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은 괴로웠다. 한국시간으로 입국일 전날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기나긴 이동루트는 인간으로서의 내 하찮음을 상기시켜줬다. 바퀴와 시속 몇 백km의 엔진으로도 대륙 끝에서 끝으로 가는 데는 대충 24시간 이상이 걸렸다. 시원한 지중해, 기이한 화산지형 보면서 부풀었던 미지에 대한 호기심은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쪼그라들었다.
낭만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에선 잠도 안 왔고, 8시간30분으로 시작해 너무나도 느리게 떨어지는 모래시계를 분 단위로 쳐다보는 거밖엔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낭만은 적절한 낭비와 비효율에서 비롯한다고. 그래 가진 게 다리 뿐인 내가 멋지고 아름다운 걸 보려면 이동에 시간을 써야만 하지. 터키에 갈 때도 대략 15시간을 썼다. 가보고 싶었던 곳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을 위한 낭비 아니었던가.
독립 전 경기도 부모님 집에 살 때 매일 몇시간을 길에 버렸다. 8시간 근무를 위해 4시간을, 2시간의 데이트를 위해 2시간을 썼으니 비효율도 그런 비효율이 없다. 그런데 솔직히 그때의 내가 더 낭만있는 사람이었다. 마땅히 할 게 없으니 버스에 앉아서 애인을 생각하고, 가고 싶은 아프리카 대륙을 상상했다. 엄청 고차원적인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그때라면 지금보다 글을 더 부지런히 썼을 거란 확신이 든다.
야비하게도 주요 장소에 빠르게 닿을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하면서 나는 극도의 효율 추구 인간상이 됐다. 예전이면 '그 정도 쯤이야' 하던 걸 '더 빠르고 가까이는 안 되나' 한다. 생전 안 하던 영화 1.25배속 감기를 하고, 책도 시간 대비 영감이 적겠다 '예측'되는 건 안 읽게 됐다. 낭만도 잃고 생각하는 능력도 잃은 것 같다. 무쓸모의 쓸모를 떠들어대며 쓸데 없지만 즐거운 경험을 갈망하던 나도 잃어버린 것이다.
사실 산을 오르는 경험, 그 기억, 내 글들은 크게 쓸모 있지 않다. 다만 아무도 모르는 내 체력을 올려주고 함께 가는 친구와 땀을 공유한 추억을 줄 뿐이다. 꼬질꼬질해진 정상 위의 내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완등증명서 같은 것도 줄 수 있겠다. 오랜만에 긴 여행을 가기 전까지 끊임없이 내 쓸모와 효율을 증명할 방법을 찾아 골몰했다. 그게 시대정신이라고 하니까. 여행 마지막 날 만난 구석진 동네 카페 주인 할아버지는 무릎 꿇고 주문을 받았고, 찻잎과 커피원두를 모두 직접 볶아 하나하나 포장을 하고 이름을 써붙여 찻장에 전시를 했다. 뭐하러 저렇게까지 하지 쓸데 없이, 란 생각 대신 너무 행복해보이고 프로 같다 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비효율은 내가 지불한 커피값 이상의 가성비를 만든 셈이다.
산에 못 간 지 세 달째다. 발목 부상 때문에 못 갔다는 핑계가 무색해진다. 수녀가 나에게 "10년 전 등산 기억으로 글을 쓸테냐"고 했다. "아니거든!" 이라 했지만 산이 어땠는지 기억 안 나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기 위해 산에 가려하는 날 발견했다. 등산에 쓸모와 효용을 갖다 붙이니 몸이 괜히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이번달 내로 훌훌 털고 등산화에 김밥만 들고 산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