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도밍고 - 벨로라도
지난 밤, 산토도밍고에서는 기분 좋은 잠을 잤다. 시설도 깨끗했고 물집도 왠지 금방 나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침 일찍 2층 침대에서 조심스레 내려와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부스럭거림에 잠에서 깬 아이들이 함께 길을 가자며 붙잡았다. 나는 웃으며 "얼른 따라와"라고 말하고선 다시 배낭을 둘러맸다. 아침은 커피 한잔과 사과 한 알 그리고 비스켓 몇 조각. 과일이 있는 아침은 꽤나 든든한 편이다.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자 나와 비슷한 보폭으로 걷는지 몇 번이고 알베르게와 길 위에서 마주쳤던 유코와 미사코와 아침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아침 일찍 사과 한 알을 베어 먹으며 길을 나서는 나를 부지런히 따라온 훈이는 오늘도 여느 때처럼 절뚝이며 걷기 시작했다. 가끔 우리는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많은 것들을 행하곤 한다. 때론 괜한 고집 때문에 혹은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나보다도 더 우직한 이 아이는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는 내 이야기는 아랑곳않고 조금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했다. 혼자 다니던 것에 익숙해져버린 내 걸음은 보폭이 빨라 발걸음을 맞추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고치지 못한지라 내 걸음과 맞춰 가느라 꽤 힘들었을텐데 아무런 내색없이 걷는 훈이를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오늘은 나조차도 발이 아픈 관계로 그 누구보다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의 보폭은 조금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큰 도로를 몇 개나 지났다. 꼬불꼬불한 오솔길이나 산 혹은 마을들만 지나다가 아스팔트가 포장되어 있는 도로를 지나다보니 좌우를 살피고 길을 건너는 상황이 꽤나 어색하게 느껴지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이 곳에는 건널목 경고 안내가 순례자들을 향하고 있다. 이른 아침, 여전히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가 입 안 가득 담기자 새삼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유코와 미사코가 먼저 새벽 길을 걸어내고 있었다.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의 어떤 미묘한 감정은 매일 얼굴을 마주치면서도 가까워질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이었지만 어떤 '하루'를 계기로 우리는 마음의 벽을 그 누구보다 허문 사이가 되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 였는지 여행이 끝나갈 무렵, 그녀가 만났던 또 다른 일본인 친구의 카메라 속에서 내 뒷모습을 몇 장 찾아내고선 길이 끝난 후에 메일을 보내왔다. 지구 어딘가에 나와 마음을 나눈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충분히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한참 길을 걸어가다 문득 돌아본 밀밭 그리고 초록 사이사이 자라난 붉은 양귀비들이 지천을 이루는 광경. 그 모습에 감동을 받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카메라 앵글을 잡고 있는 익숙한 누군가의 옆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호세 아저씨가 아침 풍경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고 계셨다. 이젠 길을 걸으며 부쩍 아는 얼굴이 많아졌다. 모두가 비슷한 거리만큼 순례길을 걷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건내니 아저씨는 나에게 방금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다. 그제서야 먼 산 꼭대기에 여전히 쌓여있는 눈이 보였다. 눈이 쌓여있는 저 곳이 바로 우리가 몇 일 전 건너왔던 피레네라고 설명해주시는 아저씨. 그러고보니 내가 산을 넘은 날만 하늘이 화창했고 다음 날도 다시 눈이 왔다고 한다. 5월 말에 내리는 눈이라니. 감탄하고 있는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시는 아저씨의 손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내 곁을 항상 과묵하게 지켜주는 그림자는 오늘따라 더욱 길어 보인다. 힘들었던 어제가 지나고 오늘은 친구와 함께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인 시간' 덕분에 오늘의 '함께인 시간'이 더욱 따스하게 느껴진 것은 아니었을까. 나를 애써 포장하지 않았다. 그 길 위에서는 나를 포장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우린 꽤 오래 보폭을 맞춰 걸었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나처럼 꺼내놓기 시작했다. '걷는다'는 행위를 좋아하다 못해 탐닉하게 된 것은 이 길을 걷게 된 후의 깊은 깨달음 때문이었다. '걷는다'는 행위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함께 걷는다'는 것은 그 것을 공유하는 일이라는 걸 나는 깊게 믿는다. 후에 나와 함께 할 누군가도 나처럼, 걷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힘들 때면 "같이 걸으러갈래?"라는 말을 해주는 누군가를 기다리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걸어서야 그래논(Granon)이라는 마을이 등장했다. 커다란 성당이 인상적인 마을이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걸어온 사람들이 성당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구경할 요량으로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성당 한 켠의 조용한 벤치에 앉아 잔뜩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가방에 넣어둔 빵 한 조각을 꺼냈다. 가끔은 쉬지 않고 밀려오는 배고픔이 과거의 생과 이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될 때가 있는데 아마 오늘이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아사로 지난 생의 죽음을 맞지 않았다면 이렇게 쉬지 않고 배가 고플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꽤나 진지하게 해야만 했다.
간식을 먹기에 앞서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에게 바람을 쐬어주는 일. 어제 만난 의사선생님의 빠른 시술에 나의 물집들은 모두 찢겨졌고 만신창이 상태가 되었다. 특히나 새끼 발가락은 물집 속에 또 다른 물집이 생겨버린 상태여서 매우 고통스러웠기에 자주 멈춰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노랗게 곪다못해 짓눌린 상처들을 보면서 묵묵히 참고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다. 걸음은 이렇게 이따금씩 느려졌다.
아침의 그림자는 오늘따라 길다. 산티아고 라는 글자가 보일 때마다, 멀리서부터 노란색의 무언가가 반짝일 때마다 나는 보물이라도 찾은 유치원생의 마음이 된다. 매일 길을 걷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풍경들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매일 다른 생각을 담고 그것들을 곱씹었다. 하지만 매일 잊지 않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빠'에 대한 나의 마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아빠와 나 사이의 풀리지 않는 그 어떤 매듭을 몇 번이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나는 내 상처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고 결국은 그 것을 해결하겠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아빠를 닮아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먼 수만리 길의 아빠가 되어 나에게 저마다의 마음과 온기를 나에게 전해주는 것만 같았다.
밀밭은 유난히 푸르다.
햇살이 좋은 스페인이라더니 어마어마한 햇살에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하염없이 길을 걷다보면 이 길에 과연 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인생의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처럼.
그 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그 끝은 좀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하루하루 묵묵하게 걷다보면 결국에는 도착하게 될 거라는 '믿음' 하나 만으로 이 길을 걷고 있다. 아마 나는 이 길 위에서 보이지 않는 인생의 길도 결국은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정말 길의 끝이 지평선 위에서 작은 꼭지점으로 소멸되는 서호주의 황량한 사막을 여행하며 g.o.d의 '길'이라는 노래를 자주 듣곤 했었다. 그 노래의 끝엔 언제나 '과연 이 길조차도 처음부터 길이라고 불리웠던 것일까'에 대한 생각에 닿곤했다. 생각과다증을 앓고 있는 나인지라 생각은 끝도 없이 줄기를 뻗어나갔고 결국은 이 곳도 처음에 길을 개척한 사람에 의해 다른 사람이 걷고 또 걸으며 어느 순간 '길'이라고 불리웠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내가 행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처음에 내가 서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은 언제나 외롭다.
오늘은 이 아이와 함께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던 아빠의 다른 이름은 '장남', '회사원' 그리고 ... 아빠를 대신하는 수많은 이름들이 얼마나 아빠를 힘들게 만들었던 걸까? 문득 아빠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얼마나 버거울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빠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빠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고, 장한 아들이고, 의리있는 친구이고 멋진 아버지'라고.. 사실 나는 아빠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삶과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 그 첫번째이고, 바르게 사는 것이 두번째 그리고 인사성과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까지 말이다. 아빠는 많은 것을 가르치시기보다 '기본이 잘 갖춰진 사람'이 되라 하셨다. 공부하라고 윽박지르지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빠의 훈육이었다. 문득 아빠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 가르침대로 나는 지금까지 썩 잘 자라온 것 같다고 말이다. 이 것은 모두 아빠의 걸음 뒤를 묵묵히 따라가다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말이다.
길을 걷는 사이사이에는 소소한 재미가 숨어있다. 이를테면 표지판에 덧붙여진 누군가의 낙서라던지, 들판 사이에 놓여진 작은 하트라던지, 길가에 자갈로 그려둔 누군가의 흔적이라던지. 사람들은 길을 걷는데만 집중하지 않고 내 뒤를 걸을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이 만들어 놓고 간 소소한 흔적들 속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내가 이 길을 걸으며 배운 가장 큰 재산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은 어디에든 있다. 그것을 보려고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는 어디에서든지 말이다. 오늘은 하늘 위에 사랑을 닮은 구름이 떴다. 이건 어쩌면 먼 곳에서 누군가가 보내온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따뜻해진 마음으로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면 작은 공백이 있고 그 공백 사이로 자박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채워진다. 말없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있다는 것을 이 아이를 통해 깨달았다. 좋은 길 친구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그 것을 잘 되돌려주는 사람의 세 요소를 모두 갖춘 H와 걸으며 사실 나는 매일이 배움의 시간이었다.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바른 가치관을 배웠고, 세상에 대한 시선을 배웠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 더 나아가서는 용서를 배웠고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 아이가 이렇게 바르고 훌륭하게 클 수 있도록 곁에서 키워주신 부모님이 너무나 궁금해진 순간들이 자주 있었다.
언젠가 이 아이는 나에게서 신을 봤다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이 아이가 하나의 신이었다고 조심스레 고백하는 바이다.
비야마요르 델 리오 (Villamayor del Rio)라는 마을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멈췄다. 화장실을 너무나 가고 싶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평평한 밀밭만 있고 화장실은 보이지 않던지라 마을이 등장하자마자 마을 샛길로 가서 실례를 하던 중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사나운 멍멍이를 만나고 말았다. 일을 거의 다 본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봉변을 당할 뻔했다. 바지춤을 올리며 바삐 걸음을 옮기던 내 뒤로 동네의 모든 개들이 나를 따라 오며 짖었지만 H가 가방 속 과자로 강아지들을 유인해준 덕분에 벤치 위에 매달려있던 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덕분에 놀림거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림자가 점점 작아지며 햇살은 더욱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 표지판 그늘에 잠시 자리를 잡은 나와 H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맥주'에 대한 간절한 생각을 나눴다. 그리고 결국 '벨로라도'라는 마을에서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 마을에는 꽤나 유명한 알베르게가 한 곳 있는데 정원이 24명 밖에 되지 않는 이 곳에서 우리는 그 아찔한 순번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새로 찾은 알베르게도 잔디 뒷뜰이 있는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곳인지라 우리는 꽤나 행복해하며 짐을 풀었다. 매일 옮겨다니는 알베르게지만 각각의 마을마다 알베르게도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매일 좋은 숙소를 발견하는 것은 길을 걷는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나의 노란 신발은 점차 빛을 바래 가고 있다. 눈에 띄는 신발만큼 도드라지는 내가 이 길을 걸으며 그래도 스스로를 괜찮았다고 인정하는 한 가지는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얼굴은 곧 '한국'이라 생각하며 행동해온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알베르게나 식당, 호스피탈레로로부터 여러 수모를 당했던 나는 적어도 나는 내 뒤에서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결코 피해를 보지 않도록 매사에 공정하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로 다짐했고 그렇게 매일을 걸어냈다.
가벼운 샤워를 마치고 땀에 절어있는 옷을 햇살 아래 널어두는 일은 하루 일과 중 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시간이다. 뜨거운 햇살은 평지를 걸을 때는 가끔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숙소에 도착해 빨래를 말릴 때는 최고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해가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지기 때문에 오후 2-3시 즈음에 숙소에 도착해 빨래를 해도 운이 좋다면 다음 날 비누냄새가 가득한 옷을 입고 가벼운 몸으로 출발하는 행운을 얻게 되기도 한다. 옷을 널어두고 향한 곳은 마을 광장의 펍. 이젠 내가 하루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언제나처럼 일기장과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향했다. 오늘은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맥주를 먹기로 했다. 이 시간의 식당은 언제나 잠을 자고 있기에 씨에스타에도 장사를 허락한 펍에서야 배를 채울 수가 있었다. 사실 오늘은 꼭 먹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순대처럼 보이는 음식으로 사실 맛도 순대와 매우 흡사했다. 순대와 문어, 고르케를 먹으며 오늘 하루 고생한 발과 어제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 마음에 건배를 했다.
빨래가 바싹 말라가고 있다. 문득 올려다 본 알베르게에 익숙한 얼굴이 비춰지자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누구야~ 하고 소리르 지르니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길을 걷다보면 인연이 닿는 사람과는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된다는 걸 깨우치게 된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결국 만나야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만나게 되는 것처럼.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도 아직 깜깜해지지 않은 창 밖, 침대시트가 너무나 깔끔해서 기분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깨끗하고 안락한 잠자리를 바라고 오는 것은 아니지만 잠자리가 편하면 그 날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에는 깨끗하게 발을 씻고 하루종일 고생한 발을 주무르며 고맙다는 말을 한다. 누군가가 본다면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내 몸은 이런 나의 변화에 기뻐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잔뜩 짓무른 발과 어리석은 실수로 생긴 깊은 발등의 상처에게 나는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많이 아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나는 처음으로 내 몸에게 말했다.
저녁 무렵,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골목길엔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모두가 가족들과 함께인 그 따뜻하고 고요한 풍경 속에서 잠시 외로워졌다. 엄마는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이 길을 걷고서 엄마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코 끝에 희미하게 밥 짓는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아 향한 뒷뜰에는 독일에서 온 자전거 순례자 아저씨들이 앉아 계셨다. 잠시 합석하길 권유하셔서 간단히 소개를 하고 앉았는데 절뚝거리는 내 발을 보시고선 연고와 밴드를 한 웅큼 가져다 주셨다. 누군가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냐'는 이야기에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로 향했고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중에 아빠와의 잦은 충돌이 있었고 그 것이 결국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어서 그렇다는 걸 이 길 위에서 알게 되었다는 것, 아빠와 다시 잘 지내는 딸이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마지막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서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아저씨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자녀가 하고 싶은 일(하지만 나는 원하지 않는 일)을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셨지만 결국 결론은 아빠의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은 당연히 그런 것일 거라며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해주고는 싶지만 불안해 보이는 날개짓으로 멀고 험한 곳에 가지 않길 바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라 하셨다.
비로소 잠자리로 돌아와 나는 아빠와 이 길을 걷는 모습을 상상한다. 오랜 공백을 채우기에 내가 너무 멀리 돌아와 버린 것은 아닐까. 아빠 말처럼 나는 내 욕심만 채우며 사는 이기적인 딸이기만 한 걸까. 고민을 잔뜩 안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번데기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서 나는 조그맣게 울어버렸다.
6월 4일
H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었다. 그런 멋진 부모님이 있는 H에게도 미처 채우지 못한 것이 있겠지만 나 역시도 그러했다. 잠시 아빠를 생각하며 그동안 삶에 대한 열등감과 지나친 책임감으로 얼마나 힘드셨을지를 생각해본다. 항상 스스로를 낮추기만 했던 아빠의 삶의 고단함을 잠시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그를 못난 책임감에 시달리게 했을 나의 욕심들을 잠시 들여다 본다. 더 이상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제발 성장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하던 아빠의 가슴은 얼마나 짙은 멍이 들었을지를 떠올려 본다. 나는 무척이나 이기적인 딸이었고 결국 그 고집에 못 이겨 이 멀고도 먼 길을 왔다. 그 욕심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떠나온 만큼 나는 작은 무엇 하나라도 간절히 변하고 싶었다. 그것조차 욕심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너무나도 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