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호스』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소설집으로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맨 앞에 실린 「음복」은 ‘2020 젊은 작가상’ 대상 수상작으로, 시댁 제사에 참여하면서 알게된 시조부모의 이야기와 자신의 어린 시절 외가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무례하게 쏘아붙이는 시고모의 악역에 당황하지만 ‘나’는 차츰 집안의 갈등 관계에 대해 무지한 자신의 남편이 진정한 악역임을 깨닫는다.
「가원」은 무능한 가장이었던 외할아버지를 대신해 딸과 손녀를 길러낸 외할머니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치매 증상을 보이는 외할머니가 사라져 찾아나선 ‘나’는 옛집 가원에서 할머니를 발견한다. 억척스럽게 살아온 할머니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무책임한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그런 할머리를 사랑하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한다.
「손」에서 남편의 해외 파견 근무로 시골에 있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나’는 시어머니와의 관계, 자신의 담임반 학생들과의 관계,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연자네를 향한 이장의 성추행과 시어머니의 연자네를 향한 질투, 이들의 손자들을 둘러싸고 재생산되는 권력 관계를 감지한다.
「서우」는 수록 작품 중 가장 공포감을 조장하는 스릴러물이다. 여자 넷의 실종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동네에 살아온 ‘나’는 직업상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많아 택시로 귀가를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여자 택시기사라 안심하며 탄 택시는 집과 다른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택시기사는 공포심을 조장하는 살인사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담임교사의 차별과 악몽들이 떠오른다.
미디어가 창조한 인물의 이면의 모습을 폭로하는 소설 「오물자의 출현」의 주인공 김미진은 연애 스캔들로 유명했으나 호감형 배우 이진오와 결혼하는데 그 결혼은 파경으로 끝난다. 김미진의 죽음 후 그녀의 결혼 생활을 비롯한 그녀의 인생에 대해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데 김미진의 일기가 발견된다.
표제작인 「화이트 호스」 는 창작의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소설가가 고택에 거주하며 겪는 환청을 비롯한 괴기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카밀라」의 등장인물 카밀라는 유진의 연인으로 1년 전 지우의 연인 미아와 함께 캐나다로 애정의 도피를 한다. 지우는 미아의 배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을 찾아다니며, 유진을 만나 미아 얘기를 하는 것으로 위안을 받는다. 유진은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는 연정을 지우를 향해 품게 된다.
여러 편의 작품 중 「음복」은 스릴러의 성격이 가장 덜한 작품이다. 작품 속의 시고모와 시어머니는 자식을 돌보고 제사를 지내는 봉건적인 여성의 성 역할을 감당해온 인물들이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봉건의 질서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인물 같지만 소설 속 여성들은 가족 내의 은밀한 비밀을 지켜내며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주체적인 인물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우는 과연 누구의 아들일까?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소설은 「손」이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서 자신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시골 마을은 낯선 이에게 그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마을로 새로 이주한, 그것도 인텔리 계층인 이방인은 마을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늘 그 언저리만 돌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마을의 불길함인 악귀 ‘손’이 바로 자신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은 자신을 시골의 폐쇄적인 집단에 섞여들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의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화자 자신이 그들에게서 동질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집단적 거부감에서 비롯하는 것일 수도 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화이트호스」는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화이트 호스’에 해당하는 영감이 와야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이트호스」는 가장 관심 있게 읽었지만, 장르적 특성상 응집력이 필요한데도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소재들이 너무 많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에 실린 다른 소설들이 스릴러의 공포와 긴장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에 비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작품이었다. 그러나 「화이트호스」는 두고두고 생각해 보고 작가의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노력을 해 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만의 화이트 호스는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이 책에 실린 여자들의 이야기가 마음 불편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지금까지 그래왔듯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것에 번번이 분개하며 변화와 개선을 위해 쉼 없이 부딪힐 수도 있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성을 구분지어 대상이나 대상이 처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편협하고 위험하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여성만의 것이라기보다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오래 행복하려면 모두가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 진정한 평화란 모두가 공평하게 평화로운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