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 - 삼볼
부르고스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알베르게의 수용 인원이 많아서인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일본에서 오신 분들도, 한국에서 오신 분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던 알베르게였다. 아침 6시부터 현관문을 개방해서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천천히 떠날 요량으로 사과 한 알과 지난 저녁 사두었던 케밥 그리고 모닝커피 한잔을 준비해 테이블에 앉았다. 옆 테이블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유코와 미사코에서 가볍게 인사를 건낸다. 그녀와 오늘은 한 뼘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어디까지 걸을거야?"하고 유코가 묻는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내 발이 허락하는 곳까지! 오늘도 좋은 길 되길 바래, 길 위에서 만나자"
내 맞은편에 앉아 아침을 먹던 H는 신발끈을 동여매기 시작했다. 지난 밤에 꽤 아팠던 이 아이의 이마에 머물던 열은 좀 내린걸까, 나에게서 하느님이 느껴진다던 그 한마디의 말이 아침까지도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기분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흘러 들어간 기분에 사로잡히게 한다. 밝아져가는 아침과 웅장하고도 고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성당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몇 번이고 멈춰서서 올려다봐야만 했다. 오늘은 더 많은 길을 걸어내야 하기에 아쉬운 안녕을 고해본다. 안녕.
고요함을 깨우며 둘이서 한참을 자박자박 걷는 일, 그러다 H가 나에게 물었다. "누나, 왜 자꾸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 같이 가고 싶지 않아?" 이 순수한 영혼은 너무나 상처받기 쉬워 때론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조심스러워지고 만다. 마치 동생을 닮은 H와 함께 걷다보면 나를 대신해 많은 걸 희생하고 있을 동생이 생각난다. 4살이라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꽤나 어른스러운 동생은 하고 싶은대로 사는 누나의 뒷바라지를 하며 고향에서 평생을 뿌리내린 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누나, 누나가 하고 싶은 일을 해. 응원할게 잘될거야"
가족에게서 받는 응원의 힘은 세상 그 누구의 것보다 따뜻하다. 동생과 나는 부모님께는 표현할 수 없지만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의리'라는 것이 있어서 부모님이 나를 하염없이 원망하셨을 때에도 동생은 그런 나를 묵묵하게 응원하며 지켜주었다. 그런 동생을 나는 때론 이 아이에게서 느끼고 있다. 미안하고 또 고마운 사람, 동생이면서 또 오빠이기도 한 그런 사람 말이다.
다시금 걸어가는 밀밭, 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며 곁에 있는 H에게 참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그것은 때론 나의 이야기였다가 내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따금은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모두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 H는 연애를 하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다고 이야기 했다. 결국 결혼하게 될 사람은 신이 정해주는 것이고 언젠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데 왜 다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너무나 다르다. 누군가와 만남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꽤 오랫동안 그 사람을 지켜보는 편이지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와 생각이 맞는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언제든 만나서 식사를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은 필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하는 바이다. 그렇게 몇 번을 넘어지고 콧등을 여러차례 훔치고 나면 그제서야 조금씩 사람을 보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적어도 정말 맞지 않는 사람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내공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때론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에 우린 종종 부딪치곤 한다. 하지만 정말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것들을 보고 배우며 자랐기에 '다름'이라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것 깨달았다. 내 생각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어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따금 그것이 옳다고 이야기 해주는 것은 머릿속으로 그려온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람 사이사이로 밀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났다. 신기하게도 밀 냄새가 코 끝을 스치고 지날 때마다 이 길을 함께 걷고 싶은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떠올랐다. 자꾸만 산으로 들어가 살겠다던 아빠가 아마 그 첫번째 일 것이다. 아빠는 자꾸만 산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 받은 상처가 많아서겠지만 나는 아빠에게 그런 마음은 스스로 이겨내야하는 것이라고 모질게 말했다. 사실 누구도 그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그가 처한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도,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다. 쉽게 무게가 나가는 말들을 내뱉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또 다짐해본다. 현실로 돌아가면 금새 잊혀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끝없이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나였다.
멀어져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끝없는 고민을 붙잡고 걸을 때가 있었다. 길을 걷는다는 건 머릿 속의 무거운 무언가를 털어내는 일이자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준비를 하는 일이다. 절뚝이는 발의 고통을 감내하며 걷고있는 나에게 스스로 물었다. 그렇게 아프면서도 이 길을 걸어야만 하는 거냐고. 그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나에게는 이 길을 걷는 일이 왜 '행복하다'라고 표현되는 것일까.
나는 그 대답 대신 훗날 내가 어떤 선택하게 된다면 설령 몸이 고되더라도 마음이 행복한 일을 하겠다고 조심스레 마음 먹는다. 힘들지만 내가 선택한 일에 모든 책임을 다해내는 것, 그리고 그 일이 '나를 위한 것'에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때로 우리의 눈은 많은 아름다움을 담아내려 애쓰다보니 정작 아름다운 순간들은 쉬이 놓치곤 한다. 이 곳에서 내가 배우고 싶었던 건 순간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일. 찍고 싶은 풍경이 있으면 서슴없이 그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내가 담는 풍경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때론 아직 바깥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한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느낀 이 감정과 풍경들을 고스란히 전해줄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글로 그 감정들을 오롯이 담아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그런 일념으로 말이다.
비가 오려나보다. 밀밭은 지나치게 푸르렀고 걸어가는 오솔길 사이사이에는 그윽한 밀냄새가 났다. 한참을 걷던 나는 오늘 문득 떠오른 생각을 꺼내 놓았다.
"오늘 가만히 길을 걷고 있는데 어린 시절의 나를 누군가가 안아주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구, 어쩌면 내 안의 작은 아이는 상처를 토닥여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마음 속에 있던 단단한 무언가가 소리내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어"
어쩌면 나는 아빠로부터 받았던 그 어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 긴 길을 걷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 작은 아이는 내 내면의 치유받지 못한 상처였고 그런 아이를 안아주고 있던 것은 어른이 된 바로 내 자신이었다. 어른이 되지 못한 그 시절의 상처는 자라지 못한 채로 마음 속에 남아있는데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돌이킬 수 없을만큼 먼 길을 와버린 것이다. 어른의 옷을 입은 우리가 때론 어린 아이처럼 실수를 하고 마는 것은 그 시절에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누구나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 것을 트라우마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는 상처가 곪지 않게 치유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대게의 사람들은 완벽하지 못하기에 때론 자신의 아이에게도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물려주곤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 사실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마음 한 켠에 깊이 담아두고 산다는 것이다.
오늘도 참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는다. 때론 동행이 되었다가,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다가를 여러번 반복하고 나면 하루의 여정이 끝이 난다. 은퇴를 하고 인생을 되돌아보기 위해 산티아고를 걷는 중년 부부들과 참 많은 걸음을 함께 했다.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 그 것은 오래 또 함께 걸어가기 위해 너무나도 필요한 무엇이었다. 그리고 그 것을 찾기 위해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 닮아있는 미소와 주름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시선으로 인생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서는 같은 향기가 났다.
나이가 들어서도 함께 여행을 하고, 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풍경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젊었을 때 함께 쌓은 추억이 많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마음을 나누는 이가 생긴다면 오랫동안 함께 여행을 하는 모습을 가장 먼저 꿈꾸곤 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과 여행을 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 우리는 그제서야 '누군가를 알아가고 있다'는 말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점심 때 먹은 샌드위치의 힘으로 조금 더 걸음을 걷기로 했다. 쏟아지는 비를 보며 더 걸어야하나 말아야하나를 고민했지만 산티아고로 떠나오기 전 머물렀던 파리 민박 언니의 추천으로 '삼볼'이라는 알베르게까지 목표를 정했다. 나에겐 조용한 휴식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꾸만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하루종일 우비를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던 우리는 결국 잔뜩 지쳐서 길가에 드러누워 잠시 쉬어가기를 청했다. 그런 우리에게 무심한듯 인사를 건내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사라지던 아저씨를 보고서도 우린 웃을 힘조차 없어 가방 한 켠에 넣어둔 초코바를 잘라 입에 우겨 넣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눕고 싶으면 눕고, 웃고 싶으면 웃는 그런 순간들이다. 이 넓은 대지에는 나와 H, 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 많은 '마음대로'의 시간을 가졌지만 지금만큼이나 스스로에게 충실한 '마음대로'는 꽤나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우리가 너무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이 지내고 있다. 오늘은 길 한편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봤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거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지만 또 마음이 뻥 뚫리는 일이기도 했다.
한참을 쉬던 우리가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삼볼에 도착했을 때 창 밖으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알베르게에 비해 조금 비싼 이 곳은 음식을 해먹기도 애매한 장소였지만 소수의 사람만을 수용하는 곳이라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2명의 사람만이 수용되는 곳이고 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가까워지기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장소였다. 우연히도 이 곳에서 S와 W를 만나는 바람에 우리 넷은 알베르게의 특별한 다락방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삐그덕거리는 나무 판자 위에서 꿀같은 잠을 자는 일은 꽤나 좋았다. 창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 반사된 먼지를 바라보는 일조차도 말이다.
우리는 힘들게 매고 온 짐을 다락 한 구석에 풀어내고 휴식을 취했다. 매일 '걷는다'는 행위를 하고 있지만 매일 걸어내는 풍경이 다르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이 인생과도 무척이나 닮아있다. 아마 우리는 짊어지고 있는 이 많은 짐들을 길이 끝나는 날까지 모두 풀어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 채우는 것보다 비워내는 것이 훨씬 어려운 것이 우리의 삶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더 용기를 내딛을 수 있게 체온을 나눠주는 이를 만나는 일은 인생에서나, 순례길 위에서나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6월 7일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나에게 묻는다.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자꾸만 나도 모르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오늘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깊은 곳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내고 있는 내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놀라움이 나쁘지만은 않다. 나는 이 길 위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