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헤스 - 부르고스
이른 아침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 영롱한 하늘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나는 H가 나에게 말해준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길 위엔 나 자신만이 있었고 귓가를 울리는 소리는 오직 내가 내딛고 있는 발자국 소리 뿐이었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옷깃을 여미고 더 힘차게 걸었다.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노래를 부르다보면 온 몸이 따뜻해졌다. 노래를 흥얼거리다 멈춰서서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어제와는 다른 아침이 왔다.
어젯 밤은 많은 일들을 생각하고 정리하느라 쉬이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해 지는 창가에 앉아 마음을 정리하려 펜을 들었지만 자꾸만 눈 앞이 먹먹해져서 글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땐 과감하게 펜을 놓고 누워야 한다. 억지로 무언가를 쓰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때론 마음이 가는대로 해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너무 일찍 출발해서인지 마을이 온통 잠에 취해 있었다.
모든 것들이 조용했고 이따금씩 닭이 울어댔다. 마을에 더 가까워지자 개 짖는 소리가 어디선가 간간히 들려왔다. 물병에 물을 채울 겸 이 고요한 마을에 잠시 쉬어가길 청했다.
나처럼 아침을 건너뛴 순례자들을 위한 작은 카페테리아조차도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시간. 물론 사람들은 곳곳에 생겨난 카페테리아로 인해 더 편한 마음으로 순례길을 걷게 되었지만 분명 이런 상업화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정'이 예전보다 덜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반가운 카페 간판이었지만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어 가게를 그냥 지나쳤다. 사실은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는 순례자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르바이트로 차곡차곡 모은 돈이었지만 끝이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여정을 생각하면 나의 여정은 언제나 조금은 배고팠고 또 외로웠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싫지만은 않았던 것은 그 외로움 덕분에 가벼워지는 지갑 걱정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꼭 그렇게 떠나야만 너를 알게 되는 것이냐고, 그 곳에 간다고 정말 무언가가 달라질 것 같으냐고 말이다.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는 수많은 말들을 뒤로 하고 나는 결국 이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라도 나는 내 스스로를 알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내가 바라는 것, 내가 하고싶은 것,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영영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진게 없는 내가 너무 초라해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때면 나는 언제나 주변인이었다. 함께일 때는 지갑을 걱정해야했고 혼자일 때는 외로움과 싸워야했다. 오늘은 또 다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 길을 걷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 매일 걷고 또 걸었다. 혼자이고 싶었고 혼자이기 위해 이 길 위에 섰다. 하지만 혼자인 시간 후에도 여전히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쓸데없는 공상만 잔뜩 안고 있는 오춘기 어른이었고 아직 어엿한 직업조차 없는 주변인이었다. 초라했다 문득,
한참을 걷던 중 십자가 아래서 길을 처음 걷는 날부터 몇 번이고 마주쳤던 아저씨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서로를 눈에 담고선 반가운 마음에 포옹을 나눴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단지 비슷한 날에 출발해 비슷한 걸음으로 길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 몇 번의 눈인사를 주고 받은 것만으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나이와 종교, 성별 그리고 국적을 떠나서 사람의 본질은 언제나 같은 출발점에 서 있었다. 적어도 이 길을 간절히 소망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비슷한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십자가를 만날 때면 언제나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해달라고 말이다. 어린 날의 나는 언제나 '무엇이 되었으면'이라는 기도를 했지만 이 길을 걷고부터는 그저 무언가가 스스로 이루어 지기를 바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노력으로 인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마음과 용기를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단단한 마음으로 나 역시 누군가에게 닿길 바랐다.
작은 기도를 올리고 다시 길을 나서며 시야에 들어온 화살표를 잠시 눈에 담았다. 그래도 길을 알려주는 이 표지판이 있어서 마음 한켠이 든든했다. 길을 잃어도 목적지가 있다면 이 화살표의 힘을 빌려 결국은 그 곳에 가게 될테니까.
나는 항상 열심히 살았다. 학과활동도, 학교에서 주최하는 특강과 프로그램도, 인사도 무엇하나 빠짐없이 열심히였던 어제가 있었다. 가고 싶었던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를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머리가 아플 때면 언제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서관 3층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곳은 맑은 날엔 언제나 바다가 보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왜 이렇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걸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는게 아니냐는 말도 조심스레 들려오기 시작했다. '많은 것들을 하는데'에 초점을 맞춰온 시간이었다. 그 시절의 내가 가진 '목표'들은 시간을 아울러 본질적으로 존재할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To Do List'에 맞춰진 삶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보여지기 위한 삶'이라 누군가가 힐난했다 하더라도 나는 감히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등장한 도시. 부르고스
점심을 건너 뛰어서인지 사실 나는 너무나도 배가 고팠다. 12시를 넘긴 시간 그리고 때마침 도착한 대도시. 나는 열심히 걸어준 내 두 다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하지만 30분을 걸어도 알베르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잔뜩 지친 두 다리와 굶주린 배는 나에게 아우성을 쳐댔다. 이쯤되면 과감하게 배낭을 내팽게치고선 눈에 띄는 곳으로 들어가는 무대뽀 정신이 발휘된다.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걷는 내 모습을 몇 몇 순례자들이 두 눈으로 쫓았지만 그런 것 즈음은 게으치 않는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발은 이미 퉁퉁 불었고 위는 넘치는 위액을 쏟아내고 있음이 분명하기에 나는 10kg의 배낭을 한 켠에 내려두고 카운터로 향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주문하는 게살 또띠야와 카페 콘 레체를 따라서 주문하고선 2천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대도시의 인심은 꽤 넉넉했다.
낮에 마시는 맥주가 얼마나 꿀맛인지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매일 하루가 끝나면 들이키게 되는 차가운 맥주 한 모금 덕분이었다. 피에스타 동안 햇살이 내리쬐는 광장을 바라보며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는 순례자들의 모습에는 지친 열정을 다독이는 모습도, 다시 오후를 준비하는 모습도 담겨있다. 씨에스타를 꽤나 좋아하게 된 것은 쉬는 방법을 모르던 내가 예상치 못하게 마주한 씨에스타를 통해 비로소 멈춰서서 쉬는 방법을 시도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배도 채웠고 마음도 꽤 든든해졌는데 마스코트처럼 따라다니는 '어리버리' 정신은 대도시에서도 어김없이 발동했다. 눈에 보이는 대학 건물에 들어가서 알베르게의 위치를 물었는데 친절하게 가야할 길을 알려주셨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전혀 알아 듣지 못한 나는 그저 발이 이끄는 곳으로 향했고 그러다 문득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까를로 아저씨, 처음엔 꽤나 까칠한 이미지셨는데 매번 웃으며 인사하는 내가 귀여우셨는지 요즘은 부쩍 나에게 애정어린 시선과 포옹을 보내곤 하셨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은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지만 대화의 절반은 언제나 웃음으로 가득했다.
몇 번이나 산티아고에 오셨다는 아저씨에게 산티아고는 사람'이라 하셨다.
이미 몇 번의 카미노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셨지만 같은 길을 몇 번이고 찾아야 할 만큼 아저씨에게는 그 어떤 사연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과 상처를 안고 사는 법이니 어설픈 물음이나 조언보다는 따뜻한 포옹을 전해주는 편이 좋았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아저씨는 반가운 포옹을 건내신 후 사탕을 주섬주섬 가방에서 꺼내 주시곤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알베르게에 체크인 하기 위한 줄이 조금씩 줄어드는 중이었다. 오늘은 꽤 많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알베르게로 시설이 꽤나 훌륭했다. 새로 보수공사를 한 덕분에 각 침대마다 스탠드가 붙어있어 늦은 밤에도 일기를 쓸 수 있었고 공용 시설도 깔끔하고 쾌적했다. 지도 앞에서서야 지금까지 꽤 많은 거리를 걸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걸었지만 이렇게 지도 앞에서 나는 이따금씩 놀라곤 한다. 스스로가 알지 못한 사이 이미 많은 거리를 혼자 힘으로 걸어낸 내 두 발과 내 용기와 의지를 두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나는 종종 스스로의 능력을 자책했고 자신감도 없었고 때론 무엇을 해도 운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어둠 속으로 도피하곤 했다. 1/3의 거리를 걸어내며 깨달은 것 중 가장 값진 생각 하나는 무엇이든 마음을 먹으면 해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내가 이 길위에서 얻어갈 무언가는 나에 대한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938년까지 프랑코 정부의 요충지로 이용될 만큼 부르고스의 입지는 훌륭했다. 6월 29일이 속한 주는 '산 페드로' 축제기간으로 이 고풍스러운 도시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했다. 몇 주나 남은 그 축제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여행자에게 허락된 시간은 언제나 넉넉하지만은 않았다.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고즈넉한 건물들과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건물들은 카메라 안에서 순식간에 엽서 한 장이 되었다. 트레킹화를 가지런히 벗어두고 샌들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제법 쌀쌀한 골목길을 걷는다. 이따금 동양인인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면서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대도시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았다. 도시에 들어서기까지 공장 지역을 지나고, 차도를 오래 달리며 쾌쾌한 매연을 맡아야만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이러한 풍경에 대한 보상이었을테니 나는 충분히 그 보상을 즐기기로 했다.
부르고스의 대성당.
스페인에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참 많은데 부르고스의 대성당은 그 중 가장 아름답고 큰 성당으로 꼽혔다. 기본적으로 고딕양식의 건물이지만 다른 양식들과의 조화를 이루며 수세기에 걸쳐 많은 건축가들의 노력으로 세워졌다. 이 곳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꼭 한번 들러봐야 할 문화재인데 내부는 세세한 손길을 거친 예술품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라커가 있어 집채만한 배낭을 둘러메고 둘러보지 않아도 되며 성수기에는 하루 종일 문을 여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도착한 시간이 씨에스타였던 덕분에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던 중 문득 올려다 본 성당 입구에는 하나하나 세밀하게 조각된 아기 천사와 인간세상의 사람들이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성당으로 향하지만 때론 그 어떤 성스러움에 이끌려 이 곳으로 발걸음을 하기도 한다. 이 곳에서는 종교와 시간, 국적에 대한 그 어떤 구애도 존재하지 않았다. 순례길을 걷고 난 후, 내가 경험한 작은 변화 중 하나는 어느 나라에서든 성당을 발견하면 그 곳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나는 언제나 미미했고 매번 작은 실수를 경험하는 인간이었으며 그렇기에 오늘 나를 잠못들게 한 어떤 과오는 그 절대적인 공간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씨에스타로 잠든 마을, 간간히 길을 걷는 몇몇의 여행자들만이 도시의 고요를 깨우는 시간이다. 낯설기만 했던 씨에스타도 이제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는 듯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해가 지기 시작하는 스페인에서는 오히려 씨에스타가 에너지를 관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 나도 이젠 그들의 시간 속에 길들여져 씨에스타가 되면 근처에 있는 바를 찾아 들어가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오래오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와이파이의 은총이 허락되는 곳이라면 가끔 가족과 친구들에게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
길을 잃는다,
그 어느 곳을 여행하든 나는 종종 길을 잃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사실 나에겐 '길을 잃었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모르는 '길을 알아간다'는 설레임이었다.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나는 다른 이들보단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조바심이 덜했다. 나는 제일 여행지의 카페 사장님과 가까워지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분위기를 음미하고 호스텔에서 얻어온 지도를 카페 주인에게 들고가 순진한 얼굴로 동네에서 가볼만한 곳들을 알려달라고 한다. 바쁘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대 이상으로 친절했고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하며 지도 여기 저기를 까만 별로 채워주었다. 인터넷에서 알려주는 정보들보다 현지인들이 더 많이 손 때를 묻힌 장소를 찾아가는 일이 나에게는 가장 훌륭한 여행이었다. 나는 그만큼 여행지에서 더 수고로워졌지만 오히려 그런 수고로움 덕분에 건강한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마음을 나도 다시 누군가에게 전한다. 길을 잃고 헤매고 또 다시 길을 묻고.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6월 6일
순례길도 인생과 같아서 좋고 싫은 사람이 분명히 생긴다는 것.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적어도 나는 저렇게 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구를 싫어하고 이런 태도는 드러내는 것 자체가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인데 자꾸만 그러는 나를 보며 부끄러워지는 마음. 그런 마음들을 안고 걸으니 배낭도 몸도 무거워 발걸음이 자꾸만 더뎌진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 침대에 누워있는 H가 걱정이 되서 잠들기 전 약 한 알을 들고 가서 물과 함께 건내고 왔는데 이마를 짚은 내 손 위에 조용히 자신의 손을 덮기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잠이 든 것 같아 조심스레 내려가려는 찰나 H는 눈을 감고 조심스레 말했다.
"나 누나에게서 하느님을 느꼈어"
신이라는 존재는 그 마음만 간절하다면 어떤 것을 통해서든 만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믿음이 두터운 그 아이에게 잠시라도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었음에 마음 깊이 감사하는 날이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끼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