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눗방울 위에 올라선 것 같은 불안감
'월간 윤종신도 아니고
나...
월간 부작용이야?'
코로나 19 백신 1차를 맞고
코로나 19 백신 2차를 맞고
거의 매달
다른 종목으로 아팠다.
두드러기가 나거나 대상포진에 걸리거나
조금 나았다 싶으면 또 아팠다.
큰 병은 아니라지만 이렇게
거의 매달 골골거리는 건 나를 갉아먹어갔다.
그리고
결국
작년 연말에
코로나 19에 걸려버렸다.
한 4개월쯤
머리가 온통 뿌옇게 흐린 나날들을 보냈다.
비실비실해 보여도
어디 한 군데 크게 아픈 곳 없이 잘 살았었는데...
나를 진흙탕에 빠드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허우적거리던 늦은 밤,
이 그림을 만났다.
나 같은 데?'
살짝 깊은 팔자주름은 한 얼굴이
나 같기도 했지만,
농구공만 한 비눗방울을 올리고
좋다고 비눗방울을 날리는 모습이
딱
나 같았다.
매달 겪은 다른 종목의 부작용을 겪고
건강하다는 검사 결과지를 받고
이렇게 아팠으면 걸리지라도 않아야 덜 억울한데
정작 연말에 코로나 19에 걸려 한해를 엉망으로 시작하고
걸리고 나서는
수개월을 브레인 포그로 날리고선
그러고도
'한번 걸렸으니 괜찮을 거야'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나' 말이다.
***
'피식'하고 흰 웃음이 나다 말고
갑자기
그 그림이 궁금해졌다.
우연히 보고 지나친 그림이라
한참을 구글링 한 후에야 작가와 소장처를 찾을 수 있었다.
덴마크 국립 미술관 첫 화면에 걸린 그림이었다.
미술관의 그림 소개를 '자동번역'을 눌러 읽어 내려가다
흠칫흠칫 놀라며
가다듬어 메모했다.
이 작품은
17세기의 잘 알려진 두 가지 비유를 담고 있다.
공을 타고 파도 위를 가르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와
호모 블라(Homo Bulla/Bullaest-거품을 쫓는 인간) 개념이다.
이 개념은 종종
비눗방울을 부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바로크 시대에는 묘사되었다.
인간의 삶의 덧없음과 짧은 행복을 일깨우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모티브로 한다.
바로크의 기본 사상 중 하나는
'인생은 짧고 죽음은 가까우나 예술에서는 영원을 엿볼 수 있다'였다.
이를
모래시계, 해골, 나비, 비눗방울, 꺼진 양초
등을 모티브 삼아 표현했다.
'그래...
골골거리긴 했어도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큰 일은 아니었고
그저 비눗방울 터지는 정도였지...
긴 인생사에
이 정도면 다행이지
골골거림에 갉아먹힌 걸 다시금 메워야겠네'
똑같은 상황이었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묘한 해방감이 느낄 수 있었다.
답답하고 갑갑할 때면
잠깐씩 이 해방감이 그리워서 그림을 찾았다.
아트테크나 전시회 줄 서기를 하진 않았다.
목적의식이 없이
그림을 봐야
이런 해방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작품을 구글링 하거나
과거에 봤던 작품을 떠올리는 날이 잦아졌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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