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
내가 한 달 동안 살아갈 곳 주위에는 15분 정도는 걸어야 편의점이 딱 한 개 나오지만 걸어서가 아니라 발의 끝 방향만 틀어도 밭은 어디에나 있는 곳이었다.
자전거를 탈 수 있음에 다행이고, J가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노동력과 내 시간을 선물하고, 이곳은 나에게 워크스페이스와 스테이를 선물한다.
제공한다나 보답한다 라는 말보다는 선물한다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영화 <안경>에서 사쿠라는 빙수를 선물하고, 빙수를 먹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어떤 것'을 선물하는 것처럼.
"이거 얼마죠? 빙수."
"좀 전의 얼음 아저씨한테는 얼음을 받았습니다."
"에?"
"소녀에게는 종이접기."
"그렇군요... 저는 어떻게..."
산방산 아래로 구름이 깔려있어서 해가 지고 보니 산 능선인 줄 착각하게 만든 그 길을 걸어서 J와 대화를 나눈다.
“너도 알지? 내가 융통성이 조금 없는 사람이란 거. 나는 막 ‘아니 이 계약에 이 조항이 없으면 어떡하냐고?! 아니 이 중요한 걸 문서화해놓지 않으면 어떻게 일이 제대로 돌아갈 거라고 확신하냐고?!’ 이런 식 이잖아. ”
“맞아.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건 사실이기도 하지만 넌 너무 힘을 빡 주고 있는 거 같긴 해”
“근데 내가 여기서 내 시간과 노동력을 주고 숙박을 받는 게.. 나한테 너무 낯선 경험이야. 신기해. 신기한…어떤….. 느낌이야. 사대 보험과 연봉 협상과 내 시간이 얼마짜리인지 논하는 세상에서 이래도 되나 싶었던 게 되는 세상.. 그게 왜 안돼? 하고 오히려 너무 인간스럽고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느낌. ”
“그런 의미에서 너 정말 겁 없다.”
“맞아. 그것도 나 자신이 아이러니야. 융통성 제로에 (그 틀에 박힌 모범생 이미지 딱 그거) 백지에 자로 딱 딱 그어놓은 정답으로 최적화 된 길을 걸어야 할 거 같은 사람이 획 돌면 겁도 없고~ 막 지 좋은거만 하면서 재밌는거만 하면서 살려고 하고~ 충동적이고~ 근데 또 그게 일이 또 풀려. 하 참”
가끔 이런 경험과 시간과 대화, 나와 너, 나와 이 세상, 나와 처음 눈을 마주치고 통성명을 하고 카카오톡에 <+추가>가 처음으로 뜨는 사람들 사이를 가만히.. 느껴보면
모두가 ‘그저 사람’이고, 많은 상황이 그냥 ‘이게 되네?’ 다.
내일의 ‘이게 되네?’는 뭘까?
아마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J와 그냥 바다가 보이면 빠져버리는 것, 나른해지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별로 좋지 않아보이는 글을 그냥 쓰고 자러 간다.
노래
(제주도 정착을 도와주기 위해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서 같이 와준 J에게)
무릎 - 아이유
영화
안경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