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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노닐도다

by 김수정 Mar 27. 2025

 석창(石窓) 홍세섭(洪世燮, 1832~1884)은 당대 이름을 떨쳤던 화원화가들과 달리 전문적인 화가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인조 때 영의정을 지닌 이름 높은 집안의 후손이었으며, 고종 시대에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학문이 높은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군자와 산수화를 그린다는 문인화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실에 기반한 개성적인 기법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김정희를 리더로 하던 복고풍 시서화 그림이 유행할 때인데도 말입니다. 그런 그의 실험정신을 그린 대표작이 「유압도(遊鴨圖)」입니다.      


오리 두 마리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습니다. 사이 좋은 짝궁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유유히 강물 위를 노닙니다. 여백(餘白)의 미(美) 없이 꽉 찬 공간에 힘이 넘칩니다. 화면 가까이서 오리들과 강물을 내려다보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곡선의 물결과 점점이 눈에 띕니다. 이전의 한국화에서 보지 못한 시각적 효과입니다.      

홍세섭은 하늘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인 부감법(府瞰法)을 사용해 오리와 강물을 그렸습니다. 그것도 가까운 공중에서 대상을 내려다보다 보니 강하고 대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깃털 무늬를 그린 먹선이 번져 부드러운 털결을 드러냅니다. 강물은 물과 반발하는 먹의 기름기를 응용해 마블링(marbling)과 비슷한 효과를 내었습니다. 이 추상적인 패턴은 엷고 투명한 담묵과 강인한 농묵이 대조되어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입니다.       


「유압도(遊鴨圖)」는 본디 영모팔곡병풍(翎毛八曲屛風)의 열 폭 그림 중 하나로, 당시 화상들이 작품을 쪼개 팔았던 연유로 지금은 한 장의 그림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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