건비로 고꾸라 질 수도 있다. 회사가 죽을 때까지 나를 먹여 살려주지 않을 것이고 언젠간 스타트업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면 되지, 뭘 미련하게 네가 하려고 그래?


컴퓨터 공학 전공도 아닌데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배우냐, 차라리 그 시간 아껴서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는 게 낫다 등등 사회적 통념(?)에 배우는 것 자체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은 컴퓨터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 역사,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라는 IT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프로그래밍은 누구나 배우면 도움이 되는, 또 영어나 일본어처럼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내가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면, 에이스를 알아볼 수 있다. 할 줄 모르면, 원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 있다. 특히나 비즈니스에서 기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면, 더더욱.





노랑이를 기억하며


노랑이는 나에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 의식을 심어주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 생각,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던 ‘그사세'를 알게 된 순간, 내가 할 일은 분명해졌다. 노랑이와 노랑이의 친구들의 삶을 바꾸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목표.


대행사에서 밤 늦은 시간의 갑작스러운 연락과 업무 요청은 일상적이다.

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현실은 힘들었다. 대행사를 다니면서 퇴근은 불규칙적이었고, 갑작스럽게 밤늦은 시간에 업무 대응을 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김포골드라인과 9호선 급행이라는 혼잡도 투톱 지하철 안에서 프로그래밍 강의를 보는 일은 정말로 끔찍한 정신력이 요구되었다. 광고주가 상처를 주는 말이라도 한 날에는, 에라이. 코딩이고 뭐고 그날은 주정뱅이가 됐다.


그런데 목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어려움 속에서도 정말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HTML에서 CSS, Javascript, Python, Django, React까지.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에, 내가 뭘 모르는지 뭘 배워야 하는지가 조금씩 보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코드 챌린지를 했고, 부트 캠프 기간에 과제를 내기 위해서 새벽 4시, 5시까지 코딩을 하고 출근했다.


솔직히 현재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프로그래밍을 잘하지 못했다. 부트캠프에서 과제를 해결하지 못해 탈락한 적도 있었고, 깔끔하게 10줄이면 끝낼 코드를 너저분하게 20줄, 30줄 써서 스스로 과거의 나를 질책하곤 했다. 그러나 성공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지겹도록 에러와 싸우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스스로 서비스를 빌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정말 정말 조금씩 서서히 붙기 시작했다. 'error'만 보면 발작을 일으켰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로그를 읽고 과거의 내가 어디에 똥을 쌌는지 짚어낼 수 있게 됐다. 프로그래머들의 고충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스택오버플로우는 누가 만드셨나요? 누군진 모르겠지만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렇게 먼 미래로만 보이던 나의 퇴사는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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