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엔테 라 레이나 - 에스테야
Puente la Reina ▶ Estella
혼자 걷고 싶은 아침, 알베르게 문을 나서는 내 코 끝에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 냄새가 스쳤다. 비냄새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건 비가 오면 번거로움과 함께 많은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둔 우의를 꺼내서 꾸역꾸역 입어야 했고 시야 확보가 어려워 자꾸만 우비 끝자락을 손 끝으로 쓸어올려야 했고 무엇보다 젖은 땅을 자박자박 밟고난 후 한껏 축축하고 더러워진 신발을 몇 시간 후면 다시 신어야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알베르게를 나서는 시간부터는 조금씩 날이 개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알베르게를 벗어나 고요에 휩싸인 골목을 자박자박 지나자 아직 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웅장한 다리가 나타났다. 잠시 멈춰서서 그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하고 두드렸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않기에 역시나 잔뜩 움츠러든 어깨를 하고 돌아보는데 어제 교회 예배당에서 마주쳤던 호세 아저씨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냈다. 나처럼 언제나 혼자 그리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는 호세 아저씨.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지만 서로 대화가 되지 않으니 아저씨는 잠시 답답해 하시다가 내 손목을 잡고 어딘가로 나를 이끄셨다.
사진 전문가인 아저씨는 남과 다른 안목을 가지고 계신게 분명했다. 아저씨가 이끈 곳에서 찍은 사진은 방금까지 내 뷰파인더에 담긴 무엇과는 달랐다. 파노라마로 웅장한 다리를 한 번에 담아내고서 나는 아저씨에게 따봉을 외쳤다. 카메라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 있으신 아저씨는 캐논도 니콘도 능숙하게 다를 줄 아는 사람. 이미 산티아고를 한번 완주하고 이번이 두번째 순례길이라는 아저씨는 카미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 일을 좋아했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 길위에 선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면 아저씨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순수한 마음으로 본인이 하는 일을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내일 내가 마주할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지는 기분이 든다.
대화가 안되니 많은 것들을 자세히 나눌 수는 없지만 나는 아저씨가 내미는 가족 사진을 보며 그가 살고 있다는 '산세바스티안'이라는 도시를 상상했다.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가슴이 찌릿거리는 그 동네 어딘가에서 나른한 오후에 테이블 하나를 옆에 끼고 씨에스타가 다 끝날 때까지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고 만다. 태어나서 한번도 가보지도, 듣지도 못한 어떤 도시를 아름답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호세 아저씨가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마을을 벗어나고 바람소리만 가득한 평원이 나타났다. 보슬비가 오다말다를 반복해서 결국 우비를 꺼내 입었고 한참동안이나 우의의 긴 자락에 시야가 가려 땅만 보고 걸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언덕 위로는 거짓말처럼 선명한 무지개가 떠있었다. 마치 눈 앞에 보이는 저 마을에 가면 무지개를 눈 앞에서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간지러웠지만 기분 좋았다. 거짓말처럼 무지개가 시작되는 저 마을에 가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 게 될 것만 같아서 내딛는 발걸음에 힘이 더해졌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쌓아놓은 그 돌탑 귀퉁이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사뿐히 놓는다. 미신이겠지만 오랜동안 이런 샤머니즘을 믿어왔고 그 것이 설령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무언가를 탓하진 않았다. 단지 그 어떤 것을 간절히 바랄 때 내 심장은 언제나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뛰고 있었다는 사실이 좋아서 어른이 되어서도 내내 그런 작은 소원을 빌어왔던 것일뿐. 잠시 가쁜 숨을 가다듬는 시간, 어쩌면 그러기 위한 시간. 이 길위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누군가 내 뒤를 툭 치고 지났다. 한국에 있을 때 국토대장정을 했고 그 당시 입었던 형광 우비를 챙겨온 Y와 H. 중국에 있는 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 꼬마 숙녀들은 대학생활을 함께 하며 함께 카미노를 준비했다고 한다. 7-8kg이라는 적당한 무게의 배낭은 어쩌면 그녀들이 짊어질 수 있는 '현재의 삶'에 대한 무게가 아닐까. 매일 참새처럼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내는 두 친구에게도 나는 꽤 많은 것들을 배웠던 것 같다. 그녀들은 카미노에서 유일하게 분홍색 우비를 입은 나를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어 좋다며 티끌없이 웃었다. 눈에 띄는 것은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존재감이 있다는 말은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지개가 시작되는 마을로 들어섰지만 그 곳은 고요함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5월이라 군데군데 피어난 들꽃들이 대신 마음 한 켠을 채워 주었다. 매일 같은 듯 다른 길을 걸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네 시골과 그들의 시골은 그리 다르지 않다. 할머니들의 넉넉한 인심도, 들판을 내리쬐는 햇살의 온도도, 여기저기 피어난 이름모를 들꽃들도.
컨디션을 조절할 겸 잠시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데 미국에서 오신 줄리 할머니가 곁에 앉아도 괜찮겠냐고 물어오셨다. 줄리할머니는 혼자서 씩씩하게 걷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요 근래 부쩍 자주 보이던 나와 꼭 이야기를 해보고 싶으셨단다.'웰컴'이라는 대답을 했더니 곁에 앉아 나에게 그 누군가들처럼 '왜 길을 걷고 있는지'를 물어오셨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하며 벌써 몇 번을 들어왔던 질문이지만 사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때마다 조금은 부끄럽고 대게는 머쓱해지고 만다. 내가 마음 속에서 꺼내는 대답 속에서 나는 스스로가 이 길에 온 이유를 찾아가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매일 그 질문들에 답을 하면서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대답하곤 한다. 하지만 이 어렵고 부끄러운 시간이 지금까지도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굳건한 뼈대가 되어주었음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드디어 나온 작은 마을.
무엇이든 마실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었는데 그 목마름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이면 언제나 그 곳에는 거짓말처럼 마을이 등장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 작은 마을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발걸음을 쉬어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꽃을 좋아하는 스페인 사람들답게 창문에는 한가득 꽃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집을 볼 때면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길 가에 자리한 카페를 보고 들어갈까 말까를 몇 번이나 고민하던 찰나에 '반갑습니다 여기 맛있어요'라고 적힌 익숙한 한국어를 보고서는 아무런 고민없이 그 곳으로 들어섰다.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머물렀다간 흔적이 있는 호세라몬의 알베르게이자 카페. 잠시 이 곳에 머무르고 싶은 욕심이 앞섰지만 아직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간에 걸음을 멈추는 것은 큰 욕심인 것 같아 이 작은 카페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벽 군데군데 붙어있는 흔적들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인 것만 같아 나도 그 공간에 잠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다면 나도 아마 펜과 종이 하나를 꺼내 슥슥 그의 공간을 멋지게 그려냈을텐데 나는 그저 글을 쓰는 재주 뿐이라 그의 공간을 글로서 담아낼 수 밖에 없음이 아쉬운 순간.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을의 오솔길을 지나며 마주치는 풍경들이 따뜻했다.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지만 적당한 바람이 흐트러뜨리고 간 풀잎들을 지나 코 끝에 닿는 그 어떤 초록의 냄새가 무척이나 좋았다. 바람부는 날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건 많은 이유가 있지만 언제든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였다. 좋아하는 생각, 좋아하는 풍경, 좋아하는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뿌듯한 시간들이다.
그래서 서호주를 여행하면서도 가장 애정하는 풍경 중 하나가 바로 이 것이었던 것 같다. 바람의 힘으로 돌아가는, 동물을 키우는 들판에서는 꼭 필요한 이 것은 날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지하에 있는 물을 끌어올려 지상의 동물들에게 물을 자동으로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한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지나가는 바람에 맞서지 않으며 그들을 이용해 물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한 생각했다. 나를 스쳐 지나는 숱한 바람들이 결국 내 손 끝에서 글감이 되고 또 의미가 되어 책이 되어가는 모습들을 말이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을 건너면 다시 사람의 흔적을 찾기 힘든 오솔길이 등장한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양귀비는 초록과 대비가 될만큼, 거짓말처럼 빨갰다. 열정적인 스페인사람들의 모습을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몇 일 전, 길을 걸으며 만났던 윤언니가 알려준대로 아직 피어나지 않은 양귀비 꽃봉우리를 손으로 문지르자 사르르 꽃이 피어났다. 내 손길이 닿은 곳에서 꽃이 피어나다니. 삶이란 이렇게 작은 감동의 연속인 것만 같다.
싱그러움이 가득한 파란 밀밭. 어느새 흐린 하늘이 아니라 파랗게 개인 하늘이 눈 앞에 쏟아졌다. 하늘은 언제 변하는지 모를만큼 아주 빠르게 파래졌고 바람은 초록 내음을 풍기며 나를 스치고 지났다.
결국은 해피엔딩, 결국은 맑음. 어쩌면 인생의 크고 작은 공식들을 이 길을 걸으며 하나씩 만들어가고, 깨우쳐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흐린 날도, 비오는 날도 괜찮게 느껴지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맑음을 향해 가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나 말하는대로, 바라는대로 그리고 마음 먹는대로.
에스테야에 도착했다.
Stella 라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별들이 많이 보이는 동네일 것만 같다. 물론 도시의 빛 때문에 촘촘한 별들을 볼 수는 없겠지만 과거에 이 곳을 지난 많은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아마도 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들을 보고 이름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별들에 반한 이들이 하나 둘 모여 마을을 만들고 또 에스테야 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에스테야는 사람들이 꽤 모여사는 도시인지라 대형마트가 있는 동네였다. 오랜만에 다양한 식료품을 접할 수 있어서 알베르게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해먹기로 했다. 이젠 어느 알베르게를 묵던 한국인이 없는 곳은 찾아볼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 알베르게에서만도 벌써 5명의 한국인이 모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와 내 카미노에 큰 영향을 미친 H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두둥
5월 30일. 에스테야
떠나기 전 누군가가 말했다. 카미노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인생에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듯 순례길을 걷는동안에도 아름답게 반짝이는 날도, 흐린 날도 있을거라고. 그 길을 걸으면서 분명 마음이 맞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생길거라고 그리고 그 관계가 설령 좋지 않더라도 크고 작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거라고.
거짓말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더 자주 마주치게 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누구의 조언처럼 마음을 비우고 덤덤히 받아들이자 조금씩 그 모든 상황에서 자유로워지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눈에 비춰지는 내 모습을 걱정하며 어제를 살아왔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나는 어떻게 보이는지, 그들은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는지는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는 꼬리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람에게 내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만은 없고 그러길 바란다면 그것은 욕심이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잘보이려 애쓰기보다 진짜 '내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는 게 더 현명한 일임을 그리고 잊지 말아야하는 것은 언제나 '내 자신'이라는 것. 만약 내가 내일 세상에 없다고해도 과연 나는 다른 이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을 걱정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면 어떤 길을 가야할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해야하는 일 그리고 내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
이제 돌아가면 나는 꼭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해본다. 아니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되니까
# 오늘의 짧은 상념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는 밀들.
고집스럽게 꼿꼿하게 멈춰있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녀석들이 말해주었다. 때론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고 흔들려도 괜찮은 거라고, 흔들리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이 말해주었다. 그렇게 흔들리고 또 흔들리면서 뿌리는 점점 더 깊고 단단해질 거라고.
자연은 이렇게나 인간보다 앞서있다,
대단하다 정말
표지판은 종종 길을 알려주는 너무나 고마운 무엇이지만 때론 어떤 강박을 심어주는 도구가 된다. 그저 그 옛날 어떤 깨달음과 삶에 대한 성찰을 위해 이 길 위에 섰던, 장소가 허락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멈춰 서서 잠을 청하던 순례자들을 떠올리면 노란색 화살표도, 파란 표지판도 그리고 길 위를 함께 걷는 수많은 순례자들도 나에게는 고마움의 대상일텐데, 조금은 배가 부른 생각을 하고 만다. 사람이라는 동물의 욕심은 끝이없다는 말을 이 순례길 위에서도 깨닫고 있다는 사실이 우스워서 혼자 풉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잠시 아무도 없는 길을 걷다가 한참을 걸어서야 앞서 걷는 순례자를 보았다. 혼자서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때론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면 문득 불안해지곤 한다. 혹시 내가 걷는 길이 잘못된 길은 아닐까하고.
목적지만 있다면 결국에는 '그 곳'이 어디든 도착하게 될텐데 말이다.
그러다가도 앞서 걷는 누군가를 발견하면 그 '불안'이라는 녀석은 언제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 나를 발견할 때마다 가끔 나는 내가 겁쟁이가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