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O-Peace에서 스태프로 마지막 글을 쓰게 될 날이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이곳 생활을 흠뻑 누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마음을 그렇게 먹었어도, 그로 인해했던 행동들과 시간들이 어찌 됐든 간에, 지금 느끼는 감정은 여전히 아쉽고 고맙고, 허전한 건 똑같네요.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때, 그게 육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면서 ‘행복한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녹기 전에>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만드신 분이 쓴 <좋은 기분>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했고, 결국 죽기 전에 몸의 기능이 원활하지 않을 때 의존하는 것은 ‘생각, ‘기억’ 일 텐데, 그러면 행복한 기억이 많은 사람이 곧 그런 사람이 아닐까 라는 말이 있는 거예요.
저는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았어서, '행복하고 다양한 기억을 가지려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기보다는 새로운 날들을 살아야겠다. 서울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주는 곳으로 가야겠다. 그리고 스태프이기 때문에 O-Peace 제주에 들리는 여러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을 거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의 얘기도 들으면서 새로운 시각도 가질 수 있겠다'라고 시작한 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어제부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제주에 오기 14일 전부터 거의 매일 일기를 썼었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다시 읽어봤어요.
8/19일엔 우울과 불안, 강박 등의 감정이 파도처럼 왔다가 떠나갔다가 하면서 ‘나는 쓸모가 없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있었고
8/21일엔 회의 시간에 가슴이 짓눌리고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심리 상담을 받았었네요.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시집을 읽다가 잠들었어요. '나에게 우울이 말하는 큰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되뇌면서요.
8/30일에 드디어 오피스 사계에 도착해서 JW님, D 매니저님과 눈을 마주치며 통성명을 하고,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그냥 바다가 보이면 발을 담가 버리고, 나른해지고,.. 회복의 힘을 기르자고 생각했어요.
첫째 주엔 목요 러닝 클럽에서 처음 달려보면서 내성적이고 소심한 저의 최대한의 용기를 끌어올려서 '같이 뭔가를 하자'는 제안에 절대 빼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체력이 점점 생겨남에 감사했습니다.
둘 째 주엔 같이 아침을 먹고 눈을 마주하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어요.
그리고 일 할 때는 또 집중해서 열심히.
같이 맛있는 점심을 먹고 좋은 카페에 갔고, JW님 옆에 앉아서 같이 얘기를 하고, 사진으로 담고
W님의 기타 연주를 들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소중한 것이 뭔지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셋째 주에는 ‘사계에서 제일 가깝고 예약 시스템이 구비된 정신건강의학과’ 같은 것을 더 이상 검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진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믿게 되었던 거창하지만 숨 막혔던 조언과 인생의 흐름, 그리고 뭔진 몰라도 그게 맞다고 하니 그에 쓸려가기를 허락한 하루. 그래서 나도 ‘대단한 무언가’에 도달하길 소망했던 시간들의 힘든 기억들에서 벗어났습니다.
마지막 주에는
지금까지 너무 좁은 세상과 획일화된 역량들만이 강조된 곳에서 ‘그곳에서의 멋진’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었고, 그리고 ‘그곳’ 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세상 전체에서 버림받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생각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렸어요.
JW 님, W 님, Y 님, H 님, J 님, K 님, D 님…… 여기서 만난 사람들의 다정함과 배려와 멋짐을 용기 삼아서요.
매일 '무엇인가를' + '한다'가 아닌, '내가' + '이런 걸 하며' + '존재한다'로 충분하다고, 그저 하루하루 잘, 재밌게, 열심히, 내 모습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라는 걸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주 O-Peace사계는 한 달 사이에 한 사람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는 곳이며,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음을..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는 감사를, 그리고 앞으로 O-Peace를 찾으실 분들께 기대를 드리고 싶어서 길게 적었습니다.
<제주도, 한 달 일기> 끝.
노래
- Y님, JW님이 생각나는 페퍼톤스_행운을 빌어요
- W님이 생각나는 죠지 (george) - Boat
- 오피스에 있는 것 같은 오피스 체크인 공식 음악 오피스제주 - 작업할 때 가볍게 듣는 BGM / 뉴워커스 플레이리스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