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상처 입은 치유자

by youngstone
이 글은 기독교 청년을 위한 영적 성장 바이블 시리즈의 열한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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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음이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28:19-20


하나님이 최근에 주신 말씀이십니다.

사실 저 말씀은 아침마다 암송하던 60구절에 있던 1개의 말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저 말씀이 강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치 저와 가장 가까운 누군가가 진지하게 제 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직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임을.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저의 영혼을 괴롭혔던 깊은 상처의 이유를.


오늘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 제가 가진 상처와

그 상처로 저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저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깨달은 사명의 의미를 이야기를 함으로

"기독교 청년을 위한 영적 성장 바이블"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오늘도 살아계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서 말했던 것처럼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했던 상처가 있다.

"누나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것을 초래하게 만든 것들이다.

정확하게 한 가지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원망의 대상은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을 보며 자라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평소에는 그런 내색을 안 하고 지금 까지 살아왔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항상 원망의 마음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저 함께 살아왔지만 타인과 같은 분이었다.


그런 원망 속에 살던 중 최근에 아버지와 크게 다툰 일이 있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거리를 두고 있고 왕래를 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고 있다.


다투게 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별거 아니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자주 전화 통화라도 자주 하려고 여느 때처럼 영상통화를 드리곤 했었는데

어머니가 어깨 수술 문제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었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필하고 돌아와서 집에서 혼자 술을 드시고 계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길

"병원에 보니 남편이 돌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이제는 며느리하고 네 가 좀 돌봐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당연히 우리가 나서야 될 상황이 되면 도와 드릴 터인데

아버지는 현재 자식이 처한 상황은 고려하지도 않으신 채로 힘드니까 이제 너희가 해라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니 굉장히 서운했다.

당연히 아이들 양육에 참여해보신 적이 없으시니 우리 상황을 전혀 생각을 안 하셨다.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도 못 보내고 몇 년을 집에서 돌보고 하루하루가 전쟁인데

그런 건 생각도 안 하셨다.

"그럼 아이들을 누가 돌보나요?"라고 했더니 당신이 하신다고 하셨다.

사실 아버지지만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실망스러움은 또다시 그동안 평생을 않고 살아왔지만 억누르고 있던 원망의 뿌리를 건드렸다.


그러면서 말씀을 이어가시는 것이다.

새로 이사 간 지역 근처에 어르신들이 계시니 몇 째 할아버지네 당숙네 좀 방문 좀 해서 인사도 좀 드리고 왕래 좀 하고 살아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또 들으니 순간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챙기시면서 왜 가족은 안 챙기셨는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의 이성을 흐리게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야기해버리고 말았다.

영상 통화로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을 쏟아냈다.

좋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우선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당연히 아내를 돌보는 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르신들 집을 방문하는 게 저한테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너무 부담되는 일이에요. 강요하지 말아 주세요."


처음으로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당황하셨다.

그리고 서로 감정이 격해지고 말았다.


심지어 나도 자식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버지 될 자격이 없어요."

그동안 쌓여왔던 원망이 결국에는 한마디로 표현되고 만 것이다.

그리곤 아버지는 영상통화를 끊으셨다.


아버지와 싸운 자식으로서 기분은 당연히 최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진실된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온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자식이 죽었는데 그 일에 대해서 평생 한마디도 없이 살아올 수가 있는지.

도대체 아버지에게 가족이란 무엇이고, 자식은 무엇이며,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인지 평생을 궁금해하며 살아왔다.


아버지에겐 그저 "전유물", "소유물"이었을 것 같다.

그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집안의 전통과 제사와 모든 걸 이어나가야 하고

그저 가족이 아닌 친척과 어르신, 친구, 다른 사람들하고만 잘 지내야 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래도 하나님을 만나시고 나서는 많이 마음을 내려놓으셨고

그나마 나와 대화가 되었다.

어머니도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상태였다.

자신의 배로 낳았는데 얼마나 더 가슴이 미어졌을 까.

지금 나의 자녀들인 지우, 은우가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나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을 것이다.


항상 제일 불쌍한 사람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어머니가 어깨 수술로 그렇게 되셨을 때 아버지가 남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동안 힘들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니 너무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공무원 연금이 평생 동안 나오시면서 굳이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이 드는데 나였으면 직장을 그만두고 오로지 아내를 돌보는 일에만 전념했을 것이고 그동안 못해준 게 미안해서라도 아내가 잘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사랑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누나가 세상을 떠나기 전과 그대로인 모습이었다.


아침마다 말씀 묵상을 하면서 기도했다.

아버지가 변하게 해 달라고.

나의 마음속에 아버지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아버지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자식이라고.

왜 저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시는지 날마다 기도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경말씀으로 응답하셨다.

어느 날은 형제들에게 질투를 받아 이집트 상인에게 팔려간 요셉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요셉은 훗날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형제들을 사랑으로 용서하고 품어주었다.

요셉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총리로 세운 뒤 7년간 다가올 기근에 7년간의 풍년 동안 곳간을 채워 대비하게 하셨다.

그로 인해 요셉의 가족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 성경 이야기를 보고

"그래, 나도 하나님이 뭔가가 계획이 있을 거야"라고는 생각했지만

나에겐 아직 결과가 없기 때문에 그럼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아이들과 가정예배를 하던 중

성경동화를 읽다가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는데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뺏어간 뒤 한참 후에 형 에서를 만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을 풀어주시고 화해하게 하신 것을 보았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아버지와 화해하고 당신을 용서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아침마다 외우는 말씀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한복음 13:34-35


라는 말씀이 내 마음속의 더러운 죄를 끄집어내며 말했다.

"영석이 너, 서로 사랑하라고 했는데 너는 사랑하지 않고 있구나.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구나. 너는 나의 제자가 아니야."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요한일서 3:18

라는 말씀은 나의 죄를 꿰뚫으려 말했다.

"너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있고 진실된 행함이 없구나."


그리고 십계명 말씀이 가장 강력한 한방을 날렸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 출애굽기 20:12

"너는 전혀 부모를 공경하고 있지 않아."


내 안에서 "죄"와 "성령"이 매일 같이 전쟁을 했다.

"이게 다 네 아버지 때문이야"

"아냐,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셔서 그런 아버지를 주신 거야, 아버지는 최선을 다하셨어. 너에게 필요한걸 다 공급하셨고 그분이 할 수 있는 건 다 하셨어."

"네 아버지 때문에 누나가 자살한 거야."

"아냐, 누나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어. 너의 그 상처는 아프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고난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야. 누나의 죽음을 이용하신 건 아니지만, 그 아픔마저도 극복하게 하시고 원대한 계획을 이루 시계 하실 거야."

"너의 그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을 거야."

"아냐, 너에게 그러한 상처가 있음으로 해서 너는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을 거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주셨고, 너와 같은 처지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는 예수의 사랑을 알려주신 거야.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너와 같은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해봐. 너는 상처 입은 치유자야. "


헨리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에서 말했다.

"사역이 진실한 것으로 여겨지는 길은 자신의 마음으로 직접 경험한 고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통해 얻은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으로 이용되는 방법을 사역자가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사역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더 이상 내가 자라온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가족을 원망하지 않고, 과거로부터 자유해지고

내가 살아야 하는 "사명"을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신 그 "상처"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사명을 구체화한 것은

내가 태어난 그곳,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내현리 789번지 그 자리에 오래된 집을 허물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주신 근거는 타당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셨다면.

복음이 있었고 우리 가족이 하나님 안에 거했다면 쓰디쓴 "죄"의 대가가 아닌 성령의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가정이 있다면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서 누군가는 죽지 않아도 되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나와 같은 상처를 누군가에게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나 곳, 자라난 곳, 우리 가족이 시작된 그곳에서의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만들 것이고

그 마을에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하나님은 평소에 나에게 교회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마음을 항상 주셨다.


재정적으로 불투명하고 부패한 교회, 권력과 이익집단이 되어버린 교회, 사역과 섬김의 기쁨이 아닌 강요와 희생만 따르는 교회, 직무가 아닌 직급으로 계층으로 서열이 만들어진 교회,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교회, 고아와 가난한 사람과 과부를 돕기보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이 땅 가운데에서 세속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는 교회. 인간의 교만함으로 갈라진 여러 종파의 교회.


이 모든 죄의 결과를 무너뜨리고 가장 투명하고 연결되었으며 디지털화된 교회를 전 세계에 지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다. 나의 고향 나의 집에서 그 모든 걸 시작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불가능 해보일 수 있지만, 나에겐 하나님이 계시다.

모두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했을 때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신 것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받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정진하고 있다.


이제 아버지와의 싸움도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곧 아버지에게 손편지를 써서 선물과 함께 보내드리기로 했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그동안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마저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시는 건 하나님이었고

그러한 하나님이 나에게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다시 아버지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다고

말씀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나를 낳아주시고 부족함 없이 자라게 하심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릴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그 자체만으로 공경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각자의 상처와 사정이 있을 줄로 압니다.

그 상처는 항상 따라다니며 괴롭힙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이유가 궁금하실 겁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세상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아시고 오로지 하나님만이 해결방법을 아십니다.

매일같이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대화하십시오.

말씀하실 겁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실 계획을 요.

그리고 그 계획안에서 이루어 가실 "치유"를 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


다음 이야기: 에필로그

처음부터 보기: 하나님을 만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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