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훈련병
이 글은 기독교 청년을 위한 영적 성장 바이블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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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시편 23:1-2
이번 이야기에서는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군대에서 어떻게 나를 만지시고 빚으셨는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에게 군대는 "점진적 성화"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편안한 길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다.
내가 원했던 카투사도 단번에 떨어뜨리고
열심히 준비했던 육군/공군 통역병도 3번의 고배를 마시게 하셨고
결국에는 일반 육군으로 보내셔서 강원도 홍천군 보병사단으로 보내셔서 호된 군대 생활을 보내게 하셨다.
11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5주간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던 날이었다.
모두가 배치받은 부대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차례차례 부대에서 보낸 군 버스 호송차량에 탑승했다.
내가 배치받은 부대의 이름은 112 기보대대였다.
그런데 왜인지 다른 훈련병이나 조교들이 하는 이야기로는 별로 시설이 좋지 않은 부대인 거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부대와 다르게 거칠어 보이는 육공트럭이 도착했고 112 기보대대에 배치된 인원들은 탑승하라는 것이었다.
뭔가 차량부터가 느낌이 싸했다.
한참을 가더니 산 밑에 부대로 진입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일반적인 부대 숙소가 아닌 연병장(군대 운동장) 옆에 훈련 중인 것 같은 임시 초소와 천막 텐트 앞에서 내려줬고 웬 컨테이너 박스로 신병들을 데려갔다.
컨테이너 안쪽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몇몇 행정병이 보였고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군인 한 명이 우리 신병들의 신상파악을 했다.
그 사람이 행정보급관(부사관 중에서는 한 개 중대를 이끌 정도의 높은 사람)이었다.
줄여서 행보관은 나와 몇 마디를 나누고는 오늘부터 행정병이라고 알려줬다.
그러더니 본부소대 소속이며 해당 천막 막사로 가서 짐을 풀라고 하는 것이었다.
막사에 가보니 신병에게는 짐을 풀을 수 있는 관물대(옷/물건을 보관하는 곳)가 없었기에 더블백(최초 군용품을 받을 때 메고 온 기다란 가방)에 전투복, 속옷, 등 잡다한 것들을 계속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본부소대에는 특이하게 행정 분대와 정비 분대가 함께 생활했고 그 두 분대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행정 분대는 행정일을 맡았고, 정비 분대는 장갑차를 조종하고 정비하는 인원들로 구성되어있었다.
가뜩이나 천막이며 컨테이너 박스며 숙소라고 하는 곳 바로 옆에는 간이 화장실인 도랑에서는 소변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최악이 상황인 와중에 사람들은 얼마나 독특하고 배려심도 없고 괴팍하며 막무가내인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신병이 왔다며 내 짐을 마치 자기 것인 것 마냥 들춰보고 옷과 신발을 자기 몸에 맞춰보더니 "에이 안 맞네" 이러면서 내동댕이 치던 나보다 나이가 어린놈도 있었고
운전병인 놈은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하루 종일 짜증을 내는가 하면 곧 전역을 앞둔 두 동갑내기 최고참들은 후임들을 어떻게 하면 잘 괴롭힐지를 매일 고민하고 실천하는 놈들이었다.
정말이지 그런 곳에서 2년을 있었다니 지금도 생각해보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일주일, 이주일 마다 면회를 온 여자 친구가 있어서였고, 여자 친구가 없을 때에는 주말에는 교회에 가고 평일에는 말씀을 보면서 버티 곤 했었다.
다행히도 주말에는 종교활동 시간이 보장되어있었고 해당 부대에서도 교회를 갈 수 있었다.
지옥 같은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교회를 갈 수 있다는 일에 항상 기뻤다.
교회에 가면 찬양도 하고, 맛난 간식도 받아먹고, 언제나 위로가 되는 목사님의 기도를 들을 수 있었다.
꼴 도보기 싫은 내무반 선임들은 당연히 교회에 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다.
참 좋은 것은 교회에서 만난 다른 동기나 선임들은 서로 챙겨주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어떤 행사를 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 돕고 정을 나누며 가끔은 공식적인 행사로 외부로 나가서 식사도 하고 들어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주말에 교회 가는 것은 거의 군대에서 나에겐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하나님은 특별한 기회들을 여러 번 주셨다.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행정병"으로서 군대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돌아보면 아주 큰 인생의 자산이 되었다. "인사 행정병"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 부대 하루 일과가 시작되면 그 부대에서 일어난 모든 일지를 기록하는 것은 기본이다.
어떤 장병과 부사관/장교가 출타했는지, 어떤 훈련을 했는지, 근무교대는 누가 했는지 등을 모두 기록해야 했고 모든 병사들의 근무 일정을 직접 작성해서 게시하며, 장병들의 휴가와 면회 일정들을 모두 관리했다. 그뿐 아니라 훈련 시 행정반에서의 중요 자료를 파기하거나 비밀 수송을 하는 역할도 겸해야 했고 행정보급관님과 중대장님이 시키는 잡다한 일들도 도맡아서 해야 했다.
정말이지 막내였을 때에는 행정반에서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내무반으로 돌아오면 선임들 신부름에 걸레 빨기는 물론 자기 관물대 정리, 전투화 손질, 군복/내복/속옷 관리 등 뭘 생각할 겨를이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새벽에는 불침번 근무를 서야 했고 장병들은 나를 볼 때마다 휴가 보내달라를 귀에 피가 날 때까지 이야기했다.
그뿐 아니라 대대 인사과에서 행정처리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필요양식을 100명이 넘는 중대원만큼 뽑아서 전달하고 재 취합해서 전달해야 했고, 보궐선거 철이 되면 부재자투표도 전 중대원 것을 다 처리하고, 정기적으로 장병들의 수리 소원을 취합하는 일들을 했어야 했다.
2년 동안 최저시급도 안 되는 급여로 거의 모든 인사행정일을 다 처리했다고 보면 된다.
덕분인지 직장상사와 일하는 법도 알게 되었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처리하는 법, 일을 더 잘하는 법을 2년 동안 군대에서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첫 사회 직장 취업 후 일처리 하는 것들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2년 동안 군대에서도 했는데 사회에 나와서 일하는 건 오히려 더 쉬웠다.
아마 내가 원하는 대로 카투사를 갔거나, 통역병을 했더라면 그런 업무 처리 능력은 쉽게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뿐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군대에서 영어를 쓸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한이 되었었고 군대에서도 영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항상 기도했다. 제가 군 제대하는 날까지 그간 공부했던 것들을 잃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항상 기도했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어느 날 부대의 대대장님 밑에서 몇 달 동안 영어 원서로 된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하시게 하셨다. 대대장님도 기독교인이셨고 책을 항상 많이 읽으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전쟁과 관련된 영어 원서를 읽고 싶은데 그것을 번역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외대에 재학 중이었고 영문학과 영어 통번역을 이중전공으로 수업을 들었다는 것 때문이었는지 나를 번역을 도와줄 적임자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당시 인사행정업무로 항상 지쳐있고 내무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는데 하나님은 일과 시간 간과 그 이후에도 대대장님 실 안에서 노트북으로 번역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600페이지가 넘는 전쟁과 관련된 원서였고, 인터넷도 되지 않는 환경이었지만 한컴 기본 사전을 이용해서 부지런히 번역을 했다.
인사행정업무를 하면서 기본적인 보고 양식과 방식은 탑재해두었던 터라 대대장님의 신임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중간 보고도 철저히 했었다.
매일 몇 장씩 목표로 번역하고 있으며 언제까지 완료될 것이다. 등의 식이었다.
처음에는 대대장님도 번역이 꽤 오래 걸리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다 번역이 된 문서를 직접 읽어 보고 나니 나에게 감탄하면서 아니 이렇게 많은 걸 어떻게 번역을 했느냐면서 고생했다고 하셨다.
덕분에 나는 지쳐있던 마음을 좀 다스리면서 번역을 하며 재충전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초록세상"이라고 하는 홍천시내에 위치한 차상위계층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수학, 영어, 과학 등을 가르치는 군인 선생님을 뽑는다고 했고 나에 대한 정보가 흘러갔는지
영어를 담당하는 선생님으로 선택되었다.
덕분에 그 먼 홍천에서도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바깥에 나가서 중학생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바깥공기를 맡을 수 있었다. 가끔은 수고했다는 의미로 저녁을 기관에서 사주시기도 해서 정말이지 살 것만 같았다.
정말로 감사한 것은 그 봉사활동 기록이 모두 전산 시스템에 남아서 나중에 취업 시 제출할 수 있는 서류로도 제출이 가능했었다.
하나님은 어려운 군생활을 통해서 나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드셨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며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게 하신 것처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고향에서 떠나 가나안에 이르게 하신 것처럼, 요셉을 이집트에 팔아넘기고 감옥에 갇히게 하신 것처럼 말이다.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기초훈련을 하셨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힘들어 지쳐할 때면 위로를 해주시고, 기적을 일으켜 주시고, 항상 나에게 최선의 것을 예비하시고 공급하여 주신 하나님이었다.
그렇게 나는 군대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기초훈련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매주마다 교회에 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는 습관을 지니고 언제나 최선의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마음에 품은 채로 말이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아마 저와 같이 뜻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계획한 대로 된 것이 없고, 목표한 대로 이룬 것이 없습니다.
맞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보기도 싫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저에게 최선의 방법인 것을 알고 계신 완전하신 분이시기에
그 방법을 택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당장은 힘들고 눈앞이 캄캄하고 도망치고 싶은 현실 속에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최선임을 믿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더 나은 것을 예비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다음 이야기: "타국에서 맺어진 인연"
처음부터 보기: 하나님을 만나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