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맺어진 인연

어느 곳에나 계신 하나님

by youngstone
이 글은 기독교 청년을 위한 영적 성장 바이블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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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마태복음 18:20


이번 이야기에서는 군대 전역 이후 짧은 베트남 어학연수 기간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담고 싶습니다.

그 척박한 타국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여러 각지에서 모인 마음이 따뜻한 형, 누나, 동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 영적 성장의 큰 밑거름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2012년 6월 어느덧 드디어 고대하던 전역 날이 다가왔다.

여자 친구가 만들어준 기둘력(기다리면서 정신을 부여잡을 때 보는 추억이 담긴 사진들로 가득한 달력)을 매일같이 보며 나갈 날만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 순간이 왔었다.


그 누구보다도 기다렸던 것은 여자 친구였다.

곰신(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 친구에 대한 통칭)에서 꽃신(남자 친구를 전역할 때까지 기다린 1%의 집념을 가진 여자 친구) 이 될 때까지 참 수십 번의 면회를 왔었다.

총 면회 횟수를 보니 한 달에 2~3번 꼴로 왔었더랬다.


나는 전역날 여자 친구에게 감사의 의미로 나름 행정병의 노하우로 표창장을 만들어서 코팅까지 해서 표창을 수여하고 100명이 넘는 중대원들에게 돌아가면서 한 명 한 명 롤링페이퍼를 받아서 축하의 메시지를 전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시켜도 못할 것 같은데 그때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미련 없이 군대를 전역하고 나는 곧바로 몇 주 뒤에 베트남 어학연수를 떠났다.

애초 당시 계획은 3개월만 가서 9월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돌아오는 것이 계획이었다.

나에게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통상 6개월을 다녀오는데 시간이 너무 아까워 그것을 반으로 줄이고 싶었다.

여자 친구는 내가 2년 만에 전역했는데 다시 베트남에 간다고 하니 굉장히 실망을 많이 했었다.

헤어지자는 얘기도 나왔었고 몇 번의 위기도 있었다.


여자 저차 해서 미안한 감정을 누르고 베트남 어학연수의 길로 떠났다.

행선지는 하노이였고, 이미 우리 학과 학생들 선배 후배들이 생활하는 근처로 숙소를 잡았다.

여행사를 통해서 공항에서 숙소까지 안내받았으며 비록 처음이지만 나름 순조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뭔가 이 먼 타국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숙소에 자리 잡고 며칠 뒤에 과 선후배들과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당구를 치고 있었을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법학과 학생 중에 베트남 어학을 같이 공부하는 동갑내기 친구가 갑자기 과 동기랑 오토바이를 타고 오더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일요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근처에 교회가 있으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혼자 하고 있던 찰나였는데 그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요일에 교회를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속으로 확신했다.

"하나님이 보내셨구나".

누가 보면 상당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당구를 치고 있는 와중에 낯선 친구가 와서 내일 교회를 가자고 하는 건 누가 봐도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같이 가자고 했고 심지어 일요일 몇 시에 예배를 가니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오토바이를 대여하지 않았는데, 그 친구는 오토바이를 이미 타고 다니고 있던 지라 나에게 먼저 데려다주겠다고 한 것이다.

낯선 타국에 도착하자마자 교회로 데려다주는 처음 보는 타 학과 학생이 있다는 건 하나님이 일하신 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된다.


아무튼 그렇게 처음 낯선 베트남 하노이에서 가게 된 교회가 "생명나무" 교회였다.


말 그대로 나에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나무와 같은 곳이었다.

지금도 김동기 목사님과 전순예 사모님이 계시는 그곳은 그 당시 굉장히 척박한 곳에 교회를 세우셨었다.

사실 누가 보기에는 교회라고 보기 어려운 곳이었다.


거대한 고층빌딩(경남빌딩) 바로 옆에 공터와 같은 곳에 태풍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컨테이너 박스와 같은 재질로 건축이 되어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처음 그곳에 갔더니 적절한 규모의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사업을 하거나 주재원으로 계신 남편을 따라와 살고 계신 집사님들이 부엌일을 도와주고 계셨고

식사시간이 끝나자 청년들끼리 모여서 교제의 시간을 갖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장기 유학을 학생, 비영리단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 선교를 하고 있는 분, 하노이에서 오랫동안 거주를 하고 있던 사람들, 다양한 이유와 목적으로 그곳에 모여있는 것이 신기했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한자리에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인상적인 것은 각자 재능에 맞게 교회 안에서 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예배를 인도하고, 누군가는 찬양을 인도하며, 누군가는 연주를 하고, 누군가는 모임을 인도하고, 누군가는 공지를 전달하고, 누군가는 나눔을 인도하고.


그래서인지 군대를 나온 이후 자발적으로 처음 찾아간 교회였지만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교제를 하고 각자의 삶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이보다도 값진 사람들이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에게 큰 영감을 주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하신 분은 바로 김동기 목사님이다.

그 척박한 공산주의 국가의 땅에서 하나님을 전하겠다고 교회를 세우시고 청년들을 돌보고 영적 지도자 역할을 하셨다.


어느 날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피와 땀으로 세우신 그 교회를 베트남 공산당에서 허물겠다고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공산당은 생명나무 교회를 허물어 버리고 말았다.

그와 중에도 아침저녁으로 울부짖으시며 기도하신 김동기 목사님이 존경 스러 웠다.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시는 분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청년들과 다 같이 목사님의 거처를 옮기는 일을 도와드리고 다 같이 식사를 하며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했던 순간들.


건물이 헐리 고난 뒤에도 목사님은 가까스로 옆에 있던 고층 빌딩(경남빌딩)을 임대하여 예배를 이어가셨다.


그러던 와중에 하나님이 목사님을 도우시는 걸 보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헐어버린 교회에서 날마다 울며 기도하시는 김동기 목사님을 보던 어떤 베트남 여인이 지나가다가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목사님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고 알고 보니 그분이 베트남의 높은 관료 부인이었고 심지어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 그분의 도움으로 목사님은 베트남 국가 공인 목사님이 되었고 공식적으로 포교활동을 할 수 있게 되신 것이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목사님은 공식적으로 생명나무 교회를 이끌고 계신다.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하나님은 최선의 것을 준비하시는 분이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난 뒤에도 베트남에 출장 갈 일이 있거나 여행을 가면 항상 생명나무 교회를 간다.

그곳은 내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고향이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당시 하노이 북부에 청년 연합 예배, 찬양 대회를 통해서 정말 다양한 배경들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처음 보지만 하나의 목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다 같이 기도하고 찬양하고 연습하면서 알아가는 진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각자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멋진 사람들이었다.

음악적으로 뛰어난 사람들, 학벌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뛰어난 사람들이고, 뭐하나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하나님을 위해서 노래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초심자인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만난 청년들 또한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끔 소통하면서 지낸다.

왠지 모르게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운 거 같은 느낌은 나뿐인 걸까.

각자 잘 살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너무나 감사하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동행하고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하나님의 능력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는 게 나는 애초에 3개월만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당시 "한국 베트남 문화 교류센터"에서는 정기적으로 전국 말하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었고 나 또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원하게 되었다.


북부, 남부, 중부 여러 지역에서 학생들이 출전하게 되는데 하노이 북부에서 가장 좋은 점수로 본선대회 진출에 합격하게 되었다. 사실, 무조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절실하게 기도했던 탓인지 기도를 들어주셨다.


덕분에 최종 본선대회가 펼쳐지는 남부지역의 호찌민에 가서 본선 진출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여행을 할 수 있었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교회형과 학과 후배 그리고 다른 학교에서 온 진출자들과도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비록 본선에서는 장려상을 받았지만 3개월 만에 이뤄낸 쾌거이기에 너무나 만족했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3개월만 있기로 했었는데 대회 일정으로 복귀가 늦춰지자 당시 여자 친구가 기다리다 지쳐 너무 화가 났는지 헤어지자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렇게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같이 축하해주지 못하고 자기가 기다린건만 생각하는 여자 친구가 괘씸했었고 헤어지자는 말에 나도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거기까진가 싶었다.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방황하긴 했었다. 그래도 결국 대회가 끝나자 제정신이 돌아왔고 여자 저차 다시 연락이 닿았는데 영영 헤어지고 싶지는 않은 눈치였다.


고생한 보람도 있고 더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여자 친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바로 귀국했다.

그렇게 베트남에서의 6년 같은 6개월이 끝났다.


지금 돌아보면 "생명나무 교회"를 가게 된 것과

그곳에서 수많은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고

영적 롤모델을 만나고

연합 예배를 하게 되고

말하기 대회를 나가게 되고

지금의 아내와의 관계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필자는 지금도 어디로 출장을 가나, 여행을 가나 그곳 근처의 교회를 필히 갑니다.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가면 또 어떤 은혜로 저를 가득 채워 주실지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저에게 또 다른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베트남에서의 좋은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느 곳에 가든지 두려워하지 마시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 성장기에서 가장 소중한 리더와 롤모델과 동역자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주시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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