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4. 인사기획 직무로 이동

HR Head 성장기

by 이직한 인사선배

늘 잘할 수 없기에 항상 겸손하자.


채용교육팀장으로서 크고 작은 좌절을 맛본 뒤 얻은 한 줄 입니다. 인생도, 직장생활도 Life-cycle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싸이클이 내려갈 때의 어려움들을 현명하게 컨트롤하고, 어려움 속에서 배운 교훈들을 잘 정리하는 것만이 반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함께하는 사람도 소중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Capacity 영역에서 자유할 수 없기 때문에 동료의 마음을 얻고 움직이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13화부터 이어집니다.


풋내기가 채용교육팀장을 맡았으니 오죽했을까요.

그리고 풋내기에게 중책을 맡긴 회사였으니 오죽했을까요.


신입채용은 명맥이 중단됐고, 회사 매출도 어려우니 교육도 당연히 축소됐습니다. 팀장이었지만 제가 막을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신입사원을 뽑아서 키우는 전략을 가진 회사가 채용과 교육을 축소했으니 앞날은 심히 불안해 보였습니다. 이때 매출이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그 전에는 고속 성장만 하던 회사였기에 매출이 꺾일 때의 심리적 타격을 알지 못했죠. 하락하는 회사의 분위기는 급격히 악화되곤 합니다. 모두가 이직을 준비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농후했었습니다.


대표이사께서도 실언 아닌 실언을 거듭하셨습니다.

사업의 악화가 직원들의 탓인 것처럼 말씀하신 내용이 꽤나 치명적이었고, 그간 직원과 회사 간에 쌓아온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룹사 산하 전략기획실에서는 모든 사업부, 모든 스탭이 BPR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을 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고객을 놓고 원점에서 일하는 방식과 사람을 모두 재점검 하라는 것이죠. 사실상의 구조조정 전단계 작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희 인사본부도 다시 한번 개편이 이뤄집니다. 여러 혼란함 가운데 저는 채용교육팀장에서 인사기획 팀원으로 전환배치가 됩니다. 보직해임 또는 직위해제는 아니었고 당시 인사기획 팀장은 꽤 베테랑 이셨기에 자연스러운 팀원배치 수순이었습니다. 채용교육은 본사와 현장을 통합으로 채용하는 형태로 바뀌었고 팀장 자리에도 꽤나 베테랑 선배가 맡게 되셨습니다.


배치받은 인사기획은 이미 2명이 있었습니다.

넉넉한 숫자는 아니었지만, 사업부에 인사팀이 또 있었기 때문에 인사기획 기능을 수행하기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즉, 저는 잉여(surplus)가 될 위기였습니다.


채용만 좀 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 뿐, 인사기획이 운영하는 평가/승진/보상 등을 돌려본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그리고 제 강점이, 사람을 만나서 데려오고 교육하는 것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책상에서 기획하고 보고서를 생산해 내는 인사기획이라는 자리가 무척이나 낯설고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늘 위기일 때, 저는 다이어리를 꺼내서 적곤 합니다.


하루를 살아온 시간기록을 적고, 본 것과 깨달은 것을 상기하며, 내일 적용할 것들을 한자한자 적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여 어느 순간 이 힘듬을 이겨낼 것을 믿습니다. 인사기획 이라는 낯선 직무도 그렇게 적응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어찌 보면 그 때 저의 이 마음가짐은, 제가 뛰어나서 마음 먹었다기 보다는 정말 신의 도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사기획은 HR 이라는 직무군 중에서도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HR의 기저에 흐르는 '평가' 제도를 만들고, 평가에 따른 보상과 승진 철학과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과정은

꽤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치밀함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경영자와의 소통이 활발해지고,

본부장급 분들이 직접 찾아오고 부탁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소위 승진 부탁, 좋은 평가의 부탁이죠. 주로 Field를 뛰며 사내 직원들과 사외 지원자들을 마주해야 하는 채용/교육 파트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곤 합니다. 그리고 인사기획에서 기획하고 설계한 대로, 인사의 각 부분들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HR로 Career를 설계하는 분들이 한번쯤은 경험하고 싶어하는 직무이기도 합니다.


저는 첫 업무로 승진부터 돌려보게 됩니다.


사업부의 평가가 이뤄진 시점에서, 승진의 기준과 철학이 담긴 프로세스를 내려 주고

일정에 맞게 심사를 하여 Short List를 확정한 뒤, 대표이사의 컨펌을 받는 업무였습니다.


대리 이하는 어떤 기준으로 심사하게 할지, 과장 이상은 어떤 기준으로 누가 심사하게 할지 등을

정하고 내려주는 것들은 회사의 인재경영철학과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신중함을 요구했습니다.


단순히 프로세스를 '운영'만 해서는 회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 어려웠고, 직원들을 고객으로 보고

인터뷰를 통해 개선점을 찾는 것과 동시에 회사의 경영자들의 니즈와 철학을 담아 잘 짜인 보고서와 실행을

한번에 해야 하는 난이도 있는 업무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미사일이나 반도체 만드는 것이 아닌 이상,

누구나 피드백과 회고를 철저하게 하면 업무상의 어려움은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인사기획 업무였고, 기존에 팀원 2명이 있는 상황에서 합류한 저였지만 매일매일을 쌓아가듯 적어가며 공부하고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점점 속도가 붙고 하나씩 일을 완성해 가는 기쁨과 보람도 누적됐습니다.


승진 업무 뒤에는 보상과 평가 업무 등으로 점차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고, 기존의 채용/교육 지식과 mix되어

인사 전반의 지식이 하나로 꿰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마치 구슬꿰기 같은 느낌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승진/평가/보상 업무를 어느 정도 겪은 뒤에는, HR 전반에 대한 그룹사(지주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리포터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2016년 후반부터 2020년까지의 일이었으니 짧게 모든 경험을

압축해서 회고하기에는 벅참이 있네요.


인사기획은 HR Head로 가기 위한 필수관문 중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인사기획을 제대로 잘 수행해 내기 위해서는,


1) HR 업무 전반에 대한 통찰력, 2) 양질의 기획을 위한 고객조사 및 데이터 분석능력, 3) 대표이사/경영자/실무진 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이 필수적인 역량으로 사료됩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개인마다 업무적인 Sense 의 종류와 크기는 다르지만, 자신을 매일같이 피드백 하고 성장하려는 의지와

시도가 있다면 누구나 잘해낼 수 있는 직무라고도 봅니다.


수 년 간, 채용과 교육만 해오던 제가 어느 정도 인사기획 업무를 해낸 것을 보면 알 수 있겠죠.

다음 번 회에는 평가/승진/보상 이외에 조직문화와 노무파트까지도 고민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keyword
이전 13화13. 풋내기 채용교육팀장의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