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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집사 May 22. 2023

#3. 굿바이 삼성, Hello World.

마침내, 퇴사를 결심했다.


황금수갑을 풀까, 말까?


나는 대학 창업 실패 후 회사 생활을 8년 가까이했다. 그래서 월급을 받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퇴근 후 맥주 한 캔에 안주 파티의 소소한 호사를 누릴 수 있었고,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도 갈 수 있었다. 회사일이 아무리 괴로워도 매달 꼬박꼬박 먹고살 돈이 들어온다는 것은 정말로 큰 축복이었다.


그래서 망설였다. 모든 샐러리맨들이 가슴속엔 사직서를 품고 산다지만, 그것을 실제로 내미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월급 없는 삶을 산다는 건, 광고업계에서 말하는 ‘짜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하니까. 삼성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니까. 회사에 머무른다면 겪지 않을 수많은 실패들을 마주해야 하니까.


황금 수갑은 나에게 윤택하고 편안한 삶을 보장해 주는 대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지 못하게 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수갑을 풀 수 있었지만,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갑 풀기를 주저했다.




100%의 실패와 0.1%의 성공


노랑이의 사건 이후, 황금수갑을 찬 자아와 도전을 원하는 자아가 계속해서 충돌했다. 합의점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영상을 보게 됐다.


조성진의 쇼팽 연주는 언제 봐도 소름 돋는다.


순간 이상한 감정이 명치끝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음악은 참 아름다운데, 갑자기 내가 너무 미워지기 시작했다. 내 또래라면 한 번쯤은 소망했을 ‘인기 꿈’, 중학교 때까지 내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아끼고 아껴서 피아노 레슨까지 시켜주셨다. 그런데 열심히 노력해도 도무지 무대에 설 실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 전,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을 그 누구보다 멋지게 이뤄낸 다른 사람을 볼 때의 느낌이란 건 이런 거구나.


문득, 만약 내가 지금 도전하지 않고 황금 수갑의 삶에 안주한다면, 50세 혹은 60세가 되었을 때 누군가 내가 꿈꾸던 세계를 만드는 모습을 보게 되겠지? 만약 그렇다면... 아, 너무 싫다. 나는 자기혐오에 빠질게 분명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처럼. 남은 여생을 불행하게 살 것이 너무나 자명했다.


그래서 아주 근본적으로 ‘실패'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회사에서 다른 사람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아간다면 내 삶은 안정적일 것이고 크게 좌절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0이다. 0.1도 아니고 완벽한 0. 즉, 100%의 완벽한 실패다. 반대로 회사에서 나와서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전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좌절을 겪게 될 것이다. 엎어지고 구르고 고꾸라질 것이다. 하지만 도전했기 때문에 그 성공 가능성은? 0.1% 라도 있다.


실패를 재정의하는 순간, 무엇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졌다. 나는 내가 잃어버릴 것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성취해 낼 것, 얻어낼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넘어지더라도 앞으로 넘어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2021년 7월 15일을 나의 퇴사 D-Day로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노랑이와 노랑이 친구들을 위한 웹앱 개발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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