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나기 전

미움, 분노, 원망, 불만

by youngstone
이 글은 기독교 청년을 위한 영적 성장 바이블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프롤로그


어머니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저는 가족 안에서 행복을 느꼈던 적이 없어요.

그동안은 현실을 부정하고 살아왔었다.

나는 괜찮은 거라고.. 나는 행복한 거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나만의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행복", "감사"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았고 그 삶은 그러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에는 너무 어두웠고 사치스러웠다.

그것을 깨닫기 까지, 그리고 이렇게 꺼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 상처를 계속 모르는 채 두면 더욱더 큰 암덩어리가 되고 결국에는 나를 옥죄는 병이 될 거라는 걸 말이다.

나는 내 상처를 치유 중에 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말하고 싶다.

그전에 이번 글에서는 지난날 나의 상처와 그 상처가 나를 어떻게 가두었는지 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가족은 4명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은 3명이다.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밖에서는 경찰차 소리가 났고

부모님은 집안에 없었다.

뭔가 평소와 많이 다른 아침이었다.

본능적으로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 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얼마 뒤에 어머니 친구분이 우리 집에 오시더니 나보고 어딜 급하게 가자고 하셨다.

"장례식장"이었다.


장례식... 장?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인가? 우리 가족 중에? 나는 아니라면 엄마, 아빠, 누나 중에 한 명이라는 건데, 그런 일이 나한테 일어났다는 것인가?


아주머니의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누군가가 죽었고, 그건 내 가족이라는 것을.


도착해보니 장례식장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고

누군가의 영정사진이 있었다.

"누나"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믿기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한순간이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고

왜 누나가 죽었지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누나는 자살을 했다.

한참 이쁠 나이고,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더 이뻐서 멋지게 인생을 살았을 사람인데

중학교 3학년이라는 나이에 목숨을 끊었다.

그것도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 내려서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단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편지 안에 어떤 내용들이 있었는지.

하지만 장례식이 끝난 뒤에 부모님 몰래 읽었을 때 그 안에 내용은 그 누구에 대한 원망과 미움과 분노도 없는 평화로운 느낌의 편지였다.

이 세상이 모든 걸 내려놨기 때문이었던 걸까, 그 편지는 너무나 슬프게도 평화로웠다.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한 동안 울었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누나하고 싸운 기억밖에 없다.

싸우면 아버지는 매일같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우리를 고아원에 보내고 다른 애들을 입양한다고 했었다.

그때는 그게 너무나 무서워서 사실인 줄 알았다. 그리고 두려웠다. 우리를 버리고 다른 애를 입양시킬까 봐.


원망스러웠다. 그 모든 것이.

왜 우리 가족은 누군가가 죽어야만 했고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파멸에 이르렀을까.

누나가 그렇게 마음이 아픈 상황인걸 왜 그 누구도 몰랐을 까.


정확히 누나는 자기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정황으로 보았을 때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아니 항상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것이 가장 민감할 나이인 중학교 3학년인 누나에게는 감당이 힘들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싸우셨다.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을 자식으로서 보기 어려웠다.

나에게 아버지는 남과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본 것 같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다.

당신은 항상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화투를 치거나 뭔가를 하고 늦게 들어왔던 것 같다.

주말에는 바닥에 누워서 자는 모습밖에 기억이 안 난다.


언젠가는 같이 밥을 먹다가 내 얼굴에 거대한 토마토를 던져서 터졌던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누나와 싸울 때면 우리를 때린 기억.

술에 취한 모습.


그 이외에는 나에게 아버지는 흔히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이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러하다.

나이가 들어서 어느 정도 변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바뀌지 않았다.


당신은 누나의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았다.

그것만이 기억난다.

그때부터 난 생각은, 당신은 진심으로 딸을 사랑하셨는지 였다.


그렇게 누나는 세상을 떠났다.

세상 허무하게 사라지고 남은 나와 부모님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 뒤로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는 바뀐 게 없었다.


여전히 자주 싸우고 사랑이 없고 평화가 없고 그저 살아갈 뿐이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원망과 분노만 자라 갔다.


그 누구도 왜 누나가 그렇게 되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고

뭘 잘못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자 이런 이야기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나도 그 옆에서 마치 아무 일 도 없는 것처럼 살아왔지만 사실상 내 마음은 썩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었다.

큰 사건이 있기 전에는 그래도 친구들과 있으면 밝은 성격이었지만 그런 일이 있은 뒤에부터는 삶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었다.


고등학교 내내 친구들도 잘 사귀지 않았고, 특정 소수와 어울리며 공부에만 전념했다.

어떻게 해서든 "대천"이라는 곳을 떠나고 싶었다.

좋은 대학교를 가서라도 "가족"과 멀리 떨어지고 싶었고 나의 우울한 삶이 그대로 담겨있는 그 동네를 떠나고 싶었다. 불행함이 없는 삶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갑자기 공부를 하려니 성적이 단번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3년 동안 나름 노력한 끝에

서울에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간들 사람이 바뀌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다들 좋은 옷을 입고, 해외 유학을 했으며,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 자신과 비교했을 때 나는 굉장히 초라했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았다.

학과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고 여기저기 놀러 다녀도 그 우울함은 어디를 가지 않았고 나의 발목을 항상 잡고 있었다.

그리고 외로웠다.

나는 나의 상처를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고, 나를 위로해줄 사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이 고팠다.

누군가 조금만 잘해주면 너무나 설레었다.

항상 사랑이 고팠기 때문에.


유년기 애정 결핍 때문인지 지금도 손톱이 자라는 뿌리 부분을 지퍼에 비비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삶을 요약해보면 미움, 분노, 원망, 불만이었다.


그러한 나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 사건으로 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고

내 삶의 목적이 생기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으며

더 이상 과거에 나를 가두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가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두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하도록 하겠다.


다음 이야기: "하나님을 만나다"




keyword
이전 01화기독교 청년을 위한 영적 성장 바이블을 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