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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Jan 24. 2023

쿨하지 못해 미안해

미국에서 학부모 되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걸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예컨대, 아이가 아니었으면 일평생 관심도 없었을 공룡들의 이름, 뽀로로, 타요부터 헬로카봇, 포켓몬스터까지 온갖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섭렵하는 게 엄마의 삶이다. ‘싸움 놀이’는 대체 왜 재밌는 건가? 싸움이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거 역시 아들을 키우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튼 세계가 넓어지는 건 때로는 흥미롭고 즐겁지만, 지금처럼 낯선 나라에서 나 하나 적응하는 것도 버거운 시기에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게 사실이다.  




다섯 살 첫째는 미국에 온 지 보름 만에 공립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솔직히 한국과 미국의 차이인 건지, 사립과 공립의 차이인 건지, 아니면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나의 케이스가 이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연일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당부 사항


입학 서류를 제출하면서 받은 여러 안내서에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다.


예컨대 도시락과 관련해서는 ‘물은 아이가 스스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물통에 담아주세요’, 옷차림과 관련해서는 ‘벨트나 멜빵이 있는 옷은 피하세요. 단, 아이가 할 수 있다면 괜찮습니다’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이래저래 아이들을 5개 기관에 보내봤지만,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이었다.


부모는 으레 ‘아이가 못하면 선생님이 도와주겠지’ 기대하고, 교사들은 대체로 그 기대에 부응했다. 살짝 충격적이지만 신선했다.



담임 선생님의 손톱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젊은 흑인 여교사다. 등교 3일 차, Morning assembly(월요 조회) 참여를 위해 들어간 운동장에서 선생님의 아주 긴 손톱을 보게 됐다. 나의 꼰대력을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 긴 게 아닌 아주아주 긴 인조 손톱이었다.


한국에 있는 기관이었다면 미관상, 위생상, 혹은 안전상의 이슈로 컴플레인을 받지 않았을까?  



피드백의 부재


심하게 울거나 안 가겠다고 드러눕진 않지만, 매일 아침 “무섭다”라고 말하면서 꾸역꾸역 등교하는 첫째를 보면서 한동안 몹시 심란했다.


하교할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나긴 하지만, 스무 명의 아이들을 보호자에게 인도하느라 정신없는 선생님은 등교 첫날 “He had a wonderful day” 외에 아무런 피드백도 받을 수 없었다. 참다못한 내가 등교 5일 차 아이의 가방에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의 쪽지를 넣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받은 담임 선생님의 이메일에는 “He’s doing great and making friends”.  


아, 놀랍도록 간결하다. 그리고 건조하다.




아이를 통해 경험하고 있는 미국 공립학교,


아직까지는 ‘너무나 쿨하게 아이들을 방목한다’는 인상이 지배적이다. 허나, 일단 어떠한 판단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기도 하고, ‘세상에는 다 좋은 것도, 다 나쁜 것도 없더라’는 게 인생의 진리. 내일은 오늘보다 낫기를, 너나 내가 이렇게 한 뼘 더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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