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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Apr 04. 2021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

-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2009년 퓰리처 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는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바닷가의 조그마한 마을을 배경으로 올리브 키터리지와 그의 남편 헨리 키터리지를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작의 형태로 전개된다.


  속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툰 수학교사 올리브는 약사인 남편과 크로스비에서 아들 크리스토퍼를 키우며 살아간다. 의사가 된 크리스토퍼는 자기주장이 강한 수잔과 결혼 후 부모가 공들여 꾸며준 신혼집을 떠나 도시로 가버린다. 올리브와 헨리는 아들이 떠난 것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다투기도 하지만 은퇴 후 둘만 남겨진 삶에 적응하고 살아간다. 아들은 이혼 소식을 알려오고, 헨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재혼한 아들이 도움을 요청해 난생 처음 뉴욕을 방문한 올리브는 사소한 일로 다시 모자 사이가 틀어져 크로스비로 돌아온다. 헨리 없이 외로운 노년의 생활을 이어가던 올리브는 잭 제니슨을 만나며 사랑의 감정을 회복하고 상실감도 극복한다.


  작품 속에는 올리브와 헨리 가족을 축으로 하여 크로스비의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연작의 형태로 보여주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도 올리브는 함께 한다. 올리브의 가족 외에도 《여행 바구니》의 미망인 말린, 《피아노 연주자》의 앤젤라 등 소설의 13개의 챕터에 등장하는 주민들은 각각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인생이라는 큰길을 걸어가는 동안 생겨난 삶의 아픔을 견디고,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간다. 


  소설에는 자극적인 요소도 없고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 이야기도 없지만 우리네 모습을 보는 것 같은 크로스비 사람들에게서 독자들은 눈을 뗄 수가 없다. 크고 작은 멍과 생채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작가가 섬세하게 그려낸 다양한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그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상처 없는 인생도 없고 사연 한 구절 없는 집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 고통의 웅덩이와 절망의 벽을 마주했더라도 나만 힘든 것은 아니라고, 조금만 견디면 햇살 내리쬐는 평탄한 길이 나온다고 우리를 다독여준다. 우리의 속마음을 콕 집어내 절묘하게 표현해내는 작가의 문장력은 조금씩 음미하며 야금야금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54.
경험이란 그런 거죠.
삶의 우선 순위가 한꺼번에 정리되고, 그 후론 제 가족에게 깊이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요. 가족과 친구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124.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227.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게다가 사람들이 연중 이맘때를 이렇게 열심히 기념하는 것은 또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사람들의 삶이 어떻든 , 그럼에도 삶이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축하할 일임을 알기에 그들은 이맘때를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92. 
 집으로 걸어가면서 헨리가 올리브의 손을 잡던 날들이 있었다. 이런 날들은 기억할 수 있었다. 중년의 그들, 전성기의 그들. 그들은 그 순간을 조용히 기뻐할 줄 알았을까? 필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정작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올리브는 지금은 그 추억을 건강하고 순수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     


314.
 올리브는 매일 차를 몰고 가서 그의 곁을 지킨다. 당신은 성녀야, 몰리 콜린스는 그렇게 말했다. 맙소사, 멍청한 여자 같으니. 그녀는 삶이 두려운 늙은 여자일 뿐이다. 요즘 올리브가 아는 거라곤 해가 떨어지면 잘 시간이라는 사실뿐이다.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그 말. 올릴브는 확신하지 못한다.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지, 올리브는 생각한다.     


403.
 아들 뒤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올리브는 때로 이 모든 일 속에서도 깊은 외로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던 걸 기억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몇 해 전, 충치를 때우면서 치과 의사가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돌리는데,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것이 마치 죽도록 깊은 친절인 것처럼 느껴져 올리브는 샘솟는 눈물을 숨죽이며 삼킨 적이 있었다.     


484.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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