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저는 입사 3.5년 만에 그룹 HR실을 떠나 사업부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동할 사업부에 대해서는 (감히) 희망하는 조건을 말씀 드렸고, 가장 사업이 안되고 조직적 힘이 약한 곳의 Sales 조직으로 배치됐습니다.
처음 1~2주는 너무 홀가분한 느낌이었습니다. HR실에서 업무적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실제 사업부 라인 현장에서 매출을 올리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그 때는 참 좋았습니다. 사실 그 때는 몰랐죠. 매출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요. ^^
쇼핑몰 채널영업 직무로 배치된 저는, 여러 유통 채널과 지역별 거점영업소의 매출과 매니저 관리를 맡게 됩니다. 유통 채널의 MD들을 만나 소위 갑질도 당하게 되는데요.
매출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수량까지 지정해서 넣어달라는 요구들도 있었고, 인테리어 사양에 대해서도 합리적이지 못한 요청사항에도 꽤나 여러번 직면합니다. (요즘에는 이런 요구들이 거의 사라진 것 같아 다행입니다)
매장의 매니저분들도 정말 부모님처럼 좋은 분들도 계셨지만 '세상 살다 이런 분 처음 보겠다' 라는 느낌을 들게 한 분들도 여럿 뵙게 됩니다.
현장에 이동해보니 사업의 잘됨과 사람의 준비됨은 더욱 큰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제게 갑질을 하는 MD에게는 저도 일정부분 방어기제를 갖고 대응을 하게 되었고 매니저분들 중 정말 대화가 되지 않는 분들은 결국 헤어지는 결단을 하게 되곤 했습니다.
사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HR이 답답한 면이 있어서 돈을 버는 사업부 현장으로 나왔는데, 결국 스펙트럼만 더 다양해 졌을 뿐 사람에 대해 더욱 묵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죠.
물론 매출은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발생하기 때문에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이해와 관심 수준이 이때 크게 올라갔고, 상권이나 사업구조에 대한 깨달음과 배움도 큰 진전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상품과 서비스, 상권의 수준도 잘 준비된 인재 한 사람의 열심과 수준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을 지켜보게 되죠. 제 첫 직무가 HR이라 그럴 수 있겠으나 사업의 핵심은 결국 인재경영에 있다는 깨달음을 그 때 얻게 됩니다.
사업이 정말 안 되는 적자사업부였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개선과 공헌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 결론은 사람 이었고 특히 사업부 매출이 일어나는 고객 최접점에 매장의 매니저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매니저분들에 대한 인재경영을 프로젝트 제목으로 잡게 됩니다.
원리는 간단했죠. 현재 가장 잘 하는 매니저의 행동과 말, 이전 경력 등을 최대한 관찰하며 유형화 했고 몇 가지 심리/인성검사도 동원하며 우리 사업부만의 매니저 인재상을 프로파일링화 했습니다. 그에 맞게 면접질문이나 검증방접도 재세팅하게 되죠.
그렇게 잘할 수 있는 분들로 채우는 과정을 1년 정도 운영하다보니 매니저가 바뀐 곳부터 매출의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잘 파실 수 있는 상품들을 상품운영부서와 협의하여 집중적으로 넣어 드리기도 했고, 매장의 데드존을 해결하기 위해 하루종일 매니저님과 고민하며 DP와 조닝을 바꿔보기도 하였는데 무엇보다 본사의 상품운영/개발부서의 노고가 정말 컸습니다.
여러 액션이 있었지만 돌아볼 때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매니저님들이 부자가 되시면 좋겠다' 라는 제 마음 속 간절함 이었던 것 같습니다. 간절함이 진정성이 되고, 말투 하나와 전화 한 통에 진심을 전해 드리려 애쓰다 보니 그 마음이 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직원도 아닌 매니저분들과 본사가 하나가 되어 현장영업이 돌아가고, 상품부서도 현장영업을 통해 들은 고객의 소리와 요청을 반영하여 상품을 만들다 보니 정말 안 되던 사업부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잘할 수 있는 사람들로 채우고, 그들이 잘할 수 있도록 돕고,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 경영의 중요한 원리 아닐까 라는 배움이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도 배웠습니다. 그것은 사업의 구조였습니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수익구조였죠.
이동한 사업부의 수익구조는 애초부터 적자구조였습니다. 임차료가 비싼 곳에 직영점포가 들어가 있다 보니 고정비가 어마어마 했습니다. 당장에 매장을 철수할 수도 없기 때문에 회사는 계속 적자를 기록할 수 밖에 없고, 투자자인 회사도 발주액을 점차 줄이게 됩니다. 이는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 여력을 줄이게 되고 아무리 매장주가 뛰어나셔도 상품 없이는 지속적인 매출반전을 이루기는 어려운 구조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 팀 자체는 화이팅과 해보자는 의식이 넘쳤는데 사업의 숫자가 마이너스 라는 것은 꽤나 큰 임팩트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매출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브랜드 매니저가 교체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HR에서 처음으로 이동한 사업부에서의 배움을 돌아보면 책 한 권도 나올 수 있겠지만 요약을 해보면 결국 사람과 사업구조의 중요성 인 것 같습니다. 가장 핵심이 되는 부서의 사람부터 그 사업을 견인할 수 있는 분들이면 성공확률이 높아지는데, 좋은 분들을 모실 집을 애초에 잘 설계하고 건축하는 것도 정말 중요했습니다. 사람에만 갇혀 있던 제가 사업과 구조를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적자사업부에서 고군분투 하던 저는, 제가 맡은 파트에서의 매출반전을 토대로 흑자사업부의 영업부로 갑작스런 전환배치발령을 받게 됩니다. 기쁜 일일 수도 있으나, 저와 함께 영업부 핵심 3명이 모두 이동을 하게 된 사안이라 회사 차원에서는 적자사업부를 포기하겠다는 전략적 결단도 포함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