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토사 - 산토도밍고
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아침형 인간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더 많은 생각을 하고 활동을 하는 편인데 오후가 되면 길 위에서 자연스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침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곤 한다. 때론 안개가 자욱한 자갈길에서 촉촉이 젖은 자갈들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내딛고 때론 뻐꾸기가 청명하게 우는 숲길을 지나며 산림욕을 하고 때론 맛있는 빵 냄새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한참을 킁킁거리다 괜히 빵 냄새를 실컷 훔쳐 맡은 것이 미안해져서 바게트 하나를 사 먹기도 한다.
지난밤은 좋은 친구들과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였는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짐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있는 나에게 Benjamain이 다가와 함께 아침을 먹고 걷는 것을 제안했지만 혼자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그에게 다음 마을에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을 테니 시간이 되면 만나자는 의견을 건넸다. 거절을 잘하는 것도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오늘도 길은 끝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쏟아낸다. 길만 바라보고 걷고 있노라면 이 곳이 한국 땅인지, 호주 땅인지, 스페인 땅인지를 까맣게 잊고 만다. 봄을 맞이한 대지를 고요히 걷고 있노라면 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내가 모르는 세계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던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그저 하루하루 묵묵하게 걸어내고 있는 내 발에 감사하는 순간을 지내고 있다. 매일 한국에서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친구들을 떠올릴 때면 내가 많이 뒤처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때론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었는데 이젠 발가락에 자리 잡은 물집으로 그런 생각은 할 여유조차 사라졌다. 때론 아픔과 고통이 삶에 대한 감사의 시선을 가지게 한다. 내가 불평하던 삶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멀쩡히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두 발과 다리가 있음에 그리고 여전히 열심히 뛰고 있는 심장에 감사했다. 그리고 내가 마침내 이 길을 걷게 된 것도 말이다.
오늘도 표지판은 산티아고까지의 여정을 이끌었다. 이 곳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는 570km. 많은 길을 걸었지만 더 많은 길을 걸어내야 비로소 그곳에 닿게 될 것이다. 오늘은 키 작은 묘목들을 지나며 길을 걷고 있다. 날씨는 몇 번이고 흐렸다 개었다는 반복 했고 발 끝으로 전해지는 고통은 내딛을 때마다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견디고 참는 것은 내가 꽤 잘하는 편이라는 걸 이 길을 걸으며 알게 되었다. 발의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종종 신발을 벗고 퉁퉁 불어버린 발을 마른 길 위에 내놓고 꼼지락 거리며 숨을 돌렸고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다시 걸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쉼표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매일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걸을 땐 몰랐지만 사진을 정리하며 레이몬드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사진 곳곳에서 찾아뵐 수 있었다. 빨리 걷지 않지만 오래오래 걷던 레이몬드 할아버지와 나는 특별한 인연으로 만났다. 산후안 즈음에서부터 할아버지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전부터 나와 할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길 위에서 많은 인사를 나눠오고 있었다. "부엔 카미노"라고 인사를 건네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이따금 콧물을 훌쩍이며 인사를 건네셨는데 언제나 천천히 오래 그리고 묵묵하게 길을 걷고 계셨다. 벨기에에서 오신 할아버지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시고 나는 네덜란드어를 못했지만 손짓 발짓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우리가 때론 꽤나 신기했다. 하루는 곁에서 할아버지와 나의 대화를 지켜보던 H가 물었다.
"누나는 어떻게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거야?"
" 글쎄, 할아버지가 쓰시는 네덜란드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할아버지의 눈빛은 읽을 수 있으니까 대화가 되는 것이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국경과 나이를 초월한 친구가 하나 둘 생겨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다시 시작된 아빠 생각.
참 신기한 건 이 길을 걸으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엄마를 생각하는 시간보다 아빠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았고 그 생각의 깊이도 더 깊었다는 점이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와의 매듭은 어디서부터 인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내 하루의 일과였고 또 이 길을 걷는 이유라는 걸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그렇게나 무서워하고 이따금 싫어했던 아빠의 손을 이번에 돌아가면 꼭 한번 잡아드려야겠다고 조심스레 생각했다. 아픔을 직시하는 것 그리고 어려운 상황과 마주하는 일, 어쩌면 나는 그 시간들이 두려워 지금까지 먼 길을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 길이 끝나면 나는 아빠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시간은 아빠와 나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를 위해 꼭 필요한 성장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아빠' 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상처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살아가도록 했던 것이 첫 번 째였고, 그 상처로 인해 다시금 아빠에게 상처를 주었던 나의 태도가 두 번째 이유였다. 상처는 상처를 낳았다. 나의 상처는 다시 엄마의 상처가 되었고 그 상처는 다시 오롯이 동생에게 던져졌다. 아마 내가 이대로 상처를 안고 산다면 이 것은 내가 만들어갈 가족에게도 똑같이 반복되리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나는 언젠가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길을 걷고 나면 적어도 그럴만한 용기의 칼자루가 내 손에 쥐어지리라고 믿었다.
K오빠는 그런 이야길 했다.
"아버지가 사과를 한다거나 제시가 그 말을 함으로 인해 변화가 생길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요. 단지 그 말을 함으로써 마음을 연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변화는 천천히 오겠죠. 제시가 마음을 열었다는 그 사실로 인해서요. 힘을 내요. 그리고 자신을 믿어봐요."
그리고 나는 오빠에게 다시 그런 말을 했다.
"제가 감히 부모님을 용서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가진 상처와 잘못들을 내려놓는다고 생각하는 게 더 맞는 일인 것 같아요"
우리는 저마다의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길을 걸으며 상처가 없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는 걸, 각자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상처들을 치유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타인을 더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다는 사실을 걸음을 옮기며 스스로 터득해가고 있었다.
생각은 끝이 없고 그러므로 답 또한 얻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내 마음에 '이렇다'라고 떠오른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났다. 다른 이의 말도 '조언'일뿐이지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한 선택과 결정은 결국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 길의 선택에 따른 책임까지도 온전히 나의 몫이기에 우리는 선택 앞에서 한 없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마음이 그 답을 알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점심도 건너뛰고 브런치로 빵 하나와 카페 콘레체 한 잔으로 배를 채웠다. 한참을 걷다 브라질과 캐나다에서 온 Bob아저씨 일행을 만났다. 길을 걷는 저마다의 이유와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가 아저씨는 헤어지기 전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만약 너 같은 딸이 있었다면 아까워서 해외로 보내지도 못했을 거야.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 아이는 내게 평생 공주 같은 존재일 테니 말이다. 나는 너의 아버지를 너무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부모의 마음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건 부모가 되지 않고서는 그 마음의 무게를 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인 걸까, 가슴과 머리 사이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목이 메었지만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해'라는 단어를 입 안 가득 담고 있지만 과연 한국에 돌아가서의 나는 아빠를 마주할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아빠에게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 장면을 생각하면 나는 커다란 고구마를 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것처럼 목이 잔뜩 메고 만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이라고 자문했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빠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일'이라고 대답할 텐데.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용기를 내어 당신 앞에 앉는 일'
오늘은 길을 걸으며 머리를 크게 내리쳤다. 내가 지난 5년 동안 꿈꿔오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
컴퓨터 바탕 화면에 넣어두고 오랫동안 상상했던 그 밀밭이, 눈을 감으면 푸른 냄새를 쏟아내던 그 밀밭이, 푸르름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생생하게 두 눈 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여기다"
기뻐서 눈물이 왈칵했다가 웃음이 났다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졌다 이내 심호흡을 하자 잔잔한 파동을 시작했다. 점차 그 풍경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5년 동안 꿈꾸던 그 푸른 냄새가 가득한 밀 밭 사이를 가로지르는 순례자가 되어서 말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W와 S 그리고 H가 걸어가는 뒷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반가운 마음을 담아 이름을 부르니 깜짝 놀라 뒤돌아본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선 나는 슬이에게 잃어버린 것이 없냐고 물었다. 그리고선 가방 한 구석에 넣어둔 S의 모자를 주섬주섬 꺼내 건네자 S는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왠지 모자가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그 예감이 적중했다며 말이다.
진짜 내 물건은 잃어버려도 내 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말을 믿는다. 나에게도 그런 물건이 있었으니까.
이 운명은 물건뿐만 아니라 지금은 아쉬움을 안고 떠나야 하지만 언젠가 다시 가게 될 것만 같은 장소에도 있고, 헤어졌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도 있다. 나에게는 몇 번을 떠나왔다가 돌아간 서호주가 그랬고 지난 길의 인연들이 그러했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다 우연한 기회로 이 길을 걷게 된 W는 우리 중 가장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채로 순례길에 온 친구였다. 그는 이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른 채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책가방과 스니커즈를 신고 침낭 하나 없이 용감하게 길을 걷고 있었다. 우비 하나 없이 피레네를 오르다 엄마의 캐논 카메라를 아찔하게 망가뜨리고선 그 무거운 카메라까지 배낭에 넣어 걷고 있다며 짓무른 발가락을 원망하며 웃었다.
또 다른 친구 S 또한 W만큼이나 많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우비 없이 패셔너블한 벙거지 모자와 스니커즈를 신고 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둘은 유난히 발병에 취약했지만 아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되려 함께 걷는 우리에게 즐거운 에너지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H는 나의 여정에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친구인데 실제 나이는 당시 23살이었지만 실제 모습은 31살처럼 보인다며 S가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그 후로는 반말을 하던 중이었다. 사실 나도 처음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줄 알았으니 이제와서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사실 내가 길 위에서 들었던 H 아버님의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안고 길을 걷는 나와는 달리 그는 깨어있는 아버지 덕분에 이 길 위에 섰으니 말이다. H의 아버님은 정말 깨어있는 사고를 하시는 분이셨는데 산티아고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2000년 대 초반, 홀로 이 길을 걸으시고선 훈이에게 왕복 비행기 티켓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밤 10시쯤 퇴근하신다는 H의 아버님은 알고 보니 회사에 홀로 남아 공부를 하고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오신다고 했다.
"H야, 너는 정말 멋진 아버지가 계시는구나. 나중에 너도 아버지처럼 정말 멋진 부모가 될 것 같아. 이 길을 걸으면서 아버지가 이 곳에 너를 보내주신 이유를 잘 생각하며 걸어봐. 그리고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그 고민의 답은 어쩌면 네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 속에 있을지도 몰라"
인생의 고민이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여비를 준비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비로소 이 길 위에서 나와 함께 같은 시간을 공유한 H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닫혀있던 나의 선입견을 모두 깨트려준 선배이기도 했다. 길을 걷다 보면 역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 종교를 만나게 되는데 특히 유럽의 역사는 예수님과 관련된 부분이 많아서 H는 종종 나에게 크고 작은 역사들을 설명해 주었다. 종교데 관련된 이야기는 민감한 부분이기에 특히나 조심을 했지만 그 아이의 믿음과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워 한국에 돌아가면 꼭 성경을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다.
들판을 걷다 보면 이따금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귀를 대고 있다 들여다보면 보호색을 띠고 있는데 마 뱀 한 마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산토도밍고. 한 마을에 두 개의 알베르게가 있는 곳은 언제나 고민의 여지를 남긴다. 오늘 도착했던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던 중 호스피탈레로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나무라기 시작했다. 기부제로 운영하는 곳에서 최소 5유로는 내야 하는데 한국인들은 왜 정당한 권리는 다 누리면서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몰려다니면서 시끄럽게 구느냐고 한국인들은 원래 그러냐는 핀잔에 기분이 잔뜩 구겨지고 말았다. 앞서 이 길을 걸었던 누군가가 잘못을 했든 아니든 간에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나라 전체의 이미지가 그리고 후에 길을 걷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겐 의도치 않은 피해를 준 사람은 아니었나를 끊임없이 되묻고 물었다.
"그런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같은 한국인으로 그 부분은 사과하고 싶은 부분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길을 걸으며 모든 기부제 숙소에서 최소 5유로 혹은 그 이상의 금액을 지불했고 무례하게 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냈어요. 잘못을 전가하는 것은 이 길을 걷는 오늘의 순례자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 아닌가요"
말을 건네자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체크인을 도왔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샤워를 하며 털어내려고 가방을 연 순간, 세면용품과 화장품이 담긴 파우치를 벤토사에 빠트리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것은 정녕 나의 물건이 아니었던 것이구나. 급한 대로 가방 한편에 남아있는 비누로 세신을 하고 마당에 빨래를 널고 있는데 절뚝거리는 내 모습 뒤로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곳에는 Jose아저씨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절뚝거리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아저씨는 멈춰 서시더니 몇 번이고 발을 보여달라고 하셨다. 노랗게 곪아 냄새나는 발을 보여주기 실은 내 고집이 지고 만 순간 아저씨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시고선 어디론가 가서 구급약품함을 빌려오셨다. 내 발을 소중히 들어 바늘과 실로 응급처치를 하시고선 약과 밴드까지 붙여주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의 깊은 상처까지도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가장 낮은 모습까지도 따스하게 어루만져주는 그의 모습은 아빠와도 닮아있었다. 쓱 눈물을 훔친 순간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서 걸어오던 한 여성은 본인은 미국에서 온 간호사라고 소개를 하고선 "혹시 네가 제시니? 아까 Bob 아저씨에게서 너의 이야기를 들었어. 흥미롭던데?"라고 이야기를 하고선 나에게 알베르게 안에 도네이션 진료를 받길 권했다. 언니의 손을 잡고 간 그곳에는 체크인을 도와준 그 아저씨가 떡하니 지키고 계셨는데 물집을 치료하시면서도 끊임없이 한국인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으셨다. 특히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너흰 거지는 아니니까 돈은 정당히 내라"라고 배려 없이 말을 내뱉는 태도가 꽤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다. 곁에서 "누나 저 아저씨가 뭐라고 한 거야?"라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까지 전하고 싶지 않아 그냥 저녁이나 배부르게 먹자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뒤늦게 합류한 K오빠와 함께 우리는 각자의 요리 솜씨를 발휘해보기로 했다. 합석을 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둔 라면 수프가 하나 준비되었고 뚝딱거리며 무언가를 요리하는 우리를 어르신들이 궁금해하며 기웃기웃 훔쳐보기 시작하셨다. 주린 배가 채워지자 서러웠던 하루가 어떻게든 정리가 되었다. '밥은 위로'라는 누군가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오후 9시가 넘어서야 기웃기웃 해가 지기 시작하는 이 곳에서는 시간이 무척이나 느리게 흐른다. 침대 위에 엎드려 하루를 돌아보니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들었던 날은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생각들을 꺼내고 꺼내어 일기장에 꾹꾹 눌러 담고 나면 비로소 침낭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잠자리에 들게 되는데 이따금씩은 발가락의 고통에 잠조차 오지 않는 순간이 온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6월 3일. 산토도밍고
산다는 것 그리고 존재한다는 것
오늘은 아빠와의 매듭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를 때렸던 아빠의 손, 그 손과 직접 마주하고 아빠에게 나의 상처를 보이는 일. 그리고 그렇게 했던 아빠를 받아들이는 일. 누군가를 내가 감히 용서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오늘은 그렇게 울고 웃다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 대해 잠시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꽤 많은 길을 걸어서 발이 꽤 아프긴 했지만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그토록 꿈꿔왔던 그 한 장면을 내 눈으로 담을 수 있었으니까. 이 한 장면을 위해 나는 지난 5년을 기다려온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만약 혼자였다면 온전히 걸어내지 못했을 길,
그래도 함께라서 내가 이렇게나 잘 걸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나에게 힘을 주는 모든 인연들에 감사하며,
그리고 또 나를 이 길까지 인도해준 나의 모든 인연들에 감사하며 오늘도 그들을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