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것은 더 단단해지기 위한 일

이테로 -> 비얄카사르 데 시르가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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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잠들었던 지난 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피곤과 잠시 머물던 감기 기운이 말끔히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지난 밤에 사두었던 빵과 하나 남은 커피 믹스를 마시니 거짓말처럼 기운이 났다. 커피 믹스를 더 많이 들고 올걸 그랬나 하는 후회와 함께 마지막 남은 커피 믹스에 대한 애틋함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었다. 지난 밤 꿈 속에서 들었던 빗소리는 꿈이 아니었는지 나서는 길 목 곳곳에 비의 흔적이 비쳤다.


차가운 공기에 숨이 가빴던 것도 잠시, 이른 아침 빗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수풀을 지날 때면 짙게 풍기는 풀 냄새가 무척이나 싱그럽다. 초등학교 등굣길에 논두렁 사이를 걸으며 매일처럼 맡던 익숙한 냄새이기 때문인걸까, 산티아고는 지난 날의 추억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초록의 냄새를 따라 시선을 옮겨가다가 누군가가 놓아두고 간 신발 한 켤레를 발견했다. 닳고 닳아 뒷 굽이 없어진 신발은 따뜻한 마음의 누군가에 의해 또 다른 순례자에게 길잡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길을 걸으며 이따금 만나곤 하는 낡은 신발은 앞서 이 길을 걸은 순례자들과 나를 이어주는 작은 연결 고리가 되어 혼자 걷는 내가 외로워진 틈을 메꿔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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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위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은 이미 여러 번 같은 길을 걸어낸 사람이었고 그들은 걸을 때마다 점점 상업화 되어가는 카미노의 모습을 보며 씁쓸해진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곳곳에 자리한 알베르게 홍보 간판과 전단지들이 그들이 말했던 상업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과거엔 동네 사람들이 빵을 반으로 잘라 집 앞 문고리에 걸어두거나 과일을 깎아 건내주는 친절을 어렵지 않게 베풀곤 했지만 이젠 종교적인 의미로 길을 걷는 순례자들 보다는 다른 이유로 길을 걷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고 스페인 사람들조차도 하루하루 밀려오는 순례자들을 보며 관광업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길 위에 붙어있는 전단지 광고를 보며 함께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생각이 그저 단순한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소중한 길이 변해가는 것에 대한 슬픔과 더 나아가 카미노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는 것임을 느끼곤 했다. 아마 훗날 내가 다시 이 길 위에 서게 된다면 나 또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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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걸음은 오후의 그 것과는 생기가 다르다. 10km를 순식간에 걸어내고 확인한 시계는 8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지난 밤 이 곳에 머물렀던 순례자들은 이미 떠났고 마을은 비가 온 다음의 물기와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어제 제이드, 세라와 함께 둘러보았던 마을의 북적거림이 떠오르지 않을만큼 무척이나 조용했다.


잠시 지났던 '보아디야 델 카미로(Boadilla del Camino)'는 한 때 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던 터전이었지만 지금은 200명도 채 안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북적거리던 마을의 흔적들은 이젠 순례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고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조용한 마을을 지나 묵묵히 오솔길로 접어 들었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것은 굉장히 센치해지는 일임에 분명하다. 가라앉는 마음에 빠지다보면 길을 잃기 쉽상인데 타이밍 좋게도 나무에 누군가가 그려둔 노란색 화살표를 발견했다.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홀로 비에 젖은 거리를 걸으며 조용히 침전하고 있던 찰나였는데 노란색 화살표 하나로 금새 떠올랐다. 노란색은 그리움과 반가움의 의미를 담은 색이라고 말하던 누군가의 말을 기억해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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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을 벗어나자 '프로미스타'로 가는 길이 등장했다. 어제 마을을 돌아보며 들렀던 수문을 지난다. 이 곳은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 운하의 수문이지만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역사적이고도 의미있는 장소이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수문에서 바라보는 물길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가끔 이런 풍경 앞에서는 생각을 멈추고 감정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다. 그 감정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에 감사하는 나를 만날 수 있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이 먼 길을 걸어 비로소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선 내 자신과 모든 순간들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수문 가에 철퍼덕 주저 앉아 가방 안의 비스켓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걷고, 먹고, 자고, 생각하고를 반복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하루도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건 매일 생각이 자라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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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마을에 도달하기 전엔 순례자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종종 자리하고 있곤 했다. 곳곳에서 먼 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배려하는 흔적이 엿보였다. 벤치를 바라보다가 호주에서 생활하던 중 벤치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차를 타고 처음 보는 도시에 홀로 뚜벅이 여행을 갔던 날, 한참을 정처없이 걷다 잠시 쉬기 위해 앉았던 벤치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보고선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수동적으로 슬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으로 된 무언가를 기부함으로써 다음 세대가 이를 기억하며 쉬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일. 기부문화가 발달 된 호주에선 어쩌면 익숙한 풍경일지 모르지만 그 후로도 내가 잠시 쉬어간 대부분의 벤치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붙어 있곤 했다. 죽음이 그저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흔적이 된다면 그 죽음은 얼마나 고귀한가에 대해서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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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미스타는 꽤 큰 마을인 듯 했다. 오늘은 동이 틀 무렵인 6시 30분부터 15km를 걸어 이 곳까지 왔다. 열심히 걸어준 내 발을 위해 커피 한잔과 휴식의 시간을 가지기로 마음을 먹고 노란색 화살표를 찾아 길을 걷는다. 큰 마을에선 화살표를 놓치기가 십상인데 이런 때일 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것인지 붉은색 화살표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늘상 익숙하게 보았던 노란색 화살표와는 다른 느낌이라 한참동안 그 화살코를 따라가야 하는 것인지 의아했지만 잠시의 고민 끝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카페로 들어서는 길, 1.60유로의 카페 콘 레체를 주문하고 잔뜩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대고 앉아 숨을 고르는데 맞은 편에 앉은 동양인 부부가 나에게 말을 건냈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왔다는 답변을 하니 그들은 일본에서 왔다며 잔뜩 반가운 얼굴을 했다. 버스를 타고 몇몇 구간을 이동하게 되서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며 오늘은 이 곳에서 다음의 도시인 레디고스까지 이동을 하신다고 한다. 혼자 길을 걷는 한국인 여자아이가 신기하신지 어디서부터 걸었고 오늘의 출발지는 어디이며 몇시부터 걸었는지를 이것저것 물어오셨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된 우리. 학창시절 동안 그리고 제일 친한 일본인 친구에게서 배웠던 일본어를 동원한 대화를 그들은 무척이나 반가워 하셨다. 출신이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서의 첫 걸음은 그 나라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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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너는 '여유'를 즐길 줄 모르는 것 같아. 가만히 있는 걸 못하잖아. 그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에 초점을 맞춰 살아온 나에게는 어쩌면 '쉼'이라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였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그 말은 나에게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으며 놀 때도 나는 생각했고, 쉴 때도 생각했으며 책을 읽을 때도 생각했다. 심지어는 인생에서 가장 큰 '쉼'인 이 길에서조차 나는 제대로 쉬지 못하고 끊임없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다. 발랄하던 학창시절과는 달리 졸업을 하고 생각이 무거워진 나를 두고 친구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진실된 마음이면 괜찮다며 지내온 시간들이었는데 그 당시 내가 받은 충격은 꽤 컸던 모양이다. 진지하지 않고 즐겁게만 사는 것이 과연 또 살아가는 정답인 것인지를 자문한다


생각을 하지 않고 걷기 위해 노력했지만 비워낸 틈을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끝없는 생각들을 내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몸을 잔뜩 지치게 하는 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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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가 흔들거리는 들판을 지난다.

중간중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홀로 걸음을 옮기는 것은 이틀 째이다. 내딛는 걸음이 점차 더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릿 속 생각들이 정리가 잘 되지 않아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들을 꺼내놓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하곤 하는 편이었는데 내가 가진 생각들을 잘 들어주는 길 동무인 H 생각이 났다. 그 몇 일 동안 금새 정이 들어버린 걸까. 외롭다가도, 그 외로운 감정이 좋다가도 급격히 침체되고 만다. 바람에 흔들리는 양귀비처럼 마음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예전엔 이렇게나 흔들리는 마음이 참 미워보였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마음의 흔들림은 바람에 흔들리는 양귀비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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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시냇물과 산새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두 갈래 길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길을 알려주시던 동네 아저씨의 손가락을 따라 걷다보니 도로를 따라 가는 이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도로를 따라 운전을 하던 아저씨에게는 어쩌면 이 길이 유일한 카미노였을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마주한 염소들과 곳곳에 흩뿌려진 염소똥은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길 위에 잔뜩 흩뿌려진 염소 똥은 결국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마음을 내려놓고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시련을 주시다니 무척이나 기가막힌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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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생각을 털어내며 한참을 걸은 오늘, 오랫동안 감사하며 걷다보니 보석같은 풍경을 선물 받았다.

"우와~" 하고 입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 사이사이를 흩날리는 빨간 양귀비 꽃은 기가 막힌 조합이다. 그 사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는 표지판은 또 얼마나 멋있는지. 이런 타이밍에 맞춰 셔터를 누르는 건 내 몫이다.


거짓말처럼 날씨가 개이고 뭉게 구름이 흩어져 있는 하늘을 배경 삼아 걷는 도로는 무척이나 그림같다. 언제나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에겐 맛있는 비스켓과 맛 없는 비스켓이 딱 반반씩 들어있는 인생이라는 상자가 있을 뿐이었다. 오늘의 내가 힘들고 슬픔이 가득한 비스켓을 먹었다면 다음엔 기쁨이 가득한 비스켓을 먹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슬프고 아픈 삶에 대한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 그렇게 더 나아가면 우리는 모든 상황들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매 순간, 매 걸음이 깨달음인 그런 삶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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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30km를 꼬박 걸었다. 중간 중간 멈춰 서서 쿠키를 먹고 낙서도 하고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며 쉬엄쉬엄 걷는데 눈 앞에 마을을 앞두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우비를 꺼내입고선 눈 앞에 보이는 마을에서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 하기로 한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도네이션제로 시설이 깔끔하거나 잘 갖춰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호스피탈레로 할아버지가 무척이나 친절하셔서 마음이 포근했다. 젊은 나에게는 어두운 방 안의 2층 침대가 주어졌다. 보통 젊은 사람들에게는 2층 침대가 주어지고 나이든 분들에게는 1층의 침대가 주어지곤 한다.

체크인을 끝내고 짐을 풀어둔 나는 허기와 목마름 그리고 외로움에 잔뜩 지쳐 Bar에 들어서자마자 '맥주 한잔(우노 사르베사)'를 주문했다. 반나절동안 생각에 지친 뇌는 그제서야 쉬기 시작하는 모양인지 나는 멍하게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올려다 본 곳에는 이틀 전 삼볼에서 헤어진 H가 서있었다. 반가운 마음을 달래며 우리는 맥주 한 모금을 그렇게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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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가 막 미사를 마치고 나왔다는 이 성당은 13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오늘 날까지도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 장소이다. 템플 기사단이 지은 산타마리아 라 블랑카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왕족과 귀족의 무덤이며 나라에서 지정한 국보이다. 섬세하게 조각된 장미 모양의 창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술과 역사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장면이었다. 순례길을 걸을 때는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회나 성당 방문을 감히 추천하고 싶다. 가끔은 이 성스러운 공간에서 올리는 기도가 나와의 대화가 되기도 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축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물론 스페인 건축물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되는 건 덤이다.ㅜ씨에스타에는 잠시 문을 닫지만 순례자에게는 1유로의 입장료를 받으니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 그리운 누군가를 위한 기도를 올리길 바래본다. 타인을 향한 기도 후에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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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와 테라스에 앉아 두 번째 맥주를 시켜놓고 씨에스타를 즐기는 중이었다. 채 마르지 않았던 빨래를 들고나와 햇살이 눈부신 건물 한 켠에 말려두고서 말이다. 햇살이 따스해질 수록 말라가는 빨래를 보며 기분이 한결 보송보송해졌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벨기에에서 온 레이몬드 할아버지와 알베르게의 호스피탈레로 아저씨가 오셨다. 우리 모두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기에 언어의 장벽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동안 이어진 수다는 즐겁고 유쾌했다. 코리안이라고 불리우던 20여년의 시간을 지나 코린(Coreen)으로 불리는 것이 익숙해져 가는 찰나이다. 호스피탈레로 아저씨께 이 알베르게에 머물게 된 이유를 여쭤보니 순례길을 다 걷고 나서 문득 든 감사한 마음에 버스를 타고 돌아와 이 곳에서 다른 순례자들을 위해 3개월 간 봉사활동을 하기로 하셨다고 한다. 좋은 일과 좋은 마음들은 돌고 돌아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돌아온다는 말을 믿는다. 그 좋은 마음들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살아가고 계시는 분들을 길 위에서 만날때면 나는 언제나 숙연해지곤 한다. 내가 받은 마음들을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나누며 사는 삶을 바라보며 나는 매일을 깨달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한 깨달음을 실천하며 살겠다고 마음 먹으며 기분 좋은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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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친구가 보내 온 글귀 하나가 마음을 오랫동안 울렸다.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아서 몇 번이고 입으로 소리내어 읽으며 마음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의 모든 흔들림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끝없이 흔들리는 나에 대한 죄책감에 날개를 달아주는 말이었다. 지금 흔들리는 것이 더 단단한 뿌리를 가지기 위함임을 잊지 않는다면 흔들리고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연필은 쓰던 걸 멈추고 몸을 깍아야 할 때도 있어.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거야.


- 파울로 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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