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지나 우리에 닿기까지

로그로뇨 - 벤토사

by Jessie

로그로뇨 알베르게의 아침은 유난히 산뜻했다.


깨끗하고 친절한 호스피탈레로들 덕분에 기분 좋은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커피와 빵 뿐인 아침이지만 길을 걷다보면 어딘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 빵 한 입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곳은 그 사소하지 않은 아침을 행복으로 바꿔 부를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었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아침을 제공하는 알베르게가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스스로가 적당하다고 생각되는만큼의 동전을 기부하면 되는 구조이다. 나는 동전 지갑을 달그락 거리며 2유로의 동전을 꺼냈다.


발의 물집은 더 커져서 노랗게 변해버렸고 걸을 때마다 고통이 새끼 발가락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잠시 쉬어가길 간절히 청하는 바였다. 도시에 남아 휴식을 취하며 한참동안 사람 구경을 하던 중 익숙한 얼굴의 순례자들과 함께 로그로뇨대학에 들러 스탬프를 받기로 했다.


모든 사람들이 떠난 아침 8시 20분,

어제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사진작가분이 알베르게 앞으로 나를 데리러왔고 지난 밤 Y언니와 J가 조언해주었던 것처럼 나는 분명하고 시원하게 말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걸어가려구요! 신경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거절하고 나니 이렇게나 마음이 편한 걸 나는 왜 먼 길을 돌아온걸까.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다보니 이젠 익숙한 얼굴들이 꽤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홀로 걷고 있지만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부엔 카미노' 혹은 '올라'라고 인사를 건내다보니 내 얼굴을 보면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꽤 생겨났다. 'Benjamin'이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벨기에에서 왔는데 와인셀러이자 뮤지션이란다. 영어까지 매우 훌륭하게 해내는 이 친구를 보고선 마음이 훈훈해졌다.


친구들을 기다리며 알베르게 앞에서 요가 동작들을 하며 몸을 풀고 있는데 외국인 친구들이 나에게 직접 스트레칭을 배우겠다며 일렬로 줄지어 동작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알베르게 앞은 요가 강습소가 되었다. 무엇이든 보고 익히면 언젠가는 쓸 일이 있다는 걸 이 순간 깨달았다. 친구들은 어려운 동작들 앞에서 난색을 표하더니 이내 더 익살스러운 동작들을 하며 다른 순례자들의 아침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오늘은 Y언니와 J 그리고 K오빠가 함께 길을 걷는다. 순례길은 혼자 시작했지만 끝은 누군가와 함께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들을 이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다.


일요일이라 대학교가 문을 열지 않은 관계로 먼 길을 걸어왔지만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Y언니, J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인연이라면 또 다시 길에서 만날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K오빠와 발걸음이 맞아 함께 걷게 되었는데 몇 일 전 푸엔타 라 레이나에서 9명의 한국인들과 이야기하던 중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와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건내왔다.


아빠에 대한 미움 어쩌면 애증.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받은 상처를 제대로 치유해주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유아기 때의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고. K오빠는 본인의 아픈 상처를 고통스럽지만 조심스레 꺼내며 나에게도 그 상처들을 아프지만 꺼내놓는 법을 알려주었다. 오랫동안 사려깊게 말이다.












누군가가 내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위로가 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오늘은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흘러나오는 바람에 걷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 좋은 동행인 K오빠와 오랫동안 걸으며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오빠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시의 이야기를 그 날 들으면서 마음 속에 남아있는 화가 많은 것 같아 보였어요. 그래서 그 것들을 꺼내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겼네요. 아버지 입장에서 제시는 아직도 도움이 필요하고 독립하지 않은 '딸'인데 얼마나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제가 아버지였어도 충분히 화가 나고 속상했을 것 같아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닿지도 않는 외국에 딸을 보낸다는 것이 정말이지 부모입장에서는 엄청난 일이니까요.


아버지와 제시의 곡선은 이제 교차점을 향해 가고 있어요.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시고 집에서 결정권도 있으신'강자'의 입장이셨고 이분씨는 아직 직장을 가지지 않은 '약자'의 입장이예요.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더 '약자'임이 확실해지는데 이분씨는 어렸을 때의 그 상처, 트라우마로 아버지를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에 '약자'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약자'라면 '약자'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해요.

그래야 아버지와 덜 부딪히겠죠.. 시간이 지나 이분씨가 교차점에서 '강자'의 위치로 향했을때는 더 이상 '약자'의 위치가 아닐테니 지금 충분히 그 역할에 충실하는 건 어때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나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에서 내 문제를 바라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한다.

아마 오늘이 그런 때가 아니었을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은 K오빠와의 이야기를 듣고 더 복잡해지고 만다. 힘들었던 마음에 부담이 더해지며 나는 어린애처럼 울고 말았다. 그런 나에게 K오빠는 실컷 울어도 괜찮다며 혼자 걸어갈 시간을 주셨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마을이 나타났다.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마을은 스페인의 특징인가보다. 오늘 벤치를 지나며 낯익은 모자 하나를 발견했는데 에스테야에서 만났었던 S의 모자가 아닌가 싶어 가방 한 구석에 모자를 챙겨 넣었다. 정말 신기한 건 나의 물건이라 생각되는 것은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어떤 누구의 손을 통해서든 말이다.


강렬한 햇살만큼 빨래에게 너그러운 것은 없다. 마을을 지나다보면 창문 가득 걸려있는 옷가지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길을 걷는다. 소박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걸음을 옮긴다. 매일 다른 듯 비슷한 패턴의 걸음을 걷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마음의 깊이는 점점 더 깊어진다. 내 보통의 일상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살아가는 힘이 되지 않을까, 그 작은 희망이 이 길이 끝난 후 내 삶을 흥미롭게 만들고 있었다.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가다보니 마을의 심장부를 지나 다시 한적한 길 모퉁이로 이끌려 가고 있다. 마을의 지름길을 질러 오면 금방인 길을 마을 구석구석을 지나서야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는데 더 많은 걸음을 걸어야 했지만 덕분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며 작은 위안을 얻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인생 또한 그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면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위로가 되기 시작한다. 먼 길을 돌아가는 과정이 비록 어렵고 또 힘들긴 하지만 그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마주하고 그들에게서 위로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지름길보다는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싶었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보면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든다. 걸음을 시작한지 일주일 째지만 여전히 나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눈 앞에 우뚝 서있는 노란색 화살표를 마주 하고서야 내가 마주 걷고 있는 이 길이 결코 꿈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노란색은 그리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데 나에게는 그리움과 함께 반가움의 의미로 다가오는 녀석이다.


하늘과 길이 만나는 끝자락에서 길은 소멸된다. 이렇게 쭉 따라가다보면 언젠가 구름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린아이스러운 발상을 할 수 있는 건 이 길 위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은 K오빠와 떨어지고선 오랫동안 거짓말같은 풍경 속에서 몇 시간째 홀로 길을 걷는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길처럼 말이다. 햇빛이 내리쬐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그 사이사이로 발자국 소리가 조금의 공백을 메웠다.

이따금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닌지 두려워질때마다 노란색 화살표는 내 걸음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려주곤 했다. 자주 혼자이고 싶었지만 막상 혼자가 되었을 때는 내가 가고 있는 걸음에 대한 불확실함이 나를 흔들었고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지곤 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했다. 함께 일땐 혼자이고 싶고 혼자일 땐 함께이고 싶은 이상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화살표는 때론 나를 웃게 만들었다.

지칠대로 지쳐 아무 생각없이 도로에 주저 앉았을 때 비로소 그들을 발견하고 나는 웃고 말았다. 배고픔도 잊게 만드는 장면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좋은 휴식은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준다. 한동안 쉬었던 덕분에 내 몸은 다시 탄력을 받았다. 한참을 걷다보니 앞서 걷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밀짚모자를 보고서 H임을 알아 차렸다. 아직 낫지 않은 무릎으로 걷고 있어서 절뚝거리는 모습이 멀리서도 H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곁을 지나던 다른 순례자가 절뚝거리는 H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자니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속도를 붙여 걸은 덕분에 H와 보폭을 맞춰 걸을 수 있었다. 발 상태가 좋지 않아 버스를 타고 간다는 계획을 들었던 H는 반짝 등장한 나의 모습에 놀라고 만다.


"어? 누나 오늘 버스타고 걷는다면서요?"


"응 .. 근데 생각할게 있어서 그냥 걷기로 했어! 걸어서 완주해보려구"


"오.. 대박! 누나 같이 가요"



그렇게 우린 동행이 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무리했던 탓에 발이 아파오고 심지어 하혈이 시작되어 나는 다음 마을 '벤토사'에 결국 쉬어가기로 했다. 10km 뒤에 있는 마을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상태를 깨닫고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은 오래 걷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룰이다. 급격히 컨디션이 떨어진 나를 보며 걱정하던 H는 나를 알베르게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걸음을 걷는단다. 함께 길을 걸은 이들 중에서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사람은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매일 모습이 다른 신과 길을 함께 걷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H와 인사를 나누고 알베르게 들어와 체크인을 마쳤다. 샤워를 하고 마을을 둘러볼 요량으로 산책을 하던 중 아침에 함께 스트레칭을 했던 벤자민과 이탈리아에서 온 일리야 그리고 캐나다에서 온 스테파니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하고선 침대로 돌아와 잠시 고단했던 오늘 하루를 돌이켜본다. 외로움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이 곳에서 처음으로 어렴풋이 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는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캘리포니아의 네 남자와 함께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가 한 실수로 모두가 함께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테이블 중앙에 앉은 나에게 티슈와 포크 등을 챙겨주던 내 곁의 친구에게 건낸 "You are so gentle"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 원인이었다. 아이들이 당황하며 웃기 시작하더니 거친 남자들 사이에서는 gentle이라는 표현이 스킨십을 부드럽게 해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나. 이럴 때는 "You are so cool"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조언까지 아낌없이 해주는 그들. 한국 사람들은 항상 함께 모여 다녀서 나도 다른 한국인들과 일행인 줄 알았다는 그들에게 나는 혼자 걸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생각들을 나눠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건냈다. 그게 내가 카미노를 걷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이다. 앞으로도 종종 함께 길을 걷고 또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해주는 유쾌한 친구들과 함께 하는 따뜻한 밤이 깊어갔다.













6월 2일. 벤토사


혼자이고 싶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지나고 '함께'인 시간이 찾아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밝고 건강한 나의 자아를 지켜본다.


혼자인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일수록 '함께'인 시간도 잘 보낼 수 있다.


그런 시간을 지나는 지금을 잘 겪어내고 누군가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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