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사업부는 서럽습니다. 분기나 반기단위 사업부 성과리뷰를 할 때마다 늘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월급 나오는 것에 감사하라는 말도 들었고, 주말 근무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별 수 있나요. 실마리를 찾아서 하나라도 보여주는 것이 적자사업부의 할일 입니다. 저희는 겨울상품 하나를 잘 찾아서 제대로 팔아보기로 합니다. 사업구조가 문제지 직원들과 상품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내년도 겨울상품을 기획하고 영업판을 다시 짜던 시점에 갑작스럽게 총괄본부장님의 호출을 받게 됩니다.
현재 업무만족도는 몇 점인가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습니다.
적자사업부에서 어려움이 많았고, 지친 부분도 있었기에 100점 만점에 70점으로 말씀드렸고, 부족한 30점은 제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에도 원인이 있다는 피드백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질문의 의도는 100점이 아니라면 주력 흑자사업부로 이동하라는 발령명령을 이야기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적자사업부에서도 열심히 했으니 이제는 성과를 내보라는 취지셨기에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도 있었으나 적자사업부를 끝내 살리지 못한 서러움과 내년도 겨울 상품의 숫자를 보지 못하고 가야한다는 아쉬움 그리고 남는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이 참 컸습니다.
고민 끝에 흑자사업부로 이동하기로 합니다.
흑자인 곳에도 배울게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동기부여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적자사업부를 떠날 때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매장 매니저분들이었습니다. 나의 열심을 통해 회사도 돈을 벌고, 그 분들도 부자되게 해드리자. 라는 모토로 살아왔기에 갑작스러운 발령은 그만큼 심리적 타격이 있었습니다. 매니저분들도 "아쉽고 서운하다"는 연락을 참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흑자사업부로 가는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사업과 사람이 있었고, 어렵지만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함께 해보자는 의지가 큰 동료들도 있었죠.
적자사업부는 제가 이동해 온 뒤 1.5 년이 지나 결국 브랜드 클로징을 결정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저 뿐만 아니라 영업부 핵심멤버 3명이 함께 이동을 했던 것이 컸고, 사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기에 사람의 힘 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큰 사업이든 작은 사업이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성공의 첫 단추가 아닐까 라는 교훈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적자사업을 흑자로 뒤집진 못했지만 매장의 매니저, 본사의 직원들이하나가 됐을 때 반전의 실마리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죠.
더불어 시스템도 함께 굴러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자원의 IN과 OUT이 정확히 관리돼야 하고, 절대 망하지 않을 구조를 잡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이기는 판에서 이기는 싸움을 해야하는 것이 비즈니스 아닐까. 몸으로 그 잔인함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흑자사업부는 매출 5천억 영업이익 5백억이 넘는 곳이었습니다. 브랜드 파워 인덱스가 90점이 넘는 국민사업부였죠.
저는 백화점 바이어를 상대하는 직무에 배치됩니다.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직무에 HR & 적자사업부 출신이 떡하니 배치가 된 것이죠. 이 때부터 녹록치 않은 적응기간이 펼쳐집니다.
큰 사업부는 필연적으로 사일로(Silo) 현상에 맞닥뜨립니다. 잘하려고 부서를 나누고 조직화하여 KPI를 잡고 가지만 이것을 리더십이 효과적으로 조율하지 못하면 부분최적화 라는 함정에 빠집니다.
즉, A라는 부서의 KPI는 달성이 됐는데 고객은 아무런 가치도 얻지 못하고, 사업부의 실적은 악화되는 것이죠.
이것이 평가-보상-승진과 연결이 되면 기가 막히게 빠른 속도로 사업이 망가집니다.
당시 흑자사업부는 명확하게 사일로 현상이 퍼진 상태였습니다. 타 부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고, 고객이 원해도 타 부서의 KPI와 충돌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죠.
저도 문제에 직면합니다.
적자사업부에서의 성공방식이 잘 통하지 않는 한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잘 참아내는 시기여야 했는데 그 때의 저는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고 마음도 급한 젊은이였습니다.
내부 텃세도 있었습니다. 배치된 팀 리더의 직급과 제 직급이 같다보니 리더도 저를 경계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적자사업부의 따뜻함과 원팀 스피릿 보다는
다음 직급으로 승진하기 위한 치열한 자기증명과
견제가 있었는데 잘 되는 사업부의 전형적인 문제였을 뿐
팀원들 간의 Personal한 관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국 고객중심적으로 조직을 흔들어주는 리더십이 절실했습니다. 리더십은 조직문화의 선행조건이자 강화요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시 흑자사업부의 리더십은 애매한 상태였습니다.
상품출신의 매니저는 영업과 마케팅과의 코워크 체계에 대한 이해가 적었고, 사일로 현상 등 내부 조직의 문제점에 대한 예민함이 우수하진 않으셨습니다.
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시장과 경쟁자가 알아차리나 봅니다. 그 해 겨울 흑자사업부가 준비한 상품이 시장의 외면을 받습니다.
흑자여도 성장이 되지 않을 때의 압박감은 또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투자자의 피드백은 버거웠고, 망한 상품의 처리방안이 영업부의 숙제가 되어 돌아옵니다.
고객의 니즈와 반응은 정말 시시각각 변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도태될 수 있는 거죠.
그렇게 저도 모르게 지쳐갈 때쯤, HR부문에서 다시 콜이 옵니다. 선택지는 2가지. 그룹의 HR본부 (이전에 제가 있던 곳이죠)와 핵심계열사의 HR실이었죠.
당시가 입사한지 4~5년차의 시기였기 때문에 커리어의 중대한 결심이 필요했던 때였습니다.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으로 공헌할 것인가?"
"그 대상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때가 되었고,
저는 제 강점에 맞는 HR로 복귀를 결심합니다.
그렇게 사업부에서의 생활이 마무리 되죠.
그 때 사업부에 계속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의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고 그 경험이
HR을 하는 과정에서 큰 힘이 됩니다만, 당시 사업부는 제가
정말 미쳐 있던 업종은 아니었기에 아마 그 끝은 좋지 못했을 것도 같습니다.
이제 매출 2조 규모의 핵심계열사에서 HR 생활을 다시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