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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집사 May 24. 2023

#4. 퇴사 후 현실은 생각보다 XXX이다.

퇴사하면 행복할까?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2021년 7월 15일을 기점으로 나는 공식적인 백수가 되었다. 퇴사한 날에도 코딩을 했으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백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소속, 월급을 주는 곳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보면 나는 백수였다.


퇴사 후의 삶이란? 상상하는 것 그대로다. 하루라도 빨리 이 비즈니스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통장잔고에 초조함과 불안감은 덤.


사실 정신적 대미지를 줄이고 리스크 헷지를 위해서 ‘스텔스 모드 창업’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즉, 회사를 다니면서 MVP 개발과 BM 검증, 투자유치 혹은 꾸준한 매출을 발생시킨 후 퇴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니, 돌이켜보면 퇴사 당시에는 나름대로 플랫폼의 MVP를 만들었기 때문에 스텔스 모드 창업을 했다고 생각했다. 순진하게도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시장의 니즈를 검증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사 직후에는 플랫폼을 완성시키는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집중했다.



아침에 눈뜨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코딩만 해서 결국 손목 윤활막염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보조기구가 주는 왠지 모를 세 보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D-Day를 정하고 그 시점까지 완성된 결과물만 가지고 앞뒤 안 보고 퇴사를 한 이유는 돈 보다 시간이 더 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직금 외엔 아무런 자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소 무모하지만 퇴사를 밀어붙였다.


만약 자금 유치가 안된다면, 아직 젊으니까. 알바든 과외든 몸으로 때우면 되는 것.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알바 인생을 사는 것, 누가 보면 한심해 보일 수도 있을터. 하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삶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단 한번뿐인 인생, 진흙탕을 구르더라도 내가 목표로 하는 삶을 위해 사는 것, 그게 더 멋지지 않나?





퇴사의 장점과 단점은?



퇴사의 최대 장점은 단연코, ‘시간'을 오롯이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 왕복 3시간의 출퇴근에 소비하던 시간과 에너지를 세이브할 수 있었고,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을 모두 서비스 개발과 테스트에 사용할 수 있었다.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업무들에 불필요한 감정과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어졌고, 그 결과 더 효율적으로 집중해서 서비스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왼쪽 먼지(첫째 고양이), 가운데 보리(둘째 고양이), 오른쪽 꽃님이 (막내). 귀여워서 미친다.

또 하나는 사랑하는 나의 반려 고양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낮에는 온종일 낮잠만 자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실제로는 24시간 사냥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하루 두 번 사냥놀이에도 만족을 못했다. 그래서 미안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렸는지 알게 됐으니까.


퇴사의 단점은 역시 돈이었다. 과거와 같은 소비를 할 수 없었다. 모든 소비를 최소화해야 했다. 꼭 필요하고 대체재가 없는 경우에만 지갑을 열었다. 쓰지 않는 물건은 중고로 팔았고, 외식은 최소화. 어쩔 수 없이 집밥을 먹을 수 없는 날엔, 식당에서 가장 싼 메뉴를 골랐고 무엇보다도 페스코 베지테리언이었던 식생활을 포기했다.


김밥을 정말 정말 정말 자주 만들어 먹었다. 같은 김밥 같지만 놀랍게도 모두 다른 날 찍은 사진이다.


넉넉지 못한 지갑 사정이 불편했지만 각오했던 것이라 괜찮았다. 오히려 없으면 없는 대로, 그에 맞게 내 생활도 바뀌었다. 저예산으로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기 위해 나는 김밥을 자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것처럼 주말에는 반찬을 만들어 놓고 1주일 동안 반찬과 밥으로 식사를 해결하기도 했다. 고양이들이 늘 먹던 비싼 생식 구독은 종료하고, 그 대신 고양이들을 위한 영양학을 공부해서 매일 집밥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책을 사는 대신 시립 도서관을 이용했고, 늦어서 택시를 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약속 전에는 늦지 않기 위해 시간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당연히 카페 커피는 끊었고, 모카 포트와 원두를 사서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퇴사 후 월급이 없는 삶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두려움은 사실 겪어보니 별거 아니었다. 당장 총포탄이 날아와 죽는 것도 아니고, 단지 조금 불편한 것뿐이었다. 오히려 작은 것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커졌다고 해야 할까? 귀중한 시간을 오롯이 내 의지대로 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소박하지만 음식을 먹고 음미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무엇보다도 매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루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래서 결론, 퇴사 후 현실은 생각보다 ‘좋아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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