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베트콩이 이긴 거라니까." 지난 주말 대모산 오르는 길에 베트콩 얘기가 나온 건 너무 습해서다. 제아무리 의기양양해도 베트남의 습도 앞에 속수무책이었을 거라는 것. 속수무책이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300미터 높이 산 오르는데 헉헉 대고 땀 뻘뻘 흘리고 돌무더기에 주저 앉고 난리도 아니었다. 숨이 막혀서 "언제부터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습했냐고" 성질을 내니 같이 산행 간 짝꿍은 "원래 습했다"고 했다. 조금씩 더 습해지는 동안 내 몸이 적응하지 못한 걸까¿
나는 적응 만렙이었다. 초등학교 때 이사 때문에 전학을 두 번이나 해 학교만 세 곳을 다녔다. 새로운 질서에 재빨리 적응해 즐거운 학창생활했다. 안 그러면 친구가 안 생기니까. 최근 독립 전까지 통학·통근 거리가 늘 멀었는데 여기엔 몸이 적응해야 했다. 안 그러면 늘 지각에, 불성실의 아이콘이 됐을테니까. 그래서 수용력과 적응력이 내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인턴 자소서에 '뭐든지 빠르게 배우고 체화한다'고 썼다. 경기 남양주에서 서울 상암까지 다니기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에 "제 몸의 적응력을 믿는다"고 답했다.
근데 적응력이라는 것, 일부는 바뀌는 거였다. 척력으로. 조금 더 어릴 땐 모든 상황에 100% 흡수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그리 되길 바랐다. 근데 밀어내는 힘이 점점 세진다. 그 나라 문화에 흡수되려고 맛 없는 음식에 여러 번 도전하던 내가 이젠 아니다 싶으면 밀어낸다. 조용한 데서 시끄러운 데로 가면 뇌에 김이 서린다. 시끄러운 데서도 잘 들리고 잘 떠들던 내가 이젠 심력을 보호하려고 척력을 발동시키는 거다.
나이 먹어서 그렇다거나 촌스러워졌다곤 생각 안 한다. 오히려 뭔갈 당길지 밀어낼지 판단이 빨리 서는 건 발전이라고 본다. 일이든 뭐든 나와 맞지 않는 것에 억지로 골몰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대신 책임감이나 벌려놓은 일을 수습하기 위한 정신력이 더 중요해졌다. 가령 호기롭게 산과 물에 대해 글을 쓰자고 약속한 내 몸뚱이가 글을 올리는 날에 책상 앞에 앉는 걸 체화하지 못했더라도, 머리를 굴리고 타자를 치게 만들 정신력과 책임감이 중요한 것처럼.
베트콩이 전쟁에서 이긴 진짜 이유가 뭐든 간에 나는 '산녀'를 책임져야 한다. 지난 번에 훌훌 털고 산에 가겠다고 한 뒤에 정말 등산화에 물만 들고 대모산 오르다가 기절할 뻔한 것이다. 정신력으로 내려왔지만 아직 여름이 가려면 멀었다. 오르면서 괴롭지만 가면 또 좋은 게 산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여기서 만큼은 척력이 힘을 못 쓴다. 습도에 좀 더 자주 노출되면 좀 나아질까? 실내 희망 온도 26도, 뽀송청정 모드. 내가 아니라 습도가 날 밀어내는 거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